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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깍. 전화가 끊겼다. 그녀에게 이제 곧 베네치아행 비행기를 탄다고 말한 참이었다. 샤를 드 골 국제공항 터미널 2-F. 나는 12시 35분 출발 예정인 에어프랑스 1726편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지금껏 심술 맞게 굴었던 태도가 미안했던지 격자형의 철골 사이로 비치는 햇살은 파리에서 본 것 중 가장 밝고 힘이 넘쳤다.
  터미널은 거의 만원이었다. 게이트 앞 좌석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자신이 왔던 곳으로, 자신이 가야 할 곳으로 떠날 준비에 한창이었다. 수면 부족을 만회하거나, 인터넷 존에서 노트북을 이용하거나, 잡지를 보거나, 또는 무언가를 쓰면서 말이다. 사실 탑승을 기다리는 승객이 터미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한 층 아래 있는 카페에서 커피나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은 내적인 면에서 그나마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는 행운아들이었다. 대체로 소일거리로 시간을 떼우며 자신이 들어가야 할 게이트가 열리길 기다릴 뿐이었다.

게이트 앞은 만원이었다.

  내 손엔 보조가방과 캐리어, 그리고 막 구매한 기념품이 든 Replay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 친척 동생은 이번 여행을 위해 새로 산 디카로 사진을 찍는 중이었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보는 것도 즐겁긴 했지만 터미널은 대체로 심심했다. 휴대폰으로 와이파이 접속을 시도하다가 포기하고 결국 여행 노트를 펼쳤다. 베네치아로 떠나기 전, 파리에 관한 기록을 마무리해야 할 것 같았다. 아침부터 공항에 오느라 정신이 없긴 했지만 마지막인 만큼 놓치고 싶지 않았던 순간들이 있었다.


  어나자마자 괜히 허둥지둥 거렸다. 여행 중간에 찾아오는 불안과 초조를 충분히 맛보기 위해서다. 어제 다 하지 못한 짐 정리도 해야 했고 여권과 e-티켓도 언제든지 꺼낼 수 있게 챙겨둬야 했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 건 참 잘한 일이었다.
  씻기 전에 할 수 있는 일들과 씻고 나서 해야 할 일들을 구분해 보자. 세면도구 넣을 자리만 남겨두고 캐리어 정리를 끝마치는 건 씻기 전에 해두면 좋을 일이다. 식당에 내려가 아침을 먹는 건 어느 때 해도 상관없지만 여행지에서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고 싶다면 아무래도 씻고 나서가 좋다. 그럼 무엇이 남았는가. 바로 하루의 첫 담배를 피우는 의식이다. 대충 얼굴만 손보고 패팅 후드를 뒤집어 쓴 채 호텔 밖으로 나왔다. 잠들기 전까지 오던 비는 깨끗하게 그쳐 군데군데 왔다간 흔적만 남겨두었다. 아직 해가 다 떠오르지 않았지만 그날 하루 파리가 맑은 날씨를 맞이할 거라는 건 짐작할 수 있었다. 어제 종일 내렸던 비를 생각하면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그런데 파리는 아직 우리에게 할 말이 남은 모양이었다.

