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은 차를 빌려 가는 곳에 버스를 타고 갔다. 오키나와의 대중교통은 나하 시내를 벗어나는 순간부터 난해한 문제가 된다. 정거장에 붙은 노선도는 암호문처럼 보이고, 만능인 줄 알았던 구글 지도는 침묵하며, 어떤 버스도 시간표에 쓰인 대로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끝내 오키나와의 바다를 제대로 보지 못한 우리에게 그것이 전혀 아쉽지 않도록 독려한 곳이 바로 미나토가와港川였다. 외국인 거주 지역이었고, 식민지풍의 단층 주택이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젊은 주인들이 손님을 맞이하는 곳. 대중교통도 소문만큼 열악하진 않았다. 우리는 그나마 자주 오는 버스를 타서 삼십여 분만에 미나토가와 주변에 내렸고, 다시 십여 분을 걸어 무사히 그 작은 동네에 도착했다. 막상 그곳에 가보니 차가 없는 편이 나아 보였다. ..
나는 롯데리아에 앉아 반숙 계란 버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간밤에 마신 술 때문에 늦잠을 잤고, 덕분에 아침도 먹지 못했다. 세상은 심심한 모양인지 때때로 빙글빙글 돌았다. 해도 거의 중천에 떠 있었지만, 내 눈엔 새벽이 막 지난 것처럼 거리가 푸른빛으로 코팅돼 있었다. 여행 첫날의 숙취가 떠올랐다. 도대체 인간이란 학습할 줄 모르는 동물인가 보다. 다시 방으로 돌아가 좀 자다가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으나 그건 나 자신도 웃을 수 없는 재미없는 농담이었다. 숙취를 해소한답시고 햄버거를 먹는 버릇이 있다. 고기에 야채, 빵까지 다 들어있으니 몸에 좋지는 않을지언정 영양소 구색은 다 갖췄다고 믿어서다. 특히 햄버거엔 리코펜이 함유된 토마토가 들어있기 마련이다. 토마토가 없으면 최소한 토마토케첩이라도 들어..
혼자 아주 오랫동안 여행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자신 있게 말할 순 없지만, 혼자서 생각을 정리한다는 흔히 쓰이는 말이 최소한 나에겐 해당하지 않으리라고 확신할 수 있다. 내가 생각을 정리할 때는 주로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다. 여행이라는 라벨을 붙인다면 그건 번지수를 착각했다는 뜻이다. 오히려 짧게는 몇 시간에서 길게는 일주일 정도 혼자 다니다 보면 생각의 양이 엄청나게 줄어든다. 그저 끊임없이 혼잣말을 반복하고 뭔가를 끊임없이 느끼기만 할 뿐이다. 마치 영사기의 빛을 쬐고 있는 하얀 스크린처럼. 세상은 나에게 끊임없이 뭔가를 덧씌우지만, 남는 흔적이라고는 먼지 몇 줌뿐이다. 물론 나중에 회상하면 몇 줄이라도 쓸 거리가 생기긴 하지만, 당장은 기대만큼 드라마틱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내가 다..
마닐라는 교통체증이 심하기로 유명하다. 특히 교외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길이 엄청나게 막혀서 짧은 거리에도 몇 시간씩 소비해야 했다. 하지만 여행의 가장 큰 묘미가 걷기에 있을지언정 차를 타고 보는 풍경도 허투루 볼 수만은 없다. 인도 위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차도 위에선 드러나기도 한다. 특히 고속도로, 휴게소, 교외 풍경 등은 차를 타지 않으면 만날 수 없다. 이국의 정취, 평범한 삶의 조각은 주거지역의 골목길 안에만 있는 게 아니다. 간식을 사서 시골로 내려가는 고속버스에 올랐던 어릴 적 기억을 떠올려 본다. 집과 학교가 있는 익숙한 동네에서 일탈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던 곳은 바로 그 고속도로 위, 등유 냄새 코를 찌르는 휴게소였다. 버스를 더 많이 타 본 탓인지 나는 기차역보단 고속도로 휴게..
일광욕이라든가 광합성이라든가 전부 여름 햇살 아래에선 어림도 없는 소리다. 나는 피부가 검고, 여기서 삽시간에 더 시커메질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일부러 땡볕을 피하는 편이다. 누가 그 무자비한 레이저를 좋아하겠느냐만은 난 보통보다 유난스럽기는 하다. 그러니 태양의 무게가 훨씬 무거운 지역으로 여행을 오면 매일 아침 창밖을 보며 저 햇살 아래로 나가야만 하는가 회의에 빠지곤 한다. 할 수만 있다면 외출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다. 그러나 결국 챙 있는 모자를 찾거나 선 블록 크림을 보다 꼼꼼하게 바름으로써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거라고 자신을 속여야 한다. 거리에 야자수가 자랄 수 있는 나라에서는 그 모든 조치가 눈 가리고 아웅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이내 깨닫고야 말지만. B의 집은 거의 리조트를 방불케..
샹젤리제 거리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도중 묘한 불편함을 느꼈다. 파리에서 가장 아름답기로 소문난 거리지만, 내가 만약 이 거리라면 나에게서 이물감을 느낄 것 같았다. 이물감은 예상치 못한 존재에 대한 거부반응이다. 그러나 나의 경우에는 아름다움을 향유하지 못하는 존재에 대한 거부반응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무척 피곤한 상태였고, 날씨는 너무 추웠다. 맑은 하늘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그 빛깔만큼 서늘했다. 내가 본 파리의 야경 중 개선문 전망대에서 봤던 야경이 가장 인상 깊었다. 헥헥거리며 나선 계단을 올라 싸늘한 옥상에 섰을 때, 그때부터 나는 파리를 사랑하기 시작했다. 추적추적 내리던 비가 막 그치고 시내 전체에 뿌연 안개가 꼈던 밤이었다. 에펠탑 이 층 전망대 높이까지 구름이 내려온 그런 시 ..
파리에 있는 미술관 중 한국인에게 가장 익숙할 곳을 꼽으라면 역시 오르세 미술관일 것이다.인상파 화가를 향한 근원 모를 선호는 오르세를 기차역을 개조한 미술관 그 이상으로 만들었다.물론 나도 마찬가지고. 내린다. 2월의 눈이다.파리에 있었던 육 일 중 유일하게 흐렸던 날이었으며그래서 가장 아름다운 날이기도 했다."파리는 흐려야 제맛이죠." 건너편으로 루브르 궁전이 보인다.잔뜩 낀 눈구름이 풍경을 몇 십 년 정도 뒤로 돌려놓았다.평일이라 거리엔 사람도 별로 없었다.사람 없는 풍경을 사진 찍기가 퍽 힘들지만,마음 속에 남기기엔 텅 빈 화면이 더 낫다. A는 개인 관람객을 위한 줄.B는 단체 관람객을 위한 줄. C가 있었던가? 예약자를 위한 줄이었을까? 아주 발랄한 소녀가 거의 텅 비다시피한 대기열을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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