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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빅버스

 

  , 빅버스여. 우리를 스탠리까지 태우고 달렸던 크고 날렵하며 노출을 두려워하지 않는 거리의 붉은 탕아여. 태양은 온화하고 바람은 열기에 차있지 아니하니 너의 활짝 열린 머리 위에 앉는 게 이보다 더 안락할 수 있을까. 오늘은 새로운 길로, 우리가 미처 가보지 못한 길로 우리를 인도할 테요, 과감히 딱딱한 객석에 몸을 파묻고 카메라를 높이 들어 원숭이처럼 환호하리라.

  그러니까 오늘의 빅버스 코스는 홍콩섬 일주였고, 나와 D도 가본 적 없는 완차이와 코즈웨이 베이를 지나 마지막으로 빅토리아 피크 아래쪽을 보게 될 터였다. 가다가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내리자고 얘기했지만, 사실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안다. 버스틀 타고 달리다 보면 관성에 의해 계속 가게 된다. 하나의 코스를 삼 분의 이 이상은 봐야 한 번의 관광이 끝나는 셈이니 마음껏 내렸다 돌아다닌 다음 후속 버스를 타고 여정을 이어가는 여유가 우리에게 없었다. 사실 시간도 없었지만.



  홍콩섬 투어에서 놀라웠던 점은 두 가지다. 몽콕이나 야우마테이 쪽에만 몰려있을 줄 알았던 홍콩 특유의 낡은 고층 아파트가 이곳에도 즐비해 있으며 오히려 더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만만하게 생각했던 홍콩의 2월 기후가 전혀 만만하지 않았다는 것.

  언제나 안 좋은 소식부터 듣는 게 마음은 편하다. 일단 빅버스의 오픈탑 자리는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컨디션을 악화시켰다. 고층 빌딩 사이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너무 세고 스산했다. ‘시원하다에서좀 춥다, 거기서 다시열이 난다까지 추락하는 과정은 코스가 반도 지나지 않아 완성됐다. 2월의 은근한 서늘함은 사람을 병약하게 만들었다. 으슬으슬한 기운에 스타 페리 선착장에서 잔뜩 키워 온 흥분은 속절없이 꺼져버렸다. 해도 급속도로 지고 있었는데 낡아빠진 건물을 향해 제발 햇빛 좀 가리지 말라고 빌고 싶을 정도였다.

  최소한 우리에겐 홍콩은 더워야 제맛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더위는 몸을 괴롭게 할지언정 병들게 하진 않는다. 호텔방에서 에어컨 온도만 잘 조절해서 자면 그만이다. 땀이 난 몸에 샤워는 활력소였고, 거리를 걷다가 갑자기 뛰어들곤 했던 쇼핑몰은 달콤한 도피처였다. 더위 그 자체가 여행의 즐거움이었던 셈이다.

  우리는 바람을 피해 일 층으로 내려왔다. 그런데 덥다고도, 춥다고도 할 수 없는 어중간한 날씨 때문에 일 층 역시 미약한 에어컨 바람으로 실내 온도를 조절하고 있었다. 훈훈한 기운을 기대했건만 춥긴 매한가지였다! 우리는 끝내 모든 코스를 돌지 못한 채 빅토리아 피크 트램 정거장 전에 하차했다. 이쯤 되자 이번 여행은 참 지지리 운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원인의 대부분은 여행 첫날부터 달고 왔던 숙취와 피로 때문이겠지만 말이다. (과음의 폐해에 대한 확실한 증거로 기꺼이 이 글을 바치고 싶다.)


