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기 구름을 금색과 은색 꽃다발로 된 깃발처럼 나부끼며(지금껏 수없이 보아왔던 새털구름처럼 하늘 높이 그 거대한 덩어리들을 햇살 속에 펼치며) 차량을 줄줄이 달고 행성처럼 내달리는 기관차를 볼 때면(그보다는 혜성처럼 달린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왜냐하면 그 궤도가 반환곡선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에 구경꾼의 눈에는 그 정도의 속력에 그 방향으로 질주할 경우 기차가 태양계로 되돌아올지는 알 수 없는 일이므로), 이 이동하는 반신과도 같은 존재, 구름을 내뿜는 존재가 오래지 않아 노을진 하늘을 자기 열차의 제복으로 삼기라도 할 것처럼 보인다. 또한 이 철마가 천둥 같은 콧김으로 언덕을 울리고 그 발로 땅을 흔들고 불을 숨쉬며 콧구멍으로 연기를 내뿜는 소리를 들을 때면(어떤 날개 달린 말이나 불 뿜는 용이 새..
[바닐라 스카이의 짧은 유럽 여행기 (12) - 빈(비엔나) 셋, Krah Krah] 보기 누군가에게 정이 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처음 만나는 사람과 얼마 만에 사랑에 빠질 수 있는가하는 문제보다 어려운 질문이다. 첫눈에 반한다는 말은 있어도 첫눈에 정이 들었다는 말은 없는 걸 보면 정의 숙성기간이 사랑보다 길다는 건 알겠다. 하긴 정이란 말 자체에 그 대상과 시간을 함께 보냈다는 전제가 깔려있지 않은가. 하지만 반드시 누적된 시간이 길어야 정이 드는 건 아니다. 출장이나 여행 중에 스친 사람에게, 때로는 인터넷에서 만난 얼굴도 모르는 아이디에게 정이 들 여지도 있다. 수십 년을 같이 산 부부가 눌러 담은 오만가지 정처럼 농밀하진 않겠지만, 그렇게 짧은 교제의 와중에도 마음이 열릴 가능성이..
정부는 인플레를 싫어한다고 하고 연인들도 그럴지 모르지만, 적절하게 기능하는 연애 경제를 위해서는 인플레가 유용한 때도 있을 것이다. "아니, 저기요. 미안하지만 두통이 나서/남자 친구가 있어서/여자 친구가 있어서/속이 불편해서 오늘 밤은 여기서 헤어져야겠네요."라고 말하는 게 도움이 될지 모른다[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면 상대는 진정한 사랑의 과정은 순탄하지 않다고 아쉬워할 것이다. 한쪽에서 '내가 부족해. 저이는 과분한 사람이야.' 하고 생각하게 된다면 상황은 유리할 것이다. 그제야 유혹하는 쪽에서 초콜릿을 사고, 깊이 한숨지으며 '세상이 허락된다면, 시간이 허락된다면, 그대여, 이 아늑함은 죄가 아닐지니……' 하는 시를 쓰는 것이다. 사랑을 사랑하는 연인은 단순히 X가 멋지다고 여기지 않고, '..
일반적으로 공동의 고립감은 혼자서 외로운 사람이 느끼는 압박감을 덜어주는 유익한 효과가 있다. 도로변의 식당이나 심야 카페테리아, 호텔의 로비나 역의 카페 같은 외로운 공공장소에서 우리는 고립의 느낌을 희석할 수 있고, 따라서 공동체에 대한 독특한 느낌을 다시 발견할 수 있다. 이국적이라는 말을 좀 더 일시적이고 사소한 맥락에서 생각한다면, 외국에서 만나는 장소의 매력은 새로움과 변화라는 단순한 관념으로부터 나온다. 예를 들어 고향에는 말이 있을 만한 곳에 낙타가 있다거나, 고향에는 기둥을 세운 아파트 건물이 있을 만한 곳에 장식이 없는 아파트 건물이 있다거나. 그러나 좀 더 심오한 기쁨도 있을 수 있다. 우린느 외국의 요소들이 새롭기 때문만이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이나 신조에 좀 더 충실하게 들어맞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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