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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히 비구름이 남아있는 하늘 때문에 황혼은 흐리터분했다. 사람들의 추천대로 우리는 링을 순환하는 1번 트램에 몸을 싣고 있었다. 덜컹거리는 노면전차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실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빈의 시내를 감상할 수 있었다. 해가 저물수록 하늘은 붉어졌고, 거리는 가로등 불빛에 젖어 호박색으로 물들었다. 다양한 빛깔로 깜빡이는 네온사인도 노란 색감에 잘 조화되는 인상이었다. 빈의 건물들은 그런 조명 사이에 우뚝 서서 세련미를 뽐냈지만, 동시에 커다란 모형이나 영화의 세트장 같은 느낌도 풍겼다.

트램에서 본 노부부. 부인의 표정에서 동반자에 대한 한없는 믿음을 느낄 수 있었다.

  반 바퀴를 돌고 Schweden platz에 내렸다. 등 뒤로는 도나우 강이 흘렀고, 앞쪽으로는 꽤 많은 가판이 늘어서 있었다. 핫도그나 샌드위치, 피자같이 다양한 먹을거리를 파는 가판들이었는데 저렴한 가격으로 빠르게 배를 채울 수 있는 곳이었다. 우리는 곧 'Happy Noodles'란 이름의 빨간색 간판에 마음을 빼앗기게 되었다. 중국식 국수 요리와 일본식 덮밥 요리를 제공하는 간이식당이었다. 주변에 널린 느끼한 음식과 달리, 해피 누들의 불붙은 철판에선 매콤한 냄새가 풍겼다. 면뿐만 아니라 쌀밥을 먹을 수도 있다는 메뉴의 다양함 역시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었다.
  인기도 좋았다. 서서 먹을 수 있는 간이 테이블 앞엔 많은 사람들이 모여 후루룹하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거의 퍼먹는 수준이 대부분이었지만 젓가락을 사용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들이 손에 들고 있는 네모난 종이 상자는 미국의 드라마나 시트콤에서 주인공들이 중국 요리를 먹을 때 들고 나오던 바로 그것이었다. 호기심 반 식욕 반, 마음 속 화살은 이미 해피 누들을 가리키고 있었다. 저녁은 든든하게 먹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망설여 보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우리는 어느새 줄 뒤에 서서 주문할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몇 유로에 행복해 질 수 있는 곳!

  요리사나 캐셔 모두 중국인이라 같은 아시아 출신으로서 반가웠지만, 그네들은 우리에게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하긴 우리 역시 지금 당장 중요한 건 고기가 들어간 볶음 국수와(내가 시켰다) 돼지고기를 올리고 데리야키 소스를 뿌린 덮밥(친척 동생이 시켰다)이었으니 이해할 만한 일이었다.
  곧 간이 테이블에서의 즐거운 식사가 시작됐다. 나는 주변의 유럽인들에게 한국인다운 능숙한 젓가락질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들떴고, 친척 동생은 드디어 쌀밥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 젓가락질 실력은 정도에서 한참 벗어난 사파(邪派)쯤 됐고, 취사병 출신으로 오랫동안 수 백 장병을 위해 쌀을 찌던 친척 동생에겐 밥이 살짝 설익게 느껴졌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기대와는 좀 달라도 우리 둘 다 굉장히 만족해했다는 점이다. 매콤한 소스를 뿌려 먹는 볶음 국수는 라면을 먹어도 채워지지 않았던 얼큰함이 살아 있었고(함께 들어간 숙주나물의 공도 컸다), 익은 정도야 어쨌든 쌀밥은 그 존재만으로 친척동생을 감복시켰다. 이름 그대로 정말 행복해지는 곳이라는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도 채웠겠다 이젠 맥주를 마실 시간이었다. 우린 가이드북에서 '크라 크라(Krah, Krah)'란 곳을 눈여겨 뒀었는데 Schweden platz에서 내린 것도 그 때문이었다. Krah란 단어가 까마귀가 내는 소린지 아니면 까마귀를 말하는 소린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쨌든 안내서에 따르면 그곳은 빈에서 상당히 유명한 주점이며 분위기가 아주 활기찬 곳이라고 한다. 함께 등재된 곳 중 가장 대중적으로(우리 식으로 이야기 하자면 가장 저렴한 곳으로) 보인다는 점에서도 높은 점수를 주고 싶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항의하는 바대로, 가이드북은 어느 장소를 그럴싸하게 소개하는 능력은 뛰어날지 몰라도 지도에 점을 찍는 덴 너무나 서툴렀다. 아주 큰 길이 아닌 한 많은 도로가 심각할 정도로 모호하게 그려졌으며, 꺾어진 각도나 방향도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무엇보다 골치 아팠던 건 좁은 골목은 남겨두면서 그보다 큰 길을 무시하는 초유의 생략법이었다. 가이드북의 분량을 보면 편집자들이 얼마나 고생을 했을지 대충 가늠이 되긴 하지만, 그런 고충을 현지에 뛰어든 독자에게 전가할 필요까지야 없지 않은가.