  담배 한 대를 다 피워갈 즈음 그를 만났다. 이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그는 우리를 스쳐지나가려다가 걸음을 멈췄다. 그리곤 자연스러운 말투로 담배를 빌려 달라고 부탁했다. 두 개비를 꺼내 주자 그는 감사히 받았고 라이터는 사양했다. 지금 피울 생각은 없는지 품에 갈무리 해 둘 뿐이었다. 당장 필요하지 않은 담배를 빌리는 데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준비성, 낯선 자에게 서슴없이 다가갈 수 있는 친밀함, 능청스러운 태도, 살짝 내비치는 멋쩍은 미소. 그 많은 것들이 조금씩 뒤섞여 있었다. 하지만 그는 휑하니 떠나지 않았다. 대신 우리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한국, 서울에서 왔다고 하자 중국인, 일본인, 한국인 중에서 우리를 가늠했었을 그는 환하게 웃었다. 자기도 한국에 가봤다는 것이다. 외지에서 한국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한국에 가 봤던 외국인을 만나는 게 더 반가운 일이란 걸 알았다. 서울이 어땠냐고 묻자 그는 음식도 좋았고 옷도 특별했으며, 무엇보다 여자들이 예뻤다고 웃었다. 하하, 그렇죠. 저희는 운이 좋은 남자들이죠. 그건 파리 남자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말입니다. 5일 정도 머물렀다는 그에게 우리나라는 또 어떻게 기억되었을까.
  시간이 꽤 넉넉했기 때문에 대화는 계속 되었다. 그는 우리보단 훨씬 뛰어나지만 약간 서툴러서 부담 없는 영어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사실 우리가 제대로 할 수 있는 거라곤 주섬주섬 단어를 끌어 모아 간단히 대답을 해주면서, 동시에 그의 말을 따라가기 위해 애쓰는 일 뿐이었다. 물론 이른 아침 맞닥뜨린 우연한 만남 자체는 아주 즐거웠지만 말이다. 파리에 온지 얼마나 됐고 여기가 마음에 들었냐고 그가 물었다. 오늘이 나흘째인데 이제 떠나야 하고,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다고 대답했다. 솔직한 감상이었지만 내심 그가 자신의 도시에 자부심을 느끼는 모습을 보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그의 반응은 명확하지 않았다. 그는 그렇구나, 내지는 의외인데, 라는 표정이었다. 한국이 좋았다는 말에 만족스러웠던 우리와는 딴판이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서였을까? 그 미묘한 차이를 꼬집어 내기엔 대화의 흐름이 너무 빨랐다. 벌써 어디를 가봤냐는 그의 질문이 쏟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건 생각보다 대답하기 어려운 숙제였다. 에펠탑, 노트르담까지는 쉬워도(탑보단 타워란 말이 어울릴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대성당은 굳이 발음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사실 고유명사만 읊어주면 됐다) 개선문 같은 경우는 영어로 뭐라고 해야 할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이런 부끄러운! 다행히 에펠탑과 노트르담 대성당만으로도 화제는 쉽게 움직였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전망대를 오르는 게 힘들었다고 하자 그는 크게 웃었다. 그러면서 에펠탑 전망대는 어땠냐고 되물었다. 우린 리프트를 이용했기 때문에 별로 힘들지 않았다고 하자 그는 거긴 꼭 한 번 걸어가 봐야 한다며 자신의 경험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요지는 간단했다. 친구들과 함께 에펠탑을 걸어 올라간 적이 있으며 진짜 죽는 줄 알았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그 때의 기억이 되살아나는지 완전히 신이 난 목소리로 몸짓까지 곁들여 말했다. 걸어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을 오르다가 지친 나머지 중간에 먹고 마시며 휴식까지 취했다는 에피소드가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 같았다. 오죽했으면 드디어 2층 전망대에 올랐을 때 자신의 다리가 '완전히 죽었다'라고 마무리 짓는 그가,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처럼 느껴졌을 정도였다. 아직도 다리가 '컴쁠리뜨리 데드'했다는 그의 표현과 발음을 잊을 수 없다.
  여행을 떠나기 전 누구나 현지인과의 만남을 꿈꿀 것이다. 나 역시 그랬지만 실상 그건 여의치 않은 일이었다. 오랜 대화를 이어나가기엔 언어의 장벽이 있었고, 그보다 두터운 마음의 장애가 있었다. 그런데 겨우 담배 두 개비 덕분에 우리는 파리의 한 남자가 몰고 다니는 유쾌하고 천진난만한 바람을 맞을 수 있었다. 여행은 끊임없이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걸어야 하는 길이라는 걸, 아직 여행에 서툰 나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다음엔 꼭 에펠탑 전망대를 걸어 올라가 보겠다고 약속한 뒤 우리는 헤어졌다. 그는 약간 어기적거리는 걸음으로 저만치 걸어가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는 크게 손을 흔들며 우리에게 인사하고 있었다.


