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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작과 영화

 

  오래전 선배가 인생의 영화 편이 뭐냐고 물었을 , 나는 질문이 상당히 매력적이라고 느꼈다. 진지한 물음이었다기보단 같은 자리에 있던 여학우들의 주의를 끌기 위해 던져진 말이긴 했지만, 오히려 나에게 먹혀든 셈이었다. 책이라면 꼽기가 어렵다. 하지만 영화라면 바로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나는 생각나는 대로 편의 제목을 말했고, 모두 스무 살이 넘기 전에 봤던 영화라는 놀랐다. 그리고 여전히 편의 자리는 다른 것으로 교체되지 않았다. 그중 하나가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콘택트.

  콘택트는 주기적으로 보는 영화다. 그걸 전에 다시 보면서 처음으로 원작이 읽고 싶어졌다. 원작의 존재야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그걸 관심에 적은 없었다. 줄곧 책장에 꽂혀 있었으나 방금 의미를 지니기 시작하여 비로소 끄집어낸 책처럼 말이다. 이번에도 그냥 넘어갈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영화가 여전히 새롭다는 느낌을 받자 도대체 힘이 무엇인지, 원작을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색을 보니 아직 절판되지 않고 팔리고 있길래 늦기 전에 구매 버튼을 눌렀다.

 

 

:: 각색의 기술

 

  책을 읽으며 각색이 정말 뛰어났다는 감탄을 했다. 책과 영화가 전혀 다른 작품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콘택트도 많은 제작비를 들인 헐리우드 영화이기 때문에 각색의 결은 그쪽 스타일과 닮아있긴 하다. 그러나외계 생명체와의 과학적이고 종교적이며 심지어 시적이기까지 만남이란 소재를 다루면서 소설은 소설만이 있는 방식으로, 영화는 영화만이 있는 방식으로 말을 한다. 게다가 소설과 영화가 같은 주제를 다른 방법으로 접근한 아니라 같은 접근 방법으로 다른 주제를 건드리고 있다. 천문학자 앨리의 눈에서 시작한다. 소설은 공통된 경험을 겪고 있는 인류 공동체와 앨리의 사적인 가정사를 바라본다. 영화는 공통된 경험에 다르게 반응하는 다양한 공동체와 간극을 연결하는 존재로서의 앨리를 바라본다. 소설은 영화보다 멀리 나아갔다가 시작점(앨리 가족의 비밀)으로 돌아오고, 영화는 소설 중반에 흐르던 고민에 집요하게 파고들어 소설과 다른 질문을 던지며 마친다. 다시 말하면 국적과 이념, 인종과 종교의 차이를 뛰어넘는 화합의 가능성을 이야기하던 소설은 결말에서 앨리 개인의 변화로 맺음하고, 영화는 눈에 보이는 증거만 믿던 그녀가 인간의 진실한 체험이 인류가 나아갈 방향을 조금이나마 트는 지렛대가 되는 목도하게 한다.

  소설도 번이고 다시 읽게 되면 달라질지 모르지만, 내가 선호하는 것이 후자, 그러니까 영화에 가깝다는 말부터 해야겠다. 영화가 나를 끌어당긴 가장 이유는 종교와 과학이 과연 정반대 편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화제의 중심으로 두었기 때문이다. 물론 소설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긴 하다. 인류가 외계로부터의 메시지를 받으면서 지금까진 대양처럼 보였던 틈이 사실 시멘트벽에 금보다 작은 차이였다는 깨닫는 과정 하나로 말이다. 영화에서 자신의 여행을 증명할 수는 없지만 인간으로서 겪은 체험을 부정할 수도 없다고 외치던 앨리는 신의 존재를 느꼈지만 눈에 보이는 무엇으로 증명할 없는 종교와 증거 없이는 세상에 분명히 존재하는 유무형의 현상(심지어 인간이 누군가를 사랑했다는 사실조차) 설명할 능력이 없는 과학의 차이를 허물어트린다. 신앙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르게 해석할 있겠다. 그러나 무신론자도 회의론자도 아니요, 그렇다고 신앙을 가진 것도 아닌 나로서는 지점이 매력적이다. 모든 미완이라는 해석이 가능해지면서, 뭐랄까, 불완전한 자신을 조금이나마 위로할 있기 때문이랄까.

