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계적인 사유에 관해 한 가지만 더 말하자. 사유하는 자는 체계화에 끌리게 마련이다. 언제나 그는 그런 유혹에 빠진다.(이 책을 쓰는 지금 이 순간 나도 그런 유혹을 받는다.) 자기 아이디어의 모든 결과를 서술하고 싶고, 사람들이 제기할 모든 이의를 예견하고 사전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싶은 유혹에 말이다. 한데 사유하는 자는 타인에게 자신의 진실을 납득시키려고 애쓰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체계의 길, '신념을 가진 사람'의 가련한 길로 접어들게 된다. 정치가들은 그런 사람으로 불리길 좋아하지만, 신념이란 게 무엇인가? 정지된 사유, 굳어 버린 사유요, '신념을 가진 사람'이란 곧 한정된 사람이다. 실험적 사유는 설득을 하려는 게 아니라 영감을 주고자 한다. 어떤 다른 사유에 영감을 주고, 사유..
얼마 전 나는 택시를 타고 파리 시내를 가로질렀는데 운전사가 무척이나 말이 많았다. 그는 밤에 잠을 자지 못했다. 만성 불면증을 앓고 있었다. (중략) "제 뒤에는 당신보다 삼 분의 일은 더 긴 인생이 있습니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 "더 가진 그 삼 분의 일로 뭘 할 겁니까?" "글을 쓰지요." 나는 그가 쓰는 게 뭔지 알고 싶었다. 그는 자기 인생에 대해 쓰고 있었다. 바다에서 사흘 동안 헤엄을 치며 죽음에 맞서 싸웠고, 잠은 잃어버렸으나 여전히 살고자 하는 힘은 간직한 남자의 이야기. "자식들을 위해 쓰는 겁니까? 가족 연대기처럼?" 그는 씁쓸하게 웃었다. "제 자식들이오? 그런 데 관심 없을 겁니다. 꽤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택시 운전사와 나눈 이 대화는 내게 불현..
아이러니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에마 보바리는 견딜 수 없는 여자인가? 혹은 용기 있고 감동을 주는 여자인가? 그리고 베르테르는? 다정다감하고 고상한가? 혹은 공격적인 센티멘털리스트이거나 이기주의자인가? 소설을 자세히 읽으면 읽을수록 답하기가 점점 더 불가능해진다. 소설이 애당초 아이러니의 예술이기 때문이다. 소설의 '진실'은 감추어져 있을 뿐, 발설되지도 발설할 수도 없다. 조지프 콘래드는 『서구인의 안목(Under Western Eyes)』에서 한 러시아 혁명주의자의 입을 빌려 "라주모프 씨, 여자와 아이들과 혁명주의자들은 모든 관대한 본능과 믿음, 헌신, 행동을 깡그리 부정하는 아이러니를 혐오한다는 점을 기억하세요."라고 말한다. 아이러니는 화나게 만든다. 이는 아이러니가 빈정거리거나 대들어서가 ..
그들 밤의 첫째 단계의 끝. 기사가 지나치게 의기양양해하지 않도록 그에게 동의해 준 그 입맞춤이 또 다른 입맞춤에 이어졌고, 입맞춤들이 "빨라졌고, 간간이 대화를 중단시켰고, 그것을 대체해 버렸다……." 한데 그녀가 몸을 일으키더니 길을 되돌아가기로 결심하지 않는가. 참으로 기막힌 연출 예술 아닌가! 최초의 그 성적 욕구의 혼란을 맛본 뒤, 사랑의 쾌락은 아직 무르익지 않은 열매임을 보여 줘야 했던 것이요, 그 값을 올리고 좀 더 먹음직스럽게 만들어야 했던 것이요, 파란을, 긴장을, 긴박감을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기사와 함께 성으로 되돌아가면서 T 부인은 공허 속으로 떨어지고 있음을 가장하나, 마지막 순간에 자신이 상황을 뒤엎고 데이트를 연장할 전권을 쥐리란 걸 잘 안다. 그야 문장 하나면, 해묵은 대..
그렇다, 갑자기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가지 헛된 믿음에 빠져 있다. 기억(사람, 사물, 행위, 민족 등에 대한 기억)의 영속성에 대한 믿음과 (행위, 실수, 죄, 잘못 등을) 고쳐볼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그것이다. 이것은 둘 다 마찬가지로 잘못된 믿음이다. 진실은 오히려 정반대이다. 모든 것은 잊혀지고, 고쳐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엇을 (복수에 의해서 그리고 용서에 의해서) 고친다는 일은 망각이 담당할 것이다. 그 누구도 이미 저질러진 잘못을 고치지 못하겠지만 모든 잘못이 잊혀질 것이다. - 밀란 쿤데라, '농담' 중 농담저자밀란 쿤데라 지음출판사민음사 | 1999-06-25 출간카테고리소설책소개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펴냈던 체코 작가 밀란 쿤데라의 ...
당시에 나는 그에 대해 증오밖에 없었으며, 이 증오란 것은 너무도 강렬한 빛을 발사해서 그 속에서는 사물의 윤곽이 사라져버리는 법이다. 중대장은 내게 그저 앙심을 품은 교활한 쥐새끼같이만 보였었다. 그러나 오늘날 나는 그를 무엇보다, 한 젊은이로, 연기를 하는 한 사람으로 보게 된다. 어찌 됐거나 젊은이들이 연기를 하는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삶은, 아직 미완인 그들을, 그들이 다 만들어진 사람으로 행동하길 요구하는 완성된 세상 속에 턱 세워놓는다. 그러니 그들은 허겁지겁 이런저런 형식과 모델들, 당시 유행하는 것, 자신들에게 맞는 것, 마음에 드는 것, 등을 자기 것으로 삼는다 - 그리고 연기를 한다. 우리의 중대장 역시 아직 미완인 사람이었고, 어느 날 아침 자신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우리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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