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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티안에서의 낮 산책에 관해 이야기하기 전에, 오늘에 관한 이야기는 별로 길 것 같지도 않지만, 많은 여행자들이 이곳을 최대한 빨리 빠져나가려 했던 이유를 확인해 봐야 할 것 같다. 비엔티안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라오스를 여행하기 위해 공항을 이용하거나(공항이 시내 안에 있다. 여행자 거리에서 차를 타고 빠른 속도로 달리면 십오 분 정도 걸린다.) 여행자 거리에서 커피나 베이커리, 꽤 근사한 식사를 즐기거나 아니면 그냥 걸어다니며 메콩 강 건너편으로 태국 땅을 구경하거나 가끔 마음이 동하면 라이브 뮤직을 하는 펍이나 나이트 클럽에서 나이트 라이프를 즐기거나. 이 정도로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한다면 조심스레 그건 오산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외국 여행자들의 블로그를 봐도 대부분이 최대한 빨리 이곳을 벗어나 라오스 남부의 팍세로 넘어가거나 미니 밴을 타고 방비엥으로 올라가 액티비티나 술, 춤을 즐기길 원했기 때문이다.
삐 마이가 끝나고 난 금요일, 그러니까 평일인 오늘은 한결 차분한 분위기가 도시를 지배하고 있었다. 가게들은 여전히 셔터를 내린 채 침묵하고 있고, 돌아다니는 사람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방비엥에선 지겹게 보았던 여행자들도 여기엔 많지 않다. 게다가 대다수가 얌전하다. 게스트하우스의 로비나 카페에 앉아 책을 읽거나 일행과 대화를 나누는 이들이 많았다. 대로변에서 늦게까지 열렸던 물축제를 그들은 완전히 잊은 듯 보였다.
그래도 햇살은 무지막지하게 뜨거웠다. 공기가 건조하긴 했지만, 정오에 방을 나선 우리는 거의 열사병에 걸리기 직전까지 갔다. 주요 여행자 거리를 쏘다니고, 쇼핑몰에 들어가 보고, 프랑스 풍의 고급스러운 관용 건물과 웅장한 사원을 지나쳤다. 강변에 있는 공원에도 가보았는데 뭐랄까 태국의 방콕이나 치앙마이 거리에서 느꼈던 녹음조차 그곳엔 없었다. 몇 무리의 사람들이 나무 그늘에 앉아 데이트를 즐기거나 맥주를 마셨다. 공원 입구 쯤에서 한 라오인 일행이 우리에게 맥주를 마시고 가라고 했으나 우리는 웃으며 사양했다. 그리고 오 분 정도 후에 후회하기 시작했다. 공원은 우리를 위해 특별히 고안된 오븐처럼 뜨거웠다. 태국을 향해 손을 뻗치고 있는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약한 현기증을 느꼈고, 그늘을 향해 도망쳐야 했다.
강가에 있는 대부분의 식당과 펍도 문을 닫은 상태였다. 어젯밤보다 더욱 이곳은 유령 도시 같은 행색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바로 한낮에도 거리를 배회하는 유령이었다. 사람을 놀래키는 게 아니라 사람한테 겁 먹은 어리버리한 캐스퍼.
그래도 산책 중간에 조마 베이커리와 xayoh라는 그릴 펍에 들러 휴식을 취하던 순간은 좋았다. 루앙 프라방과 여기 비엔티안, 그리고 하노이에도 지점이 있는 조마 베이커리는 특유의 세련된 인테리어와 훌륭한 에어컨 시설, 그리고 느리지만 우리를 기존의 세상에 연결시켜 주는 와이파이를 갖추고 있었다. 커피 맛도 루앙 프라방 지점보다 훌륭했다. D는 샤베트 아이스크림을 먹었는데 엄청나게 셔서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도 이렇게 시원한 실내에 있을 때 우리는 행복을 느낀다. 어쩌면 이 한낮에 산책을 나온 게 실수였는지도 모르겠다.
다음 날 하노이로 이동할 비행기 편을 알아보기도 했다. 모바일로 구매하는 것보다 여행사가 저렴했다. 다행히 좌석이 있었고, 카드 결제도 가능했다. 비엔티안에서 하노이까지 저렴하게 가기 위해서는 24시간 이상을 달리는 버스를 타야하지만, 이젠 시간도 부족했고 차마 그렇게 긴 시간을 이동할 수도 없었다. 조금 비싸도 비행기를 타자. 한 시간이면 우리는 라오스를 벗어나 베트남에 떨어질 수 있으니까. 한국에도 다녀온 적 있는 친절한 여행사 직원은 아바쿠스로 조회하고 발권한 한 장짜리 이티켓을 우리에게 쥐어주었다. 모든 게 매끄러웠다. 비행기 표만 끊으면 오늘 할 일은 다 한 셈이었다. 남은 라오스 돈을 최대한 아껴가며 내일 저녁까지 살아가기만 하면 된다.
xayoh에선 이번 여행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고 보면 오늘부터 일요일까지는 B와 Y, K를 포함해 친구 다섯 모두가 해외에 있는 기간이었다. B는 한 달 전부터 북경에 파견나가 있었고, Y는 어제 부인과 함께 괌으로 여행을 갔다. 그리고 K는 오늘 홍콩으로 간다. 펍에 앉아 낮술을 마시는 즐거운 시간 속에서도 나와 D가 제일 부러워했던 주인공은 K였다. 홍콩에 가고 싶었다. 어차피 더울 거면 그 높고 좁고 빽빽하게 자란 건물 숲 속에서 사상 최고의 인파에 파묻혀 있고 싶었다. 뭐랄까, 라오스의 조용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이 이젠 좀 지겨워졌다고나 할까. 하긴 거의 보름이나 있었다. 이젠 또 움직여야 할 때다. 특히 비엔티안은 루앙 프라방 만큼의 활기조차 없었고, 방비엥처럼 여유가 넘치는 도시도 아니었다. 그러나 동시에 라오스의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 뭔가를 해야할 것만 같은 생각을 떨칠 수도 없었다. D는 이곳에 살면 일년 중 삼 일 - 삐 마이 기간 - 만 재미있을 것 같다는 슬픈 말을 남기기도 했다...
거의 정석이나 다름없는 루트로 다녔기 때문에 우리가 라오스를 다 안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다. 난 원래 "어떤 도시에 갔었다."라고 하지 "어떤 나라에 갔었다."라고는 즐겨 말하지 않는다. 한두 도시만으로 그 나라를 섭렵했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한 마디 감상을 덧붙이자면, 우리가 기대했던 자연 친화적이고 완벽한 평화를 만끽할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어설픈 귀동냥만으로 오판한 셈이다. 하긴 새벽에 일어나 탁밧을 본 적도 없다. 도대체 우린 이 나라에서 무엇을 한 것일까.
그러나 앞서 말하자면, 베트남 하노이에 도착한 다음 날, 시끄러운 경적 소리 속에서 점심을 먹는데 문득 라오스(정확하게는 방비엥)가 그리워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을 배우게 되는 곳.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데 질리고 나선 다시 움직이게 하는 곳. 하지만 결국 회귀를 꿈 꾸게 하는 곳. 냉정하게 내 인생 최고의 여행지는 아니었다. 다만 다시 갈 필요가 없을 것 같음에도 언젠간 다시 가야할 것만 같은, 바로 그런 곳임에는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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