바닐라 스카이의 짧은 유럽 여행기 (3) - 파리, 둘 그리고 하나 더] 보기 겨울이 되면 프랑스는 우기에 접어든다. 특히 북부 지방에 비가 자주 내리는데 파리도 예외일 수는 없다. 그래서인지 파리 사람들은 가벼운 비 정도는 그냥 맞고 다닌다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 흐린 하늘을 보게 되면 이곳 사람들은 우산을 챙겨 나갈까 아님 곧 세탁을 해야 할 두터운 코트를 입고 나갈까. 파리에 머물렀던 나흘 내내 날씨가 맑은 적이 없지만, 우산을 들고 나온 이들을 본 적도 없다. 그런 걸 보면 우산은 그들의 가방 안에 숨어있거나 집안 구석 어딘가에 처박혀 아침부터 비가 올 날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우리의 우산도 그랬다. 정확히 말하면 동행인의 우산은 그의 배낭 안에 있었고, 내 것은 한국에 있는 내 방 내 책..
[바닐라 스카이의 짧은 유럽 여행기 (2) - 파리, 둘] 보기 전편 요약 : 무거운 가방을 들고 루브르 박물관을 거쳐 퐁피두 센터까지 걸어가다가 결국 체력 고갈. 뮤지엄 패스의 또 다른 활용법을 발견했다. '화장실 이용권'이다. 파리의 많은 공중 화장실과 식당 화장실은 유료지만 미술관은대부분 무료다. 게다가 시설도 좋다. 퐁피두 센터에 오르며 파리의 전경을 보다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화장실이었다. 거울 있고물 나오고. 화장실 찾기가 쉽지 않은 만큼 반갑기 그지없는 만남이다. 화장실 찾기 어려우면 뮤지엄 패스를 적극 활용하자! 퐁피두센터가 화장실과 동의어가 된 것 같아 좀 미안하긴 하지만. 쇼파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데 감히 작품을 볼 엄두가 나지않았다. 동행자가 관람에 큰 뜻이 없고, 나 역시 한국에..
[바닐라 스카이의 짧은 유럽 여행기 (1) - 파리, 하나] 보기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낯선 천장이 보이는 기분은 묘하다. 여기는 어디고,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깜빡깜빡 형광등이 켜지는 것 같다. 그 때는 잠시 시간도 멈춘다. 점차 내가 눈을 뜬 곳이 호텔의 한 객실이고 이 땅이 이국의 도시라는 걸 깨닫는다. 아, 여행을 왔지. 여기는 파리고. 시간은 오전 7시 30분. 알람을 끄고 옆 침대를 보니 친척 동생도 깨어 있었다. 파리에서 맞는 첫 아침이다. 엄청난 일정의 시작이다. 샤워 후 아침을 먹으러 내려갔다. 로비가 0층이고 우리나라로 치면 2층이 여기서는 1층인 구조가 생소하다. 미니바에선 벌써 나갈 준비를 마친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처음 보지만 봉주르, 봉주르, 인사를 나눴다. 처..
[바닐라 스카이의 짧은 유럽 여행기 (0) - 여행, 시작] 보기 샤를 드골 공항은 조용했다. 오후 6시가 넘어서인지 더욱 그래보였다. 한숨도 안자 멍한 기분을 안고 여행의 시작점에 섰다. 게이트에 들어서자마자 낯선 향기를 맡았다. 파리의 커다란 손과 악수를 하는 기분이었다. 반갑다고, 오는 길 어땠냐고. 입국심사는 간단했다. 드디어 여권에 스탬프가 하나 더 늘어나는구나. 무뚝뚝한 직원을 지나 짐을 찾고 인터넷에서 본대로 RER-B선부터 찾았다. Paris by Train이라는 안내판을 좇고 또 좇았다. 캐리어는 제 주인이 살짝 긴장했다는 것도 모르고 경쾌하게 굴렀다. 드르륵, 드르륵. 도대체 열차는 어디서 타는 거야? 라는 생각을 몇 번이나 하고 나서야 드디어 기차를 타는 곳이 보였다. 초행길이라 그..
여행기를 시작하는 말로는 뭣하지만 나는 여행에 환상이 없다. 여행을 인생의 궁극 목표나 일상의 탈출구, 감성 충전기 등으로 여기지 않았다. 많이 떠나보진 않았지만 여행은 그저 일상의 연장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럼 여행을 왜 가나? 여행을 일상의 연장이라고 본다면, 환상이 없다고 내일을 살 이유가 없는 건 아니다. 이곳에서의 오늘과 그곳에서의 오늘의 가치는 언제나 동일하다. 낯선 땅, 낯선 길이 주는 낯선 분위기가 있을 뿐이다. 여행과 낯선 땅이 동의어라면 첫 문장을 고쳐야할지 모른다. 하지만 낯설든 익숙하든 얼마간 제 있던 자리가 아닌 곳을 찾아가는 게 여행이라면 그냥 놔두어도 좋을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옆 동네로 산책을 가는 일도 여행이다. 이럴 때 여행은 환상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닌다. 익숙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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