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필름 사진은 여름이 오기 전이다. 그동안 삿포로에 다시 갔었고, 20롤이나 현상스캔을 맡기며 역시 돈이 많이 드는 취미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 산 카메라는 여전히 익숙해지는 과정이고, 아직은 미니룩스가 편하긴 편하다. 좀 저렴한 필름을 주문해야겠다 생각하며. @스타필드 고양 녹차에다가 아이스크림이라니. 그러나 잘 먹는다. 머리가 띵할 때까지. 이제 스타워즈를 보여줄 때가 됐는데. 서로 다른 곳에 집중했다. 여기가 집에서 가장 예쁘다고 생각되는 부분. 빨래방의 즐거움. 그에 관해 글도 한 편 섰다. 햇살이 좋을 땐 역시 미니룩스가-. @여주아직 잠바를 입어야 할 날씨였다. 미세먼지도 별로 없던, 볕 좋은 오후. 묘한 건물. 사람이 사는가 살지 않는가. 언제부턴가 하늘을 잘 안 찍게 됐다. @성수동아..
2주도 남지 않은 출장 땐 오랜만에 필름 카메라를 메인으로 쓰려고 한다. 카메라야 35mm 화각을 물린 걸로 가져간다고 쳐도, 어떤 필름을 쓸 것인가가 문제다. 아무래도 감도는 400으로 해야겠고, 일본 내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어떤 필름이든 한국보단 구하기 쉽겠지만) 필름이어야 한다는 조건에 부합하는 건 역시 후지필름의 필름들. 그렇다면 너무 비싸지 않은 선에서 두 종류로 압축되는데, 바로 이 포스트에 쓰인 X-TRA 400, 그리고 이제 막 현상을 맡긴 기록용 FUJI 400이다. 국내 가격은 X-TRA 400 쪽이 더 싸다.X-TRA 400은 평가가 꽤 좋다. 400치고 그레인도 심하지 않고 발색도 좋다, 뭐 그런 이야기들. 기록용 400은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들을 보니 채도가 좀 낮고 디지털 ..
스캔된 사진을 받았다. 몇 달에 한 번씩 필름을 맡겼다 찾곤 했지만, 이번엔 '새로운 필름 생활'이라는 폴더를 만들었다. 첫 번째 숫자를 기입하자 모든 것이 새로워졌다. 더 자주 맡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내도 필름으로 찍힌 사진을 좋아한다. 아이는 우리가 실내 촬영을 할 일이 많아 셔터스피드가 느리다는 사실을 알기라도 하는 듯, 끊임없이 움직이며 잔상을 남긴다. 그래도 새로 이사 간 집은 감도 200짜리 필름으로 충분히 찍을 수 있을 만큼 조도도 높고 조명도 예쁘다. 갈 곳이 없으면 집 안을 방황하면 된다.한편 카메라는 세 대가 쓰일 예정이다. 라이카 미니룩스, 장모님이 쓰시던 미놀타 XG1과 MD ROKKOR-X 45mm F2, 그리고 새로 구한 콘탁스 167MT와 Zeiss T* Distagon..
이렇듯 갑작스럽게 돌아갈 시간이 됐다. 정리하다 보니까 셋째 날 낮 이후로는 찍은 사진이 별로 없다. 어느새 출국을 위한 터미널에 있었고, 멍한 기분으로 게이트를 찾아 떠돌아다녔다. 어쩌면 이번이 진짜 마지막일지도 모르겠다는 허전함을 느꼈다. 어디든 만족했던 곳이라면 "언제 또 오겠어?" 따위의 맥빠지는 소리는 되도록 하지 않으려 했었다. 인연이 닿으면 다시 오게 될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반대다. "한동안 다시 오지 않을 거야." 전등에 매혹된 여름 벌레처럼, 피할 곳이 절실한 도망자처럼 홍콩에 또 오진 말자고, 여행 횟수가 줄어들 테니 여력이 된다면 그 기회를 다른 도시에 주자고 다짐한다. 여행을 떠나서 꼭 다시 오겠다는 의지를 불태워 본 적은 있어도 꼭 다시 오지 않겠다는 의지를 불태..
너츠포드 테라스에서 한국 식당이 많은 거리를 지나 좀 더 아래쪽으로, 스타의 거리에 가까운 쪽으로 이동했다. 우리는 점점 강렬해지는 배고픔을 살살 달래며 눈에 띄는 근사한 곳이 나타나기를, 저도 모르게 마음을 빼앗기게 되는 그런 곳을 발견하기를 바랐다. 물론 메뉴 자체는 일식으로 하자고 이미 결정한 상태였지만 말이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실패할 확률이 없다는 이유 때문에 일식을 먹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오히려 홍콩에서 보다 만족스러운 일식을 먹으리란 기대에 부풀어 새로운 일식당을 향한 도전 의식을 불태웠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그런 의미에서 '고궁'이란 한식점도 우리의 주의를 끄는 덴 실패했다. 오히려 내가 담고 싶었던 건 하늘이었다. 정말 가끔씩 밖에 찍지 않게 된 하늘을 말이다. 건물..