헤매고, 헤매고, 헤매다.

  여하튼 요는 크라 크라를 찾기 힘들었다는 것이고, 덕분에 성 슈테판 성당 근처까지 내려가고 말았다. 세상의 모든 브랜드는 하나씩 다 있을 것 같은 번화가를 떠돌다가 술집을 찾는 게 아니라 시내 구경을 하다가 여기까지 왔구나 싶어서 얼른 제자리로 돌아왔다.


우습게도 스타벅스를 보면 동향을 만난 것처럼 반갑고 편안할 때가 있었다. 과연 세이렌, 매장 수로 세계정복.

  처음부터 차근차근 지도를 재분석하며 걸은 결과, 우리는 출발점으로부터 서쪽으로 몇 블럭 떨어진 골목 사이에서 크라 크라를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도, 또는 우리의 지도 분석력을 탓하기도 전에 좌절에 빠지고 말았다. 손님으로 꽉 차 빈자리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리 크지 않은 실내에 낯선 외국인들(우리의 시점으로)이 잔뜩 모여 깔깔거리고, 뭔가를 소리치고, 술병을 부딪는 광경을 보자 절로 기가 죽었다. 조용히 빠져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달리 갈 곳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른 주점을 찾기 위해 돌아다녀 봤지만 딱히 성에 차는 곳이 없었다. 그저 처음부터 점찍어 둔 장소에 가는 게 옳은 일 같았으니, 선입견(?)이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그리하여 30여분이나 링 북쪽을 배회하다가 다시 크라 크라로 돌아갔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그새 우리가 비집고 들어갈 만한 바 자리 하나가 비어있었다. 냉큼 자리를 확보했다. 소란스러운 건 아까와 마찬가지였지만 이번엔 우리의 기세도 약해지지 않았다. 사실 식당에서 밥을 먹거나 술집에서 맥주 한 잔을 시키는 너무나 평범한 일들이, 여행 중엔 오히려 길을 찾거나 외국인과 어설프게 대화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게 느껴졌다. 지금껏 아주 당연하게 여겨왔던 일에서 실수를 할 수도 있다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다. 처음 보는 이들의 바보 취급이 걱정되고 그런 취급을 받는 나 자신을 용납할 수 없어서 이런 허세를 부리는구나 싶자, 어쩐지 씁쓸해졌다. 스스로 족쇄를 차는 꼴이었니 말이다.

  그러나 까마귀 세 마리가 나란히 앉아 있는 크라 크라에선 그런 씁쓸함도 잠시였다. 우리에겐 모든 빗장을 풀어줄 수도 있는 한 잔의 맥주가 있었다. 사람들의 표정은 맥주맛도 모르는 뜨내기들은 들어오지 말라는 위협이 아니라 다 같이 보리술에 기분 좋게 취해보자는 권유였다. 대화는 왁자지껄하게 이어지고, 음악 소리는 요란했으며, 오스트리아의 가정식 요리는 아찔한 향기를 풍겼다. 기대를 키우며 커다란 메뉴판을 펼쳤다. 이번에도 독일어로 쓰여 있어서 곤혹스러웠지만, 우리에게도 희망은 있었다. 크라 크라만의 생맥주, Krah Bräu가 있었기 때문이다. 종류가 너무 많아서 뭘 골라야 할지 모를 때 일단 간판을 내 건 맥주를 선택하는 건 잃은 확률이 낮은 곳에 베팅을 하는 것과 비슷했다.

