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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사 박물관을 나와 왕궁을 찾았다. '500년간 세를 누린 합스부르크 왕가의 영광이 남아있는 곳'이 공식적인 설명이겠으나 무엇보다 절감했던 건 입구 찾기가 힘들다는 사소한 난관이었다. 시민정원을 향하여 비교적 활짝 열려있는 신왕궁과는 차이가 있었다. 여행이 계속되면 길치도 마치 증강현실을 체험하듯 머릿속에 가야할 길을 그릴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최소한 나는 반대 상황에 처해있으니 이게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평소 길 하난 잘 찾는다고 자부했었는데, 일정이 반을 넘어가자 감각은 무뎌지고 친척동생에게 구박을 들을 지경에 이르렀다.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스페인 승마학교로 이어지는 좁은 문을 통해 구왕궁을 찾을 수 있었다. 미하엘 문(Michaelertor)이었다 싶지만 정확히 어떤 입구였는지는 솔직히 지금도 모르겠다. 자연사 박물관을 나온 이후로 그저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한 해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수요일 오후 세 시. 빈의 사람들은 여름 내 가득하던 관광객들을 잊고 평범한 하루를 보내는 중이었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한 겨울에 찾아 온 우리는 눈에 띄는 여행자도 아니었다. 심지어 우리조차도 우리가 지금 여기서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지 잊었다. 여정의 시작과 끝을 잘라버리고, 갑자기 오늘 이 자리에 뚝 떨어진 것 같았다. 단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아마 이런 기분을 느끼지 않을까?

구왕궁Alte Burg.

  8.9유로의 티켓 값을 치르고 황제의 아파트먼트와 시시 박물관에 들어갔다. 5유로란 저렴한 가격으로 자연사 박물관을 관람한 탓인지 시작부터 찜찜한 속물근성이 발휘됐다. 과연 수수해 보이기까지 하는 황제의 아파트먼트나 아름다운 여왕을 기리는 기념관은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다. 품위는 있으되 오랜 기간 오스트리아와 주변국을 지배했던 왕가치고는 소박하게(?) 살았다는 감탄 정도 있었을까. 색이 바란 황금색 내부가 지나간 세월을 가늠케 했다. 시간 앞에선 부와 권세도 숫자와 이름에 불과하다. 그나마 시시가 입었던 드레스와 몸에 걸쳤던 액세서리가 진열된 시시 박물관이 공주나 여왕을 꿈꾸어 본 여성들에겐 동심을 되살릴 수 있는 공간일 것이다.

호프부르크가의 겨울 궁전 안에서.

  구왕궁을 나와 신왕궁 뒤편의 왕궁 정원을 산책했다. 모차르트 상과 프란츠 요세프 1세의 상도 만나고 짙은 녹색과 흰색이 어우러진 잔디도 구경했다. 앞으로 일이 잘 풀리려는지(일정도 얼마 안 남았건만) 친척 동생이 새똥을 맞는 해프닝도 벌어졌는데 교묘하게 동생의 작은 카메라를 맞춘 이름 모를 새의 실력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물론 맞은 당사자야 가해자에게 욕이 나올 수밖에 없겠지만 말이다. 겨울의 한 시점에 조용히 멈춰 있는 정원 위로 낄낄 거리는 웃음소리가 퍼졌다. 친척 동생의 카메라는 이번 여행을 위해 새로 장만한 것이었다.
 
