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노 섬의 파로 선착장에서 LN선을 타고 부라노 섬으로 향했다. 앞으로는 부표가, 뒤로는 섬마을이 우리를 전송하는 아스라한 손짓을 보았다. 모터보트의 항해는 30분 남짓 이어졌다. 그동안 앉아서 쉴 수 있다는 사실, 그래서 몸이 지쳐 감각과 마음을 좀먹는 일을 막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색채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단 한 시간이라도 머물고 싶어 할 곳, 알고 있는 색깔의 이름이 몇 되지 않는 나 같은 어휘 빈곤자라도 그만큼이나 황홀해질 수 있는 곳으로 가는 중이니까. 몇 년 전, 어느 잡지에 실린 부라노 섬의 사진을 보고 '세상에 이런 곳이 다 있구나'며 감탄한 적이 있다. 그곳의 풍경은 너무나 매혹적인 나머지 현실감마저 없을 정도였다. 멀고 먼 어딘가에 존재하기는 하지만, 이번 삶에서는 건..
1. 무선 인터넷 이름에 프리나 메트로가 붙은 것들은 한두 번 속고 나니 거들떠도 보지 않게 됐다. 정오가 조금 지났는데 날이 개지 않아 모어 런던은 늦은 오후의 신시가지 같았다. 묘한 얼굴을 한 철상鐵像과 타워 브리지를 스케치하는 화가를 휴대전화의 카메라에 담고 무심코 설정창을 열었다. 저도 모르게 헛숨이 나왔다. 드디어 나와 말이 통할 것 같은 이름 하나를 찾은 것이다. 등 뒤에 있는 시청사나 사무용 빌딩이 고향인,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부채꼴이 한 개와 두 개 사이를 바쁘게 오가는 예민한 녀석이었다. 시험 삼아 담벼락에 방금 찍은 사진을 올려보았다. 느리지만 꾸준하게 전송창이 차오르고, 지금 이 순간이 대부분 한국에 있는 나의 친구들에게 공유되었다. 시운전이 끝나자 메신저를 통해 그녀에게 말을 걸었..
1. 새벽에 눈이 떠졌다. 창밖으론 아직 동이 트지 않은 런던 근교의 황량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어젯밤 런던에 도착한 후 호텔 바에서 맥주 한 잔을 마시고 바로 잠이 들었다. 선잠이 들지도 않았고 비행으로 말미암은 피로도 없었다. 이럴 땐 시차 적응이 빠른 체질에 참 감사하게 된다. 어울리지 않게 새벽 공기가 마시고 싶어졌다. 미로처럼 길고 복잡하며, 가끔 오븐 타이머 같은 소리가 들려오는 복도를 빠져나왔다. 호텔 정문 앞엔 벌써 먹이를 잡아 온 새들이 식전 기도를 지저귀고 있었다. 기온이 낮지는 않은데 바람이 불자 몸이 움츠러들었다. 런던의 스산한 추위가 바로 이런 거구나 싶었다. 담배를 한 대 태우면서 새벽부터 어디론가 바쁘게 향하는 차들을 본다. 출근길인가 싶어 이네도 참 빡빡하게 사는구나 하는..
[여행과 에세이] 2011 유럽 여행기 (0) - 주마간산(走馬看山) 보러가기 1. 여행은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똑같은 골목, 똑같은 지하철역과 버스 정류장, 교통카드를 단말기에 댔을 때 울리는 똑같은 인사말도 기나긴 여정의 시작일 땐 평소보다 특별하게 느껴진다. 묵직한 캐리어와 손때 묻은 여행책자는 신문이나 휴대전화에 몰두해 있는 옆 사람과 전혀 다른 운명을 예고한다. 참 이상한 일이지만 이 도시, 이 나라를 떠난다는 생각이 자기 자신을 좀 더 가치 있는 사람으로 여기게 만들기도 한다. 희망과 기대가 빚어낸 이런 묘한 감정은 어느 휴일 늦잠에서 깨어나 따뜻하고 포근하게 비추는 햇살을 볼 때와 비슷한 면이 있다. 우리에게 행복이 찾아오는 순간 말이다. 갑자기 삶이 아름다워 보이고, 머리를 아프..
