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햇살이 비껴 반짝이는 우아즈 강변엔 어떤 특별한 장면이 있는 게 아니었다. 조깅을 하는 마을 사람들을 한둘 지나쳐 보내고 나면 다시 찬 바람과 정적이 그 자리를 채웠다. 너무나 한가해서 이대로 마을 어딘가에 있는 집으로 들어가 늦잠을 청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천박한 간판도 없고 지나친 도태도 없이 오랜 세월 이대로 쭉 이어져 왔을 모습은 우리네 시외 작은 고장이 배웠음직한 미덕이었다. 만약 이곳에서 빈센트 반 고흐가 마지막 순간을 보내지 않았다면, 그리하여 공동묘지에 동생과 함께 눕지 않았다면, 이 작은 마을은 이토록 널리 알려지지 못했으리라. 고흐의 엄청난 팬이라고 할 순 없지만 그의 수많은 그림과 그 만큼 수많은 편지를 보고 읽은 사람으로서 그가 걸었던 길 중 하나를 걷기로 했다. 작은..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외국에서 생일을 맞이하는 건 처음이었다. 그것도 파리에서라니. 반은 그것 참 느낌 있는 일이라고 했다. 나머지 반은 혼자 생일을 보내야 한다니 쓸쓸하겠다고 했다. 막상 내게 어느 쪽이었느냐고 묻는다면 고민이 되긴 하지만 나 역시 반반이었다고 답하고 싶다. 너무 정신 없던 하루라 그 어느 쪽도 온전히 느끼질 못했으니까. 한 가지 확실한 게 있다면, 네트워크로 연결된 세상에선 어디에 있든 온전히 혼자로 남기 어렵다는 것이다. 아침에 날아오던 페이스북과 메신저의 메시지로 생일 축하는 충분히 받았으니 새삼 놀랍고도 감사한 일이었다. 물론 메시지는 메시지일 뿐, 나를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직접 축하 인사를 받아보진 못했다. 그래서 하루가 다 가기 전에 내가 대신 축하해 주기로 했다. 황량..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제외하고 파리에서 그림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은 몽마르트 언덕의 테르트르 광장일 것이다. 마침 늦겨울의 햇살이 광장 안으로 곧장 떨어지는 시간이었다. 자연광과 어우러진 화폭의 색채에 눈이 부셨다. 만물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주광의 영역에 있었음에도 현실과 동떨어진 곳에 있는 느낌이었다. 하긴 이렇게 많은 화가들이 이렇게 좁은 공간에 모여있다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이긴 하다. 화가들의 실력이 어떻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뭐라 대답할 말이 없다. 테르트르 광장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념품 매장이니까. 그림의 주제는 대체로 관광객인 당신이거나 사진으로 미처 담지 못한 파리의 아름다운 풍경, 그 두 가지로 한정돼 있다. 여기에선 뛰어난 예술 작품보단 파리를 기념할 수 있는 뭔가를 얻어가기..
혼자서 뭘 하는 걸 좋아한다. 엄밀히 말하면 혼자 하는 게 더 잘 어울리는 일을 좋아한다. 글쓰기가 그렇고, 사진 찍기가 그렇다. 여행은 아직 잘 모르겠다. 여행은 누구와 함께 가느냐가 제일 중요한 만큼 죽이 잘 맞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인 편이 낫겠지. 하지만 난 나를 꽤 좋아하니까 혼자, 나와 함께 여행하는 것도 좋다. 그러면 글과 사진은 절로 따라오니까. 예전엔 그러지 못했는데 언젠가부터 식당에서 혼자 밥먹는 게 어색하지 않다. 죽이 잘 맞는 사람이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가 아니라면 식사도 여행만큼이나 고역이 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사회성이 아주 좋은 인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최근 몇 년 사이에 그마저도 다 깎여나간 모양이다. 툭하면 몸도 마음도 체한 것처럼 무거워지기에 십상이니까. 어쩌다..
여행을 갈 때마다 노트를 쓴다. 일정에 따라 얇은 공책 반 권이 되기도 하고, 한 권을 다 쓰고도 모자라 중간중간 여백을 찾아다녀야 하기도 한다. 보통 공항철도에서부터 쓰기 시작해 귀국편 비행기 안에서 마무리를 짓는데, 한 번도 정의 내려 본 적은 없지만 내심 여행의 시작과 끝이라고 생각하던 지점과 대체로 일치하지 않을까 한다. 여행을 떠난다는 실감이 날 때 그 기분을 노트의 첫 문장으로 옮긴다. 현실에 착륙하기 직전엔 마지막 마침표를 찍으며 안전 벨트를 조인다. 펄럭펄럭 페이지를 오가면서 여행을 펼치고 덮는다. 가방을 열어보자. 생리적인 욕구를 해결하거나 안전을 도모하는 데 필요한 물건을 제외하면 여행자에게 남는 필수품은 카메라가 될 것이다. 사진은 수많은 풍경과 상황, 사람에게 받은 인상을 기억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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