  산책을 마치고 배를 채우기 위해 Schweden Platz 역으로 이동했다. 어제 역 앞에서 먹었던 해피 누들이 자꾸 떠올라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 국수를 먹을 의향은 없었지만(굉장히 끌리긴 했다.) 워낙 인상 깊었던 어제의 식사(?)가 슈베덴 플라츠 주변을 밥 먹기 좋은 곳으로 여기게 만든 모양이었다. 해피 누들의 붉은 간판에 아쉽게 등을 돌리고 전날 봐두었던 식당으로 슈니첼을 먹으러 갔다.
  셀프 서비스로 운영되는 식당은 팁이 필요 없고 가격 자체가 저렴하다. 문제는 맛인데 이왕 여행을 온 거 제대로 된 식사를 하고 싶다면 아무래도 피하는 편이 좋다. 우리가 저녁을 먹기 위해 들어간 식당은 셀프 서비스에다가 직접 재료도 파는 곳이었다. 내부는 깔끔했지만 어쩐지 정육점에서 밥을 먹는 기분이랄까. 진열된 음식을 테이크 아웃해 갈 수도 있고 그 자리에서 바로 먹을 수도 있었다. 진열장 안에 슈니첼과 소시지, 치킨 윙 등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퍽 식욕을 당겨 이것저것 접시에 담았다. 거기에 음료수 한 잔까지. 데우지도 않고 바로 내주는데 아니나 다를까 고기는 식고 튀김옷은 눅어 있었다. 하지만 시장이 반찬이라고 오로지 육질로 이루어진 식단을 우린 훌륭하게 소화해 냈다. 너무 고기만 먹어 허한 감은 있었지만 체력 보충엔 그만이었다. 그렇게 먹어 보고 싶던 슈니첼의 맛을 조금 더 묘사해 보자면, 과연, 돈까스 맛이었다.

바싹 마른 것 같아 썩 맛있어 보이진 않네요.
 
  음날 프라하로 가는 열차의 좌석을 예약하기 위해 남역(Südbahnhof)에 들렀다. 예약비가 만만치 않을 줄 알았는데 한 자리 당 3.5유로씩 모두 7유로로 예약을 마쳤다. 뭘 하든 예상보다 비용이 적게 들어갈 때마다 액수와 상관없이 얼마나 큰 기쁨이 찾아오는지. 눈발이 날리다 그치다 오락가락하는 날씨였지만 횡재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적잖이 좋았다.
  원래 우리는 오후 12시 33분 출발 열차를 예약하려 했다. 그런데 시간표를 보니 오전 9시 30분 열차도 있는 것이다. 그 때부터 고민이었다. 빈에서 프라하까지는 약 네 시간 정도. 일찍 일어나 9시 30분 열차를 타면 곧 반나절을 버는 일이었다. 하지만 하얀 표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자니까 스스로가 의심스러워졌다. '일어날 수 있겠어?' 맙소사, 지금껏 평균 기상 시간이 9시 안팎이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이건 될 일이 아니었다. 이성은 9시 30분으로 예약을 잡으라 외쳤지만 본능은 논리보다 강했다. 마음의 소리를 입 밖으로 꺼내 친척 동생에게 "일어날 수 있을까?"라 물으니 그쪽 대답도 영 시원찮았다. 긴가민가한 상태에서 그 시원찮은 대답에 큰 힘을 얻고 우린 원래 시간대로 좌석을 예약했다. 그래 무리할 것 없잖아. 프라하의 여정보단 당장 내일 여유 있게 준비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지금 다시 예약하라고 해도 같은 선택을 하겠지만, 정말 참을 수 없이 나약한 의지가 아닌가.

  S-Bahn 을 타고 (2층 열차를 신기해하며) Wien Mitte 역으로 이동했다. 굳이 그쪽으로 간 이유는 떠오르지 않는데 당시에도 별 생각 없이 이동한 게 아닌가 싶다. 도나우 강의 지류를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를 건너 링의 중심을 향하던 와중, 피로가 해일처럼 몰려들었다. 이대로 계속 걷는 건 무리겠다 싶어 Wifi가 된다는 카페를 찾았다. 이런 간판 걸어놓고 커피를 안 판다면 이상할, 'Coffeeshop Company'란 이름의 카페였다. 멜랑제 한 잔이나 할까 싶었지만 아뿔싸. 완벽히 프랜차이즈화 된 카페로 메뉴가 스타벅스나 커피빈 등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아쉬운 대로 카푸치노를 주문했다. 모든 게 셀프일 것 같은 분위기였지만 음료를 가져다주고 계산도 테이블에서 해줬다.

Coffeshop Company.