갑자기 8일 정도 유럽을 가게 됐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이런 말을 했을 때, 십중팔구는 부러워하는 기색이었다. 유럽 출장이 출발 닷새 전에 결정이 되면 본인이야 당황스러워도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으로선 저 친구 제대로 운이 좋구만, 할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좀 갑작스럽긴 하지만 다른 곳도 아니고 유럽이지 않냐며 격려하는 반응도 상당하다. 유럽연합에 속한 나라가 25개국이고 그렇지 않은 나라가 다시 그만큼이나 더 존재하는데, 어느 나라를 가느냐와는 상관없이 그저 ‘유럽'으로 출장을 가게 돼서 좋겠다는 건 그 땅에 대한 지나친 동경인지도 모른다. 하긴 멀기도 멀고, 비행기 삯도 비싼데다가, 세계사를 배우는 순간부터 의식 속에서 서양 역사와 문화의 나침반은 그곳으로 향하게 마련이니 당연한 일일까. 이렇게 말하..
[바닐라 스카이의 유럽여행기 (19) - 프라하, 넷. 마지막 날] 보기. 하늘은 어제와 다를 바 없었다. 거대한 굴뚝에서 뽑아 올린 것 같은 구름은 여전히 대류권을 장악중이었다. 그 아래로 차가운 습기가 뚝뚝 떨어졌다. 물 먹은 공기가 축 늘어지자 축제의 풍악도 울림새가 처량했다. 어느 겨울, 프라하의 아침. 유럽에서의 마지막 스케치. 객실 밖 창문으론 옆 건물의 낮은 옥상이 보였다. 공장지대나 산업도시의 변두리를 연상케 하는 거리도 시야에 잡혔다. 흐린 하늘이 나의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인지 나의 감정이 흐린 하늘을 곧 작별할 사람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인지는 모호했다. 그저 회색빛 손길이 콘크리트 벽을 뚫고 호텔 내부에도 스며들었음만 확실했다. 막 깨어난 몸을 추스르자 식당은 좀 다를지 모른다고 믿..
[바닐라 스카이의 유럽여행기 (16) - 프라하, 하나. 구시가지] 보기 카를교에서 프라하 성으로 올라가려면 적잖이 다리품을 팔아야 한다. 성을 머리 위에 얹은 흐라트차니 언덕을 오르기 위해서다. 그다지 높은 언덕은 아니지만 워낙 시선을 빼앗는 장면이 많아 앞만 보고 걸을 순 없다. 빙빙 돌아가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미로가 있달까. 울퉁불퉁한 돌길을 걸을수록 도시가 자세를 낮추더니, 마침내 색 바랜 적갈색 지붕을 우리의 발밑에 내려놓는다. 군데군데 눈이 덮여 배색이 더 멋스러웠는데, 언뜻 보면 붉은 빵 위에 파우더를 뿌려놓은 것 같다.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 게 어찌 프라하 시내의 전경뿐이겠냐만은 앞으로도 겨울 여행을 고집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바로 여기서이다. 점점 성이 가까워진다. 새삼스레 뒤를 돌아..
[바닐라 스카이의 유럽 여행기 (15) - 프라하로 가는 길] 보기 프라하의 중앙역인 Hlavni nádrží의 역사는 작은 공항을 연상케 한다. 외국으로 오고 가는 열차가 주로 이곳을 거치기 때문이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내렸다. 누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구분할 순 없었지만 그들이 끌고 가는 캐리어, 또는 등에 맨 배낭을 보면 길을 떠난 사람이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열차를 타고 국경을 넘나들 수 있다는 점은 반도국에다가 분단국이기까지 한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보면 참 생소한 일일 수밖에 없다. 우선 가지고 있는 돈을 체코화인 코루나로 바꿔야 했다. 역의 환전소는 환율이 안 좋다고 하여 남은 유로화도 소진할 겸 가지고 있던 30유로만 모두 바꿨다. 그리곤 24시간 교통 패스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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