 


  그러나 아무 수확도 없는 건 아니었다. 이번에 새로이 만나게 된 완차이와 코즈웨이 베이 구역은 주로 주룽 반도에 머물렀던 지난 여정들이 반쪽짜리였음을 알게 했다. 고가 도로를 타고 올라갈 때 보이는 신식 고층 빌딩과 구식 아파트의 좌우 대비는 공존이라 부르기에도 뭣한 강렬한 이미지로 다가왔다. 시야를 막던 건물이 뒤로 밀려나면 다음 건물과의 사이로 오래된 골목이 나타났다. 그곳에도 상점이 있고 사람이 있으며, 말 그대로 홍콩이 있었다. 온갖 적나라한 빨래가 매연 위로 펄럭이는 빽빽한 발코니는 그 안의 삶을 모두 보여주진 않은 채 먼지에 덮인 창문으로만 말을 걸어왔다. 그러다 반대편으로 시야를 돌리면 미래에서 온 건물들이 넓은 대로를 사이에 두고 늘어서 있다. 그 사이로 기나긴 석양이 파고들어 검게 코팅된 유리 위에 번쩍였다. 이것은 묘사해야 할 대상의 과잉과 내 안에 들어있는 표현 재료들의 과소, 그 접점이다. 나는 이 장면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photo by D


  거리는 어떤가. 코즈웨이 베이에선 몽콕에서도 볼 수 없었던 어마어마한 인파를 보았다. 그들은 단 한 치의 빈 자리도 허락하지 않고 공간을 꽉 메우고 있었다. 무슨 축제라도 벌이려고 한 자리에 몰린 듯한, 그러나 사실 아무렇지 않게 서로 갈 길을 가는 중일 뿐인 보행자의 천국이었다. 그 모습 또한 너무나 강렬했기 때문에 한 번 더 홍콩에 온다면 어디서 묶고 어디를 주로 봐야 할지 감을 잡은 기분이었다. 저 속에 들어있다는 건 얼마나 숨 막히는 일이면서 동시에 황홀한 경험일까.

  빅버스에서 내렸을 즈음엔 다들 몸 상태가 썩 좋지 않았고, Y는 얼른 침사추이로 돌아가 친구를 만나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나와 D는 그 와중에 다음 여행의 단초를 발견했다는 데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  침사추이

 

  이번 여행을 시작하기 전부터 이번엔 꼭 미드 레벨 에스컬레이터를 보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고, 그래서 찾아다녔고, 이상하게도 그 주변을 헤매고 있는 것 같은데 결국 찾질 못했다. 그 길고 특이한 구조물을 찾는 게 절대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다들 사진도 찍고 직접 타보기도 하고 그러고 있으니까. 체력은 바닥났고 Y의 약속 시각은 점점 다가오고 있어 어쩔 수 없었다고 스스로 위안한다. Y만 먼저 보낼 수도 있으나 홍콩에 온 이래 줄곧 그를 끌고 다녔던 걸 생각해 보면 혼자서 찾아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우리는 미드 레벨 에스컬레이터를 포기하고 Y에게 IFC 몰을 잠깐 보여준 다음 지하철을 타기로 했다.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찾은 IFC였지만, 거기에도 우리의 발길을 끄는 매장이 한군데 있었다. 고디바였다.

  “핫초코 한 잔 어때?”

  몸이 아직 으슬으슬한 게 진한 초콜릿 음료가 땡겼다. 두 사람도 내 말에 동의했다.

  고디바 매장은 어마어마한 상상력의 초콜릿 선물 세트, 그 자체로 인테리어의 시작과 끝을 잇는 묘한 매력이 있다. 처음엔 들어있는 초콜릿의 다섯 배는 더 넣을 수 있을 듯한 화려한 과대 포장에 놀라고, 다음엔 당당하게 붙어있는 가격표에 놀란다. 물론 맛있는 건 안다. 그러나 이건 단순히 초콜릿만 선물하는 게 아니라 브랜드 가치와 매혹적인 치장 - 다 먹고 나면 결국 리본과 상자는 버려진다는 일회성의 매력 - 을 그 위에 얹어 주는, 당신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 가격을 기꺼이 지불할 수 있다는 달콤한 과시를 선물하는 것이다. 나는 결국 버려질 운명의 하트 모양 상자나 반짝거리는 포장지 때문에라도 이곳 초콜릿을 살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Y를 꾀었다.

