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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자기 8일 정도 유럽을 가게 됐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이런 말을 했을 때, 십중팔구는 부러워하는 기색이었다. 유럽 출장이 출발 닷새 전에 결정이 되면 본인이야 당황스러워도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으로선 저 친구 제대로 운이 좋구만, 할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좀 갑작스럽긴 하지만 다른 곳도 아니고 유럽이지 않냐며 격려하는 반응도 상당하다. 유럽연합에 속한 나라가 25개국이고 그렇지 않은 나라가 다시 그만큼이나 더 존재하는데, 어느 나라를 가느냐와는 상관없이 그저유럽'으로 출장을 가게 돼서 좋겠다는 건 그 땅에 대한 지나친 동경인지도 모른다. 하긴 멀기도 멀고, 비행기 삯도 비싼데다가, 세계사를 배우는 순간부터 의식 속에서 서양 역사와 문화의 나침반은 그곳으로 향하게 마련이니 당연한 일일까. 이렇게 말하는 나조차도 지구에서 딱 한 지역만 가라면 주저 않고 유럽 대륙을 고를 테니 말이다.
 
그런데 갔다 오고 나니 여행노트와 사진은 남았는데 그 경험을 여행기란 알맹이로 맺기가 힘들었다. 배낭여행이나 팔라우 출장 때와는 달랐다. 이런저런 많은 생각은 끼적거렸으나 기행문으로 다듬어 펼치기엔 주제도 서사도 매력도 없었다. 4개국 6개 도시를 주마간산으로 돈 필연적인 결과랄까. 하지만 사실 빡빡한 일정이 문제는 아니었다.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없었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대체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은 세 분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오랫동안 준비해서 떠나는 사람들이고, 다른 하나는 갑자기 떠나더라도 오랫동안 가 있는 사람들이며, 마지막은 언제 어떻게 떠나든 항상 떠나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혀 있다가 마침내 그것을 터트린 사람들이다. 누구나 여행을 위해서 사전조사를 하고, 색색 블록처럼 기대를 쌓아올리고, 오랜 시간을 들여 시시각각 변하는 환경과 감상을 갈무리한다. 그런데 닷새 만에 짐을 싸고 여드레 만에 집에 돌아왔으니, 남들 같으면 한참 준비하고 두근거릴 시간에 벌써 모든 여정을 끝내버린 셈이다. 그러니 되도 않게 끄집어낼 감상조차 없는 법이지!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여행노트와 사진은 남았고, 앞으로도 잊혀지지 않겠다 싶은 순간을 여권에 포개서 가져왔기에 결국 두 번째 유럽 여행기를 시작하고야 만다. 그저 이번엔 분량이든 집필 기간이든 첫 번째 여행기만큼 길어지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

 

canon A-1 + 24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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