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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여행을 하며 보았던 길거리의 개와 고양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겠다. 외국을 다니다 보면 유독 개와 고양이갸 많다는 걸 깨닫고는 한다. 유럽에선 대체로 애완견이 눈에 많이 띈다면, 태국과 라오스에서는 종자를 알 수 없는 큼직한 개들이 많이 보였다. 다른 도시와 다른 점이 있다면 대부분 줄로 묶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길거리에 큼지막한 개가 앉아있으면 털이 쭈뼛 설 정도로 놀라고는 했는데, 녀석이 마음만 먹으면 일 초 만에 나에게 뛰어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너무 후텁지근한 날씨 탓인지 녀석들은 움직일 기운조차 없어 보였다. 방콕에서는 내 바로 옆에 시커먼 개가 똬리를 틀고 있다는 걸 뒤늦게야 깨닫고 흠칫 놀랐는데, 녀석은 나를 한 번 쳐다보지도 않고 허공만 응시하고 있었다. 개는 혀를 내밀어 체온을 식힌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검은 친구를 혀를 내밀 힘도 없는 모양이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아무리 개 팔자가 상팔자라 해도 이 더운 나라에서는 그렇지도 않다는 사실을 배웠다. 한국 시골에서 태어났더라면 이런저런 밥 덩이를 얻어먹으며 마음껏 낯선 사람이나 달을 보고 짓고 뛰어다닐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잡아먹히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또, 치앙마이 거리에서 본 하얀 개도 떠오른다. 어느 작은 사원에서 키우는 모양인 그 개는 한쪽 다리를 들고 벽에다 노란 오줌을 갈기고 있었다. 난 지금껏 그렇게 슬픈 눈으로 영역표시를 하는 개를 본 적이 없다. 녀석이 흘리는 건 거의 눈물이나 다름없었다. 밥을 못 먹었나? 물만 마셔서 방광만 차올랐나? 사랑하는 개가 집을 나갔나?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서글펐던 걸까?
다음으로는 라오스 팍벵의 어느 식당 개가 떠오른다. 그나마 시원한 날씨 덕분인지 녀석은 활기에 차있었는데, 숯불 오리를 먹고 있는 우리 옆에서 계속 알짱거렸다. 항상 뭘 얻어먹고 사는 무난한 팔자는 아닌지 몸매가 꽤 늘씬했다. 고기 한 점이 붙은 그나마 덜 날카로운 뼛조각을 던져주자 순식간에 먹어치운다. 워낙 새요리가 흔해서 그런지 나보다 먹는 법을 더 잘 아는 것 같았다. 고기를 주고 나자 내 옆에 앉아 날 물끄러미 올려다본다. (미안하지만) 너무 타서 나는 먹지 않을 고기조각을 한 번 더 던져주었다. 그것도 받아먹은 그는 내게선 더 뽑아 먹을 게 없다고 생각했는지 테이블 밑으로 기어들어가 이번엔 D의 옆에서 꼬리를 흔들었다. 물론 우리 먹을 양도 부족했기 때문에 소득은 없었다.
대체로 동남아시아 개들은 커다란 몸집에 비해 온순했다. 대부분이 만사가 귀찮은 표정이었고 말이다. 오토바이가 지나가면 비켜주고, 고개를 들다가도 그게 돌덩이라도 되는 듯 힘없이 떨궜다. 그리고 그 눈. 그 무의미를 바라보는 것 같은 슬픈 눈들이 기억에 남는다.
한편 고양이들은 개보단 부지런했다. 담장 위도 걸어 다니고 사람이 다가오면 아주 조금이나마 도망가는 시늉도 했다. 주로 낮엔 어느 구멍 속에 기어들어갔다가 시원한 밤에 나와서 그런지 속도도 빨랐다.
고양이라면 라오스로 넘어가기 전날에 묵었던 치앙콩의 게스트하우스가 떠오른다. 예쁘장한 고양이 두 마리가 서로 입을 맞추며 놀더니, 투숙객들이 전부 모여 저녁을 먹는 식당 안에서 사랑을 나누기 시작하는 것이다. 모두가 밥을 먹다가 웃으며 지켜보는 가운데 두 녀석은 인간의 시선 따위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제 할 일에 열중했다. 누군가 영어로 "방이나 잡아라!"하고 외쳤다. 가장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에로틱한 장면이었다. 밤에 그중 한 마리를 다시 만나기도 했다. 나와 D는 술을 마시면서 게스트하우스 매니저가 구워준 민물고기를 대접받고 있었다. 가운데 살을 발라 먹고 그대로 놔두자 고양이가 테이블 위로 올라오더니 앉은 사람을 아랑곳하지 않고 생선을 먹었다. 민물고기라 뼈가 많았는데 어찌나 깨끗하게 발라먹던지. 내 바로 앞에서 혀를 날름거리던 모습이 귀여웠다.
여행 중 동물을 보는 건 즐거운 일이다. 난 태국에서 호랑이고 사파리고 조금도 관심 없었지만, 길거리의 개와 고양이에는 사족을 못 썼다. 아, 심심하면 보이던 벽 위를 돌아다니는 작은 도마뱀들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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