  물던 곳에서 떠날 때 빚어지곤 하는 아수라장을 넘어 우리는 체크아웃을 했다. 캐리어를 질질 끌며 보도블럭 위를 걸었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와 비슷한 상황이었지만 신비하며 당혹스럽고 모든 게 낯설던 느낌은 사라져 있었다. 대신 그 자리엔 익숙함과 아쉬움, 기약 없는 이별이 몰고 오는 허전함이 가득했다. 어차피 모든 여행자는 떠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오랜 기간을 여행한다 해도 한 도시에서 머무는 시간은 단 며칠에 불과하다. 세를 얻은 집과 많은 신경과 정력을 쏟아야 하는 직장과 자신의 존재를 알아주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사람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많은 훌륭한 여행자들이 그들 속으로 파고들기 위해 노력하고, 우리에게 그 경험을 들려주며 자신과 같은 시야를 갖으라 독려하곤 한다. 하지만 그 노력은 완전한 결실을 맺을 수 없다. 이곳과 하나가 된다면 우리는 여행자라는 낭만적인 껍찔을 벗어버린 그저 한 명의 시민이 되어버리고 만다. 양 편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줄다리기 같다. 우리는 경계에 서있다. 이곳의 진짜 삶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각자의 눈으로 그것을 해석해 저마다 다른 이해와 감정을 챙겨 돌아간다. 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있던 한 소년에게 캐리어를 끌고 지하철역 계단을 내려가는 동양인 남자로 인식된 채로. 그리고 그렇게 조심한다고 벼르고 별렀지만 끝내 캐리어가 개찰구에 걸려 낑낑대는 어리버리한 남자로 인식된 채로. 그래서 아버지와 함께 웃음 지을 수 있었던 어느 아침의 해프닝으로 기억된 채로.
 
  그 다음 기억은 공항으로 향하는 RER-B선 안에서 바라본 파리 외곽 풍경들이다. 통유리를 파고드는 햇살 너머로 공장과 목가적인 언덕, 그리고 그래피티가 번갈아가며 나타났다. 훵한 플랫폼에 열차가 멈출 때면 몇 안 되는 승객들이 쓸쓸한 몸짓으로 한 걸음 다가서곤 했다. 낭만적이고 활력이 넘쳤던 도심과는 완전히 다른 얼굴이었다. 밤이 되면 이곳엔 얼마나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을까. 더 현실적인 삶이 여기에 있었다. 그래서 더 익숙하고 정감이 가는 하루가 여기에 있었다. 막 올라 탄 흑인 남자가 목도리를 매만졌다. 서울에 있는 나도 목도리를 고쳐 두를 시간이었다.

RER-B선과 이미지

  공항에서의 출국 준비는 우려했던 것보다 훨씬 쉽고 간단했다. 무인 체크인기에 e-티켓에 쓰인 예약번호를 눌러 넣고, 보딩 티켓을 발급 받고, 수하물을 맡김으로써 모든 일처리가 끝났다. 보안 검색대에서조차 아무런 문제도 일어나지 않았다.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애정을 주었는데 파리는 너무 쉽게 우릴 놓아주려 하고 있었다. 막상 크고 작은 문제들로 우리의 발목을 잡았다면 이런 말이 나오지 않았겠지만 터미널 2-F까지 오는 길은 대체로 무난했다. 여기까지가 파리에서 쓴 여행 노트의 마지막이었다.

  파리는 첫 유럽 여행지로서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대부분 걷고 오르고 가끔씩 내려가며 시간을 보냈지만 그런 수고가 전혀 아깝지 않을 만큼 볼거리와 감탄할 거리가 가득했다. 낭만, 예술, 패션. 파리를 수식하는 단어는 수없이 많다. 그 모든 걸 통틀어 보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야 할 도시'가 답으로 나온다. 아니 최소한, 그런 선택지가 있었으면 하고 바라게 되리라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파리의 지상에서 본 마지막 장면


 

  이트 앞에 있던 여자가 에어프랑스 1726편의 탑승 시작을 알렸다. 사람들이 우르르 자리에서 일어났다. 파리에 인사를 하려고 해도 무엇을 향해 해야 할지 모호했다. 셔틀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 비행기에 오르는 순간에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잠시 후, 작은 기체가 활주로에서 미끄러지자 창밖으로 작별을 받아줄 친구가 나타났다. 의자에 착 달라붙는 듯한 묘한 느낌이 들며 중력을 벗어났을 땐 더욱 명확해 졌다. 우리는 파리를 덮고 있는 하늘을 향해 인사를 했다. 비행기는 이탈리아 북부를 향해 방향을 틀었다.

안녕, 파리!



PS. 파리편이 끝났습니다. 이제 베네치아, 빈, 프라하로 이어지는 여행기가 계속됩니다.


Canon A-1 +  50mm
superia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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