전날 란콰이퐁에서 신나게 마시다 들어온 관계로 오늘도 거의 정오가 다 되어 눈을 떴다. 홍콩의 아침을 보지 못하는 건 이젠 놀랍지도 않은 일이다. 오히려 너무 당연한 일이랄까. 홍콩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이 가이드북을 뒤적거리다 눈여겨 볼 부분을 하나 추측하자면, 아침 일찍 공원에 가면 태극권을 하는 시민들을 볼 수 있다는 안내가 아닐까 한다. 일단 나도 그랬으니까. 그땐 몰랐다. 아침에 공원에 가는 부지런함이 나에겐 얼마나 요원한 일이었는지. 공중 정원에 가 하늘을 올려다 보니 날이 많이 흐렸다. 사실 지금까지 운이 좋은 편이었다. 우리 여정 내내 홍콩에 비가 온다는 일기 예보를 봤었기 때문이다. 금요일부터 온다는 비가 토요일로, 토요일부터 온다는 비가 일요일로 미뤄져 마침내 먹구름이 꼈다. 수중전(?..
샹젤리제 거리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도중 묘한 불편함을 느꼈다. 파리에서 가장 아름답기로 소문난 거리지만, 내가 만약 이 거리라면 나에게서 이물감을 느낄 것 같았다. 이물감은 예상치 못한 존재에 대한 거부반응이다. 그러나 나의 경우에는 아름다움을 향유하지 못하는 존재에 대한 거부반응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무척 피곤한 상태였고, 날씨는 너무 추웠다. 맑은 하늘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그 빛깔만큼 서늘했다. 내가 본 파리의 야경 중 개선문 전망대에서 봤던 야경이 가장 인상 깊었다. 헥헥거리며 나선 계단을 올라 싸늘한 옥상에 섰을 때, 그때부터 나는 파리를 사랑하기 시작했다. 추적추적 내리던 비가 막 그치고 시내 전체에 뿌연 안개가 꼈던 밤이었다. 에펠탑 이 층 전망대 높이까지 구름이 내려온 그런 시 ..
해는 뜨지 않았지만, 더위도 같이 숨은 건 아니었다. 종종 약한 소나기가 내리기도 하며 습도는 한계치를 향해 내달렸다. 바다는 불쾌지수를 배출할 거대한 해방구였으나 무지막지한 크기에도 불구하고 제 역할을 제대로 해내진 못했다. 해풍, 해풍만 우리를 조금 위로해 주었다. 가만히 앉아있는 게 제일의 해결책이었다. 하지만 소금기에 바랜듯한 건물 외벽의 색을 보고 있으면 그 모든 여름이 갑자기 감당 가능한 장애처럼 느껴졌다. 집과 사무실과 카페와 대중교통에서 지금껏 너무 습관적으로 "더워 죽겠다."라고 투덜거려오지 않았던가. 그건 피상적으로 만나는 사람들과의 피상적인 대화를 메우기 위한 공용 비밀번호였다. 습관적인 인사, 누구나 알고 있어서 유출할 필요조차 없는 패스워드. 우리는 더위에 공감함으로써 우리에게 필..
둘째 날, 우리는 갈 곳을 정해두고 움직이기로 했다. 어디로 갈지 정하는 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스탠리로 가자! 그게 다였다. 결정은 삼 분도 안 돼서 끝났다. 대신 첫 번째 여행처럼 비싼 빅버스를 타지 말고 일반 버스를 타자는 데 중지가 모여졌다. 그게 훨씬 싸고, 좀 더 빠르기까지 했으니까 말이다. 수도 없이 트램을 지나쳤는데 왜 이건 타지 않았을까. 창문이 다 열려있어 더워 보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미 호텔 가까운 곳에 있는 노선을 알아봐 둔 우리는 느즈막이 일어나 타임 스퀘어로 걸어가는 중이었다. 어제 완차이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타임 스퀘어 바로 앞 골목에서 우연히 발견한 스탠리 행 버스 정류장을 향해서였다. 우리가 머무는 코스모 호텔 바로 옆에 터널이 하나 있는데 빅버스처럼 그..
사람에 치이고 건물에 깔보이며 꽤 오랜 시간을 코즈웨이 베이 근방에서 보냈다. 그래도 견딜 만은 했다고 말하고 싶지만, 실로 여름의 홍콩은 사람을 몹시 지치게 만드는 괴력을 갖고 있었다. 온도와 습도가 동시에 높은 것은 물론, 에어컨 실외기와 자동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인공적인 열기까지 더해져 힘들다는 인식 이전에 몸이 나자빠질 정도였다. 그러나 나와 D는 꾸역꾸역 걸었다. 우리는 마치 밀려오는 파도에 맞서 바다 한가운데로 걸어나가려는 사람, 이유도 없이 그냥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마음먹은 사람 같았다. 물론 거리의 인파도 피로에 한몫했다는 점을 부정할 순 없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이름도 모르는 타자의 홍수에 휩쓸려 허우적거릴 수 있음이 이 도시의 매력이자 피로 요인이라는 게 말이다. 하지만 이 도시의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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