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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루브르에서 작품만 감상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세계 최대 규모가 무엇인지 보기 위해 찾아든 세계 각국의 사람들도 감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오히려 그 편이 더 재미있기도 하다.

지루함과 진지함을 오고가는 수많은 얼굴을 보다 보면

내가 여기에 온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헷갈리기도 한다.



회랑을 통과해 들어가는 게 좋다.

빛이 만든 타원형 창 너머로 유리 피라미드가 보이는 지점.

그 기하학적인 지점이 나를 들뜨게 한다.



남자는 광장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었었다.

시를 짓고 있는 걸까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걸까.

유심히 보게 된다.

그리고 이내 그를 유심히 봐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된다.



단체 관람을 온 듯한 아이들(?)도 보였다.

루브르에 수집된 수십 만 점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보다

분수가에 모여 수다를 떠는 지금이 더 소중하겠지.



햇살만큼 활짝 핀,

햇살보다 밝은 미소.



이곳저곳에서 볼 수 있는 진지한 관람객들도 인상적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에, 박물관으로 변신한 옛 궁전의 구조에

그들은 열성적인 관심을 보인다.

스케치하고, 메모하고, 오디오 가이드에 귀를 기울인다.

평범한 사람들과 예술 간의 거리가 멀지 않은 도시가 파리다.



아, 숙식을 해결하는 사람도 있었다.

누운 자리에서 계속 피우고 끄기를 반복한 꽁초들이

그가 체크인한 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알려준다.

무려 알코올 11.6도의 맥주캔은 그가 잊고자 했던 무언가를 상상하게 하고.


루브르 궁전은 정말 규모가 크다.

그 넓은 공간을 다양한 용도로 나눠쓴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겠지.



처음 눈여겨 보았던,

시를 지었을지도 모르고 그림을 그렸을지도 모르는 남자가 어느새 잠들어 있다.

아침 햇살을 이불 삼았다. 수많은 관광객의 호기심 어린 눈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보라, 이 넓은 공간을 다양한 용도로 나눠쓰는 건 전혀 이상하지 않다.



같은 맥락으로 보자면

한국말로 "에펠탑 일 유로! 일 유로!"를 외치다가

사진을 찍으니 황급히 손을 감추던 남자에게

이곳은 영업 장소다.



이 사진을 어떻게 찍게 됐더라?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현상을 하고 나서 놀란 기억이 난다.

누구를, 무엇을 찍으려 했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데

아주 잘 아는 사람처럼 우리는 정면으로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인사라도 할 걸 그랬다.



"이제 어디로 가야하나."

여자는 지도를 보고 있다.

그녀는 마음에 드는 작품 앞에서도 비슷한 표정을 지을 것 같다.



자크 루이 다비드의 '나폴레옹의 대관식' 앞에는 특히 관람객이 많았다.

단체로 작품 공부를 하러 온 모양이다.


그녀는 흑백 복사본에 메모를 하기 위해 친구의 어깨를 빌렸다.

남자는 잠자코 그녀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조제핀과 교황, 나폴레옹에 차례대로 동그라미를 치는 동안

그녀는 친구를 잘 빠진 테이블과 동일하게 취급했을 것이다.

그러나 남자의 신경은 그림과 아주 멀리, 온통 그의 옆에 쏠려있다.



부부도 있었다. 여자는 임신 중이었다. 그것도 거의 만삭이었다.

그럼에도 박물관에 와서 뭔가에 골몰해 있다니.

더욱이 통장이나 카드 명세서를 볼 때나 지어질 법한 얼굴로 말이다.



반면 작품 사진을 찍는 사람은 그나마 편안한 마음가짐으로 이곳을 찾은 듯 하다.

바로 내가 그러했듯이.



유리 피라미드를 통해 사람으로 북적거리는 나폴레옹 홀을 본다는 건

시시각각 움직이는 또 다른 작품을 감상한다는 것과 동의어다.



자, 스치듯 걸었으니 이제는 돌아가자.

누구는 지하철로, 누구는 자전거로.

그리고 누군가는 걸어서 돌아가자.


난 그들을 보기 위해 루브르를 다녀왔다.



Leica Minilux

portra 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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