  갑자기 튀어나온 영화 감상문에서 발자국 돌아와 각색에 관해 이야기하자. 우선 스케치하듯 외계로부터의 메시지에 대응하는 군상을 묘사한 소설 속에서 가지 주제를 끄집어내 집중한 방식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앨리의 다소 복잡한(?) 가족 이야기를 뺌으로써 외계의 존재가 아버지의 모습으로 엘리에게 나타나는 장면은 더욱 극적이 됐다. 소설 신앙인 파머 조스와 자문관 데어 헤르를 하나의 인물로 합쳐 인류 최대의 모험을 감행하려는 앨리를 기다리는 영화 파머 조스를 탄생시킨 것도 좋다. 사람 간의 작은 논쟁은 관객에게도 답을 궁리하게 함과 동시에 로맨틱하기까지 하다. , 소설 속에선 앨리와 다른 과학자들이 베가성에 다녀온 사실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등장하지만, 영화에선 열여덟 시간 동안 잡음으로 녹화된 비디오라는 모호한 증거를 언급하며 끝난다. 덕분에 관객은 앨리와 함께 외계 생명체와의 만남을 체험했지만, 끝날 때까지 그것을 확신할 없게 되었고 영화는 오랜 여운으로 남았다. 외에도 광신도를 부각하고 앨리를 홀로 베가성으로 떠나보내며 극적인 긴장감을 유지한 것도 놀라웠다. 그러니까 영화는 소설 여행을 모험으로 끌어 올리는 성공한 것이다. 밀란 쿤데라가 했던 소설은 소설만이 있는 방식으로 쓰여야 한다는 말이 내내 머릿속에 떠도는 요즘. 최소한 영화는 소설을 재료로 삼아 영화만 있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우스운 일이다. 원작 소설을 읽고 다시 영화를 추켜세우다니. 사실, 콘택트가 손가락 안에 꼽는 영화라고 괜히 약을 아니다.

 

 

:: 상상, 균형, 희망

 

  그러나 1987년도에 출간된 소설이 영화보다 못하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독후감을 시작하진 않았다. 일단 소설을 읽으며 가장 매료된 부분이 뛰어난 각색의 기술 - 어떻게 보면 글쓰기 방식 하나인 - 이라는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코스모스 널리 알려진 세이건은 외계인 침공도 미지의 존재와의 충격적인 조우도 아닌, 제목 그대로 다른 존재와의 만남  자체를 소설로 풀었다. 냉전 시대의 막바지, 미소 양국이 미친 듯이 핵무기를 늘리고 군비 경쟁을 하던 시기에 어떻게 하면 인류의 화합을 이뤄낼 있을까 고민했다. 그리고 외계에서 날아온 미스테리한 메시지와 속에 담긴 미스테리한 운송 기구를 떠올렸다. 콘택트에서 외계인은 우주선을 타고 대기권 위에 나타나 공격 카운트 다운을 세거나 평화 협정을 맺자고 제의하지 않는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다. 진짜 모습은(물리적으로 보이기는 것인가?) 소설이든 영화에서든 묘사되지 않으며 단지 단파 무전을 하듯 신호를 보내 잠깐 놀러 오라고 권할 뿐이다. 소설에서는 그러했는지 딱히 대답하진 않는다. 그나마 영화에서는우리가 광활한 우주 속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조금이라도 외로울 것이라는아름다운 이유를 밝힌다(얼마나 시적인가! 엄청난 지성을 가진 존재가 서로 외롭지 않도록 가끔 시간을 보내자고 하다니). 눈으로 보진 못했지만 결국 인간보다 앞선 존재가 있다는 확인함으로써 인류는 자신을 돌아보고, 모서리 졌던 마음가짐을 바로 한다. 작가는 그런 바람을 소설 속에서나마 이루었다.

  소설을 건설하는 과정에선 세이건의 놀라운 상상력이 빛을 발한다. 그는 인류가 이해할 수조차 없는 경지로 진화한 외계 생명체를 등장시켜야 한다. 섣부른 상상은 독이다. 그들의 모습을 묘사하는 대신 방문자들에게 가장 편안한 인물의 형상을 갖춰 나타나게 것도, 그들의 언어를 새로 만들기보단 월등히 지적인 존재가 인간에게 오해 없이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선 수학을 사용할 거라는 것도 깊은 고민 끝에 나온 상상임을 알게 한다. 얼마나 있음 직한 소설적 장치인가. 지능적인 스릴러나 엄청난 규모의 공상과학을 선호하는 사람이라면 실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세이건은 외계인이 아닌 인간을 묘사하려 했고, 우리가 자멸하지 않고 나아가야 방향이 어디인지 제시하려 했다.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지만, 그것을 제대로 다루는 방법을 우린 아직 알지 못한다. 풍부한 감정을 느끼고 꿈을 꾸는 존재이지만, 그것 역시 통제를 벗어나기 일쑤다. 베가성의 생명이 불확실한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는 작가의 염려를 반영한다. 그래서 그는 우리가 기술과 그것의 이용에 있어서, 이성과 감정에 있어서, 종교와 과학이 주장하는바 사이에서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말한다. π 무한한 소수점 아래에 원이 그려져 있다는 마지막 상상은 바로 그런 균형을 상징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의문이 하나씩 풀리는 과정은 지적인 쾌감을 주고, 베가성을 향한 여행에선 긴장감을 느낀다. 그런데 그런 흥밋거리 기저엔 온기가 있다. 콘택트는 따뜻한 소설이다. 우리 인류가 버튼 하나 때문에 자멸하지 않으리라는 희망, 위에선 국가, 종교, 정치적 이념과 경제적 차이 탓에 서로 화합할 없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우주에서 보면 지구란 작은 행성에 적을 하나의 공동체일 뿐이라는 지적, 그리고 우주에 대한 미스테리를 푸는 것만큼 가장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사랑을 나누는 것도 우리의 중요한 과업 아니겠느냐는 제안까지. 콘택트는 시로 쓰여진 인류에 관한 보고서다.




콘택트

저자
칼 세이건 지음
출판사
사이언스북스 펴냄 | 2001-12-1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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