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은 차를 빌려 가는 곳에 버스를 타고 갔다. 오키나와의 대중교통은 나하 시내를 벗어나는 순간부터 난해한 문제가 된다. 정거장에 붙은 노선도는 암호문처럼 보이고, 만능인 줄 알았던 구글 지도는 침묵하며, 어떤 버스도 시간표에 쓰인 대로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끝내 오키나와의 바다를 제대로 보지 못한 우리에게 그것이 전혀 아쉽지 않도록 독려한 곳이 바로 미나토가와港川였다. 외국인 거주 지역이었고, 식민지풍의 단층 주택이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젊은 주인들이 손님을 맞이하는 곳. 대중교통도 소문만큼 열악하진 않았다. 우리는 그나마 자주 오는 버스를 타서 삼십여 분만에 미나토가와 주변에 내렸고, 다시 십여 분을 걸어 무사히 그 작은 동네에 도착했다. 막상 그곳에 가보니 차가 없는 편이 나아 보였다. ..
시나몬 카페는 오키나와에 가기 전부터 알고 있던 곳이었다. 구글 지도에도 등록되어 있었고 여행 안내서에서도 이곳을 언급했다. 실내 구조가 어떻고 무엇을 팔고 언제 가게 문을 열었다가 닫는지는 알지 못했지만, 우리가 그곳에 가게 되리라는 것만은 확신했다. 호텔과 가깝기도 했을뿐더러 무엇보다 이름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시나몬이란 단어를 덮은 딱딱하고 자극적인 나무 향이 이곳의 정체성을 말해주고 있었다. 최소한 내 멋대로 상상할 여지는 주었다. 카푸치노를 마셔야 할 거야. 어쩌면 시나몬을 듬뿍 친 이곳만의 커피가 있을지도 모르겠지. 결국 두 잔의 아이스 커피만 마셨지만, 오키나와에서 이곳을 가장 좋아하게 되리라는 예언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유명한 곳치고 손님이 적은 건 이상했다. 그래서 우리에겐 잘 된 ..
필름은 유통기한이 십 년이나 지나 있었다. 그걸로 오키나와를 찍자 그곳은 십 년 전, 아니 그보다 더 오래된 시절로 돌아가 버렸다. 십 년, 이십 년, 또는 삼십 년 전으로. 내가 오키나와라는 곳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던 앳된 시절로. 필름으로 찍은 사진은 그저 크기만 줄여주면 그만이었다. 더는 손댈 곳이 없었고 손을 댈 수도 없었다. 그 간편함이 좋았다. 간편하다고 가벼운 건 아니었다. 왜 하필 황토색으로 물들었는지는 모르겠다. 처음 오키나와에 도착했을 때, 그곳의 하늘은 파랗고 또 파랬는데 말이다. 나와 M은 오키나와에 다녀왔다.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쨍한 사진도 수백 장이지만, 벌써 그 시간이 아련하게 느껴진다는 점에서 오히려 필름 사진이 더 사실적이었다. 사람이 기억하는 방식은 유통기한이 지난 필름..
왜 그럴까요. 그냥 올려다보았을 뿐인데요. 서 있는 땅이 다를 뿐 어차피 하늘은 한 배에서 자란 껍질처럼 우리를 덮고 있을 뿐인데요. 푸른 계통의 상석上席, 한두 방울의 농도가 더해졌을 따름인데 무심코 손을 뻗고 맙니다. 때로는 절묘하게 이웃색과 혼합해 버린 영롱한 붓질을 따라 걷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냥 우연히 겹쳤을 뿐인데요. 세월이 가면 언제나 그랬듯 가장 먼저 색이 바랠 열정일 뿐인데요. 참으로 정수만 골라 피운 붉은색입니다. 실은 빨강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눌러보라는 듯 봉곳이 도드라져 파랑을 더욱 파랗게 회색을 더욱 창백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풍경에 밑줄을 긋고, 일상에 굵은 테두리를 둘러 강조합니다. 턱없이 작아도 제 할 말은 다 해버립니다. 눈이 오지 않는 삿포로의 ..
책을 읽으면 그것의 제목과 저자, 그리고 다 읽은 날짜를 적어두곤 한다. 한해의 마지막 즈음에 목록을 훑어보면 그해 내가 몇 권의 책을 읽었는지 한눈에 들어오고, 그 책을 읽던 시기에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떠오른다. 책으로 기억을 환기하는 일은 즐겁다. 몇 개월 동안 한 작가의 책만 줄창 읽었던 시기는 당시 내가 어떤 골칫거리를 안고 살았는지와 상관없이 행복한 기억으로 남았다. 그 작가들은 나를 철저하게 벽으로 밀어붙였고, 나는 정신에 세게 몇 대 얻어맞으면서도 기쁨을 억누르지 못했다. 주제 사라마구, 알랭 드 보통, 버트런드 러셀과 조지 오웰, 프란츠 카프카, 조너선 사프란 포어와 김연수, 그리고 마르셀 프루스트와 밀란 쿤데라. 물론 여기에 다 적지 못한 다른 작가와 시인, 여행가들도 모두. 그..