  따뜻한 커피와 함께 하루의 여정을 정리해 보았다. 빈에서 이름 난 곳을 모두 돌아다니는 식의 치열함은 없었지만 나름 동선은 길었다. 보아도 본 것 같지 아니하고, 느껴도 느끼지 아니한 것 같은 흐릿한 직선과 곡선이 빈의 지도 위를 수놓았다. 그러고 보면 이제 여행도 막바지였다. 내일 프라하로 이동해 이틀을 보내고 그 다음 날 KLM 항공을 이용해 서울로 귀환. 다른 사람들의 배낭여행 일정에 비하면 턱도 없이 짧은 열흘이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적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기억하고 싶은 순간'이 '기억으로 남은 순간'이 되는 지점에서 지금 이 시간이 조금이라도 더 길어지길 바랄 수밖에 없었다. 납득할 도리 외엔 없는 아쉬움과 무력감이 느껴졌다.
  여행에서 엄청난 분량의 사진을 찍는 이유는 그 때문인지 모른다. 정지된 이미지라도 남겨 언젠간 흐려질 기억을 보완하기 위해서다. 그것이 과해지면 실물이 아닌 LCD나 뷰파인더에 매몰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영미권의 표현을 빌리자면 말 앞에 마차를 놓는 격인 셈이다. 게다가 짧은 경험에서 느낀 바, 당장은 사진을 찍으며 안타까움을 무마할 수 있을지 몰라도 후에 사진을 들추면 그 때의 아련한 느낌이 훨씬 더 지독하게 살아나는 것 같다. 어떤 식으로든 좋은 시절, 인상적인 순간을 정지시킬 힘이 우리에겐 없는 모양이다. 

계속 셔터를 누르는 이유.

  멈추게 하지 못 한다면 결국 충실하게 누릴 수밖에 없다. 빈의 마지막 밤을 우린 산책을 하며 보냈다. 케른트너 거리는 어제보다 한산했다. 사람보다 조명이 더 가득한 거리엔 겨울 냄새가 짙었다. 막연하게, 딱히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이유로 가슴이 싸해졌다. 베네치아에서 느꼈던 먹먹함과는 또 달랐다. 도시 전체에 빈자리가 놓여 있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흐르는 헛헛한 공기는 밀도가 아주 높았다. 이대로 계속 된다면 그 누구도 서로 마주치지 못하는 세상으로 바뀔 것만 같았다.

빈을 거닐다.

  어쩌면 그건 이방인으로서 느끼는 마땅한 감정일지 모른다. 실로 행인들 사이엔 어떤 거리감도 존재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카페로, 술집으로 들어갔다. 크고 두꺼운 문이 열리는 잠깐 동안, 음악 소리와 대화 소리가 공기 중에 기분 좋게 웅웅거렸다. 그저 우리를 위한 빈자리만 없었을 뿐이다. 현지인과 이방인은 얇은 막으로 나뉜 다른 차원을 동시에 걷는다. 그들의 자리와 우리의 자리는 서로 겹칠 수 없다. 그들이 홀가분하게 프라하 행 열차에 오르거나, 가방 하나만 들고 인천행 비행기에 몸을 싣지 못 하듯이. 그러니 이 쓸쓸한 감정은 오히려 고마운 존재였다. 존재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생생해서 감사해야 했다. 여행자의 차원을 걷는다는 증거였다. 여행을 떠난 모든 이들이 누릴 수 있는 순수한 권리였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빈의 야경이 조금 더 아름다워 보였다. 이 도시가 기억에 오롯이 물드는 순간이었다.

묵직하게 닿은, 빈의 마지막 날.
(보이는 건물은 신왕궁과 시청사)


P.S.

  오늘도 그냥 자기 아쉬워서 호텔 옆 식당 겸 바에서 하이네켄 두 병을 샀다. 그리곤 남은 소주와 섞어서 소맥 파티. 국물이 필요하다 싶어 뜨거운 물에 라면 스프만 풀었는데 그럴싸했다. 온갖 밑반찬을 곁들여 먹으며 짐도 줄였다. 생각해 보면 이렇게 비싼 맥주(?)로 소맥을 타 마신 것도 처음이었다. 아하, 이렇게 기분을 내는 거지. 하이네켄 소맥은 꼭 한 번 마셔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핑크색 캡션 사진은 fujifilm F50fd으로
푸른색 캡션 사진은 Canon A-1 + superia 200으로 촬영했습니다.
F50fd 사진은 필름과 느낌을 맞추기 위해 크롭 및 보정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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