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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의 그림을 통해 가보지도 않은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교회가 친숙해졌지만

정작 캔버스에 그려진 인상적인 외관 때문에 교회 내부는 어떤 곳일까 상상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불안한 길을 따라 걷고 있는 한 여인에 대해 더 궁금하곤 했었다.

그런데 이곳은 아직도 마을의 종교적인 성소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었고, 누구나 자유롭게 출입이 가능했다.

교회 안으로 들어가며 익숙한 방식으로 인식되던 어떤 대상에게서 전혀 다른 면을 발견한 듯한 신선함을 느꼈다.

강압적이고 깐깐한 상사가 가정에서 다정한 태도로 아이를 대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나

매일 지나치던 골목길 안쪽에 관리가 잘 된 작은 공원이 있다는 걸 발견했을 때의 느낌처럼 말이다.


교회 안으로 들어가면 저절로 몸과 마음이 차분해지며 작은 소리 하나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된다.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든 누군가의 사원에선 몸가짐을 바로할 수밖에 없다.

지루함을 느낄지언정 불만을 드러내기보단 얼른 발걸음을 재촉해 나가는 편이 낫다.

종교는 없지만 교회나 성당에 애착이 있는 나로서는 지루할 새가 없었기도 했고 말이다.



닳고 닳아서 모서리가 뭉툭해지고 음각으로 새긴 글씨도 흐릿해질 만큼의 시간이 여기엔 아무렇게나 놓여있었다.

고흐의 회화에 관심있는 사람만 모아놓아도 거뜬히 수십 만은 이 교회를 알고 있을텐데

여기엔 화려함이나 새삼스러운 뽐냄 같은 게 없었다.

살다 보면 집안 꼴이 엉망이 되고 머리는 덥수룩해지며 가족들에게 몇 달 째 연락도 안 한 채 그렇게 정신없이 지내게 될 때가 있다.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미처 청소가 되지 않은 의자 위의 먼지, 때가 껴서 흐리멍텅한 스테인드 글라스, 뻑뻑한 소리를 내며 여닫히는 문 등

하루하루를 보내다 꼼꼼하게 관리하지 못한 면이 곳곳에서 보였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교회 안을 돌아다니면서 마음이 꽤 편해졌다.

서툴고 한 군데 모자른 듯한 모습은 언제나 마음의 장벽을 낮추는 열쇠가 되곤 하니까.



동시에 이곳은 고흐가 그린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교회에서

때때로 영혼을 기대기 위해 찾아가면 좋을 교외의 조용한 교회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교회를 나와 다음으로 향한 곳은 고흐와 테오의 무덤이다.

아까 봤던 아이들을 다시 한 번 지나치며 내가 정말 평범한 길을 걷고 있다는 걸 알았다.

이 길의 중간,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공동묘지에 묻혀있는 두 사람은

유명한 사람이든 그렇지 못한 사람이든 죽고 나면 똑같은 위치에 놓인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듯 하다.



"빈센트 반 고흐, 여기 잠들다."

"테오도르 반 고흐, 여기 잠들다."

비문은 오로지 그 뿐이었다.

장식도 없었다.

누가 막 가져다 놓은 듯한 꽃다발 하나 놓여있었다.

아무도 심지 않았는데 동생인 테오가 묻히고 나서 두 무덤을 덮었다는 넝쿨에 관한 전설도 이곳을 특별하게 만들지 않았다.

밀란 쿤데라가 '불멸'에서 말했던 우스꽝스러운 불멸을 무사히 피한 두 형제는

안식을 방해 받을 일없이 정말 평범하게 잠들어 있었다.

아직 편안한 무덤자리를 부러워할 나이는 아니지만, 관광객을 위한 표지판 하나 달려있지 않는 공평한 휴식은

죽음을 바라보는 이곳 사람들의 시선에서 뭔가 배울 게 있다는 걸 암시하는 듯 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 마을에서 종결된 여러 삶들이 들쭉날쭉했다.

사진이 걸려있는 비석도 있었고, 생전에 좋아했던 것 같은 책을 조각하여 올려놓은 무덤도 있었다.

푸른색으로 염색된 돌을 깔아놓아 눈에 확 띄는 곳도 있었는데 무덤의 주인이든 그의 가족이든 평범한 사고를 가지고 있는 것 같진 않았다.

그러고 보면 정말 오랜만에 공동 묘지에 온 셈이다.

산 자보다 죽은 자가 많은 곳이 우리 주변엔 흔하지 않으니까.

그리고 이런 곳에선 교회와는 전혀 다른 숙연함을 느끼기 마련이다.

참배를 온 듯한 한 가족을 보며 나도 돌아나가던 걸음을 멈췄다.

그들은 고개를 숙인 채 무덤 앞에서 한참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다음에 기회가 되어 다시 온다면 꼭 꽃이라도 한 송이 들고 오자고 마음 먹었다.




Leica Minilux

portra 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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