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항철도를 기다린다. 스크린 도어에는 휴고 보스 정장을 입은 주윤발 선생께서 "살 만하냐?"라는 표정으로 우리를 내려보고 계신다. 승차장은 한가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듯한 승무원 한 명, 한 무리의 중국인 관광객, 그리고 비즈니스맨 몇 사람이 전부다. 꽤 많은 사람들과 함께 비행기에서 내렸기 때문에 아수라장을 각오했었는데 생각보단 한가한 도시라고 지레짐작하고 말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열차가 도착했고, 현대 문명의 지향점을 상징하는 듯한 실내 - 깨끗하고 단단해 보이는 세라믹 코팅의 내장재, 우주선에 달려있으면 어울릴 듯한 기다란 창문, 웅웅거리는 낮은 소음만으로 움직이는 차체 - 가 우리를 맞이했다. 하지만 내·외관보다 인상적이었던 점은 바깥세상과 칼로 그은 것처럼 차가운 실내 공기였다. 에어컨의..
:: 네 시간도 채 자질 못했다. 새벽같이 일어나 남부터미널에서 6시 30분경에 출발하는 공항버스를 타기 위해 달렸다. 버스를 타러 가며 전날 홍콩행을 기념한답시고 들이부은 술의 양을 가늠해 보았다. 다행히 두통이 아니라 속 쓰림의 형태로 찾아온 숙취는 기념주로 테킬라를 마셨던 선택이 탁월했음을 증명했다. 부족한 잠은 공항으로 가면서 보충하면 되리라-고 생각했지만 버스에 올라도 잠이 오지 않았다. 텅 빈 새벽 도시는 잠들기보단 저를 봐주길 원했다. 푸른색 필터를 끼운 것처럼 선명한 날 빛을 등진 건물들이 감은 눈 저편에서 끝없이 아른거렸다. 그나마 풍경이 단조로워지는 올림픽대로에 진입하고 나서야 비로소 잠들 수 있었다. D는 이번 여행의 동반자다. 누군가와 둘이 여행을 하는 게 참 오랜만인데, 그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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