나는 롯데리아에 앉아 반숙 계란 버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간밤에 마신 술 때문에 늦잠을 잤고, 덕분에 아침도 먹지 못했다. 세상은 심심한 모양인지 때때로 빙글빙글 돌았다. 해도 거의 중천에 떠 있었지만, 내 눈엔 새벽이 막 지난 것처럼 거리가 푸른빛으로 코팅돼 있었다. 여행 첫날의 숙취가 떠올랐다. 도대체 인간이란 학습할 줄 모르는 동물인가 보다. 다시 방으로 돌아가 좀 자다가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으나 그건 나 자신도 웃을 수 없는 재미없는 농담이었다. 숙취를 해소한답시고 햄버거를 먹는 버릇이 있다. 고기에 야채, 빵까지 다 들어있으니 몸에 좋지는 않을지언정 영양소 구색은 다 갖췄다고 믿어서다. 특히 햄버거엔 리코펜이 함유된 토마토가 들어있기 마련이다. 토마토가 없으면 최소한 토마토케첩이라도 들어..
생생한 꿈을 꾼 적이 있다. 꿈은 달콤했다. 사람들은 스스로 방을 복제하는 커다란 집에 모여 어울렸고, 매일 밤 새로운 손님을 맞아 포옹과 악수를 나눴다. 그곳에 들어가려는 희망자들이 입구에 장사진을 이뤘다. 그곳에는 꿈 밖에서 알던 사람, 꿈속에서 알던 사람들이 전부 있었다. 나는 생면부지이나 사실 생면부지가 아닌 이들을 차별 없이 대했다. 누군가는 방 하나를 꽉 채운 하얀 침대 위에 누워 의미 없는 말을 내뱉었다. 나는 한참 동안 그 말에 귀를 기울였다. 표정도 가물가물하지만 만나야만 하는 사람들이 아직 들어가 보지 못한 끝없이 생성되는 방 안에 가득했다. 흥미진진해 죽겠는데 페이지가 한참 남아 든든한 소설을 읽는 기분이었다. 단 한 번도 마셔보지 못한 술을 마셨다. 꿈에서 깰 시간이 되어도 이곳이 ..
카메라를 들고 다니다 보면, 생각보다 찍을 게 별로 없다는 사실에 좌절하고는 한다. 멋진 풍경 사진은 그만한 장비를 갖추고 그만한 실력을 갖춘 사람에게 양보하기로 한다. 나에게 남은 건 그냥 스쳐 가기 일쑤인 장면뿐이다. 스냅 사진의 가치는 같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데 있다. 그날 그 시간 그 장소의 그 장면과 그 사람을 포착할 행운은 그 순간에 있던 사람만 누릴 수 있으니까. 게다가 스냅 사진을 즐겨 찍는 사람이라면 저마다 다른 시선이 있기 마련이고, 그 시선이 한 장의 사진에 특색을 부여하여 완성한다. 이때, 사진은 만들어가는 무엇이 아니다. 주어지는 무엇이다. 여행 중에는 깊든 얕든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때로 그 사람들은 내가 모르는 새에 렌즈 앞에 나타나 웃거나 손을 흔들거..
내겐 관람차를 탔던 기억이 없다. 한번은 올라봤을 법도 한데 너무 어렸을 때라 지워진 건지도 모른다. 그 위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나는 모른다. 시야가 점점 넓어지다 절정에 오르면 어떤 기분이 벅차오르는지 나는 모른다. 조심스레 지금에 와선 덤덤할 게 분명하리라 예측할 뿐이다. 이것이 한계라면 한계라 불러도 좋다. 감정을 움직이는 동력의 가짓수가 줄어드는 나이가 됐음은 분명하다. 굳은살처럼 덕지덕지 붙은 껍질은 마음의 바퀴를 뻑뻑하게 하고, 톱니가 맞물리지 않고 자꾸 엇나가게 한다. 책을 읽고 사진을 찍고 사람을 만나고 일에 열중해도 그걸 다 긁어낼 도리가 없다. 그러기엔 더께가 쌓이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 때마다 대청소를 하듯 아예 떠나버려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관람차에 오르는 게..
모든 것이 놀랍던 시절이 있었다. 또한, 그건 두려움이기도 했다. 의지해야만 하는 사람의 손을 꼭 잡고 그것들을 헤쳐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호기심은 망망대해처럼 고갈되지 않는 무엇은 아니었다. 고백하건대 터를 잡고 메우기를 반복하다 보면 채워지고 줄어드는 희소 자원에 가까웠다. 아니, 차라리 호기심을 느끼는 대상이 몇 가지로 집중되었다 말하고 싶다. 나는 수원지도 확신하지 못한 채 우물 몇 개를 파는 일로 세월을 보냈다. 그마저도 서툰 솜씨였지만, 지층이 바뀔 때마다 놀랍고 두려운 순간이 있었기에 견딜 만은 했다. 다만 의지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맞잡은 손은 그때만큼 어지럽게 얽혀있지 않다. 샘 솟을 기약 없는 구덩이 안을 들여볼 때마다 이 속으로는 혼자서 들어갈 도리 외엔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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