초록색, 까마귀 세 마리, 그리고 Krah, Krah

  주변을 둘러봤다. 분위기는 한국의 술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서서 마시는 사람들도 꽤 있어서 전체적으로 공간이 꽉 차있다는 게, 그래서 더 북적북적 하다는 게 조금 다를 뿐이었다. 내심 특별한 무언가를 기대했었다는 걸 부정할 순 없지만 사람들이 알코올에 취하는 곳이란 게 어딜 가나 비슷한 면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평소보다 빨리 가벼워지는 마음까지 무시할 순 없었다. 처음엔 신경 쓰였던 낯선 이들의 시선이 오히려 동향 사람들의 시선보다 편하게 느껴졌다. 평일의 밤을 누군가와 함께 즐기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도 마음을 느슨하게 하는데 도움이 됐다. 혼자 와서 점원과 끊임없이 대화하는 사람, 시끄러운 바에 앉아 잡지를 보는 사람, 빠르게 식사만 마치고 가는 사람처럼 이 장소를 즐기는 방법은 아주 다양해 보였다. 주문한 크라 맥주가 나오자 이 요란스러움에 동화되는 속도가 훨씬 빨라졌다.

이렇게 소란스러운 곳에서 스테판 킹의 소설을 옆에 두고 잡지를 읽던 남자.

  담배 연기가 자욱했다. 술집 곳곳엔 '아발론'이란 라이브 밴드의 음반을 판다는 A4 용지 광고가 붙어 있었다. 이곳에서 종종 공연을 했던 밴드인 모양인데, 소박한 홍보 수단이었지만 웬지 여기 단골들에겐 더 잘 먹힐 것 같았다. 문득 아발론의 노래를 들어보고 싶어졌다. 스피커에서 얼마나 좋은 음악이 많이 나오는지 여기서 파는 CD도 남다를 것 같았다. 크라 맥주를 비우고 에딩거 헤페 한 잔을 더 시켰다. 나른해지며 며칠 동안 지나온 길과 며칠 동안 더 가야 할 길에 대한 생각마저 흐릿해졌다. 피로 때문에 술기운이 더 잘 퍼지는 것일까 아니면 크라 크라의 홈페이지에서 강조하는 '보헤미안의 편안한 분위기'에 빠진 것일까. 아무래도 좋았다. 어쩌면 아무도 우리를 모르는 곳에서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 잔에 일종의 해방감이 깃들어 있던 건지도 모르겠다.

흐릿해지다.


PS 1.
  크라 크라를 나와 집에 돌아오는 길. 2번 트램을 타고 가다 Karlsplatz역을 지나쳐 완전히 어둡고 완전히 외진 곳까지 끌려갔다. 정거장을 놓친 건 우린데, 방송도 너무 작고 역 이름을 확인하는 것도 쉽지 않다며 불평을 했다. 다행스럽게도 트램은 종점 같은 곳에 10여 분을 멈춰있다가(이 때의 긴장감이란!) 다시 링 쪽으로 출발했다. 오후 9시에 새벽 3시의 동네를 구경할 수 있는 유럽의 묘미는 이번에도 우리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었다.

PS 2.
  호텔에 돌아와 샤워를 하는 시간. 샤워기를 홀더에 걸었는데 힘없이 툭 떨어져 버린다. 쾅 소리와 함께 샤워기가 박살이 났고, 내 정신도 함께 박살이 나는 기분이었다. 그냥 무시하고 낼 모레까지 버틸까 하다가 뒤탈이 있으면 안되겠다 싶어 터벅터벅 로비로 내려갔다. 변상을 해야 하나 어쩌나 하는 걱정이 머릿속에서 뒤죽박죽 엉켰다. 그래도 침착한 얼굴로 샤워기가 고장 났다고, 내 잘못은 아니라고(!), 걸이에서 저절로 떨어져 버렸다고 이야기했다. 로비에 있는 여성은 (내가 부순 게 아니라는 말을 의심하지 않은 듯) 지금은 고쳐줄 수 없다면서 차라리 방을 바꿔주겠다고 제안했다. 덕분에 우리는 같은 급이지만 조금 더 크고 싱글 침대도 하나 더 있는 방으로 옮길 수 있었다. 변상을 안한 것도 다행인데 더 좋은 방으로 가게 되다니! 이런 걸 전화위복이라고 해야할까? 빈에서의 첫날 밤이 즐거워지는 순간이었다.


핑크색 캡션 사진은 fujifilm F50fd으로
푸른색 캡션 사진은 Canon A-1 + superia 200으로 촬영했습니다.
F50fd 사진은 필름과 느낌을 맞추기 위해 크롭 및 보정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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