  “선물로 사 가. 기념품으로.”

  물론 비싼 걸 가리키진 않았다. 적정한 개수를 적당하게 포장한 적정한 가격의 제품들도 몇 있었으니까. D도 거들어 혹한 Y가 초콜릿을 고르는 동안 나는 핫초코 석 잔을 주문했다. 아이스 음료는 여러 종류지만, 핫초코는 한 종류뿐이었다. 내 기준에서 가장 합리적인 제품은 바로 초콜릿 음료였다.

  각자 핫초코 한 잔씩 든 채 몰 안을 돌아다니다가 지하철역으로 내려갔다. 홍콩섬에서의 일정을 끝내고 다시 북쪽으로, 침사추이로 갈 시간이었다.

 

  Y의 약속 장소는 미라마 쇼핑센터 앞이었다. 사실 나도 미라마에 볼 일이 있었기 때문에 매우 적절한 동선이었다.

  토요일 저녁을 맞아 침사추이는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길 건너편의 파크 레인 쇼핑가도 매장마다 손님이 꽉 차 있었다. 들뜬 행인들의 삼 분의 일은 지하철로, 삼 분의 일은 지하철 밖으로, 나머지 삼 분의 일은 침사추이의 골목으로 사라졌다. 미라마 쇼핑센터도 만남의 장소로 통하는지 누군가를 기다리는 이들이 많이 보였다.

  거기엔 Y의 친구분도 있었다. 우리는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홍콩에 와서 처음으로 병력을 나누게 되었다. Y는 친구와 함께 저녁을 먹으러 떠나고, 나와 D는 쇼핑센터 안으로 들어갔다.

  미라마 쇼핑센터에 볼일이 있었던 건 일회용 렌즈 때문이었다. 여행을 오기 전에 검색을 하다 우연히 이곳 안경점에서 콘택트렌즈를 아주 싸게 판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매장 번호까지 적어 온 나는 자신 있게 그곳을 찾아가고자 했다. , 그런데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홍콩 옵틱이란 안경점의 매장 번호는 1027A였다. A라는 식별자를 제외하고 번호가 네 자리니, 당연히, 아주 당연히 앞의 두 자리는 층수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10 27A호라고.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찾아갔는지도 모르겠지만) 고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10층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엔 상점보단 사무실이 더 많은 것 같았고, 그마저도 전부 문이 닫혀 있었다. 오후 6시가 조금 넘은 시점인데 벌써 영업이 끝났단 말인가? 매장이라도 한 번 보자는 심산으로 한 바퀴를 돌았는데 안경점은커녕 그 흔한 옷가게 하나도 없었다. 아니,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았다.

  “여기가 아닌 것 같지?”

  “아무리 봐도.”

  “옆 건물인가?”

  미라마 쇼핑센터 옆에는 공중 회랑으로 연결된 미라몰도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분명 미라마 쇼핑센터라고 확인했는데 말이다. 일단 우린 미라몰로 넘어갔고, 다시 한 번 허탕을 쳤다. 미라몰에도 안경점은 없었다.

  “도대체 어디지?”

  “미라마 맞아?”

  “, 분명히 미라마랬는데.”

  망해서 없어진 건지 우리가 못 보고 지나친 건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괜히 이리저리 D를 끌고 다닌 것 같아 미안해진 나는 일단 저녁부터 먹자고 했다. 핫초코를 한 잔 마시긴 했지만, 제대로 기운을 내려면 더 많은 탄수화물과 단백질이 필요했다.

  “미라마 안에서 먹을까?”

  주로 상점 위주지만 식당도 제법 있어 우리는 먹을 만한 곳을 찾아 돌아다녔다. 한식까지 있을 정도로 온갖 양식의 요리가 다 있었으나 가격도 좀 비쌌고 딱히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레스토랑도 없었다. 그렇게 이곳저곳을 쑤시고 다니다가 눈에 띄는 게 있었다. 이 층에 있는 식당을 둘러보던 중이었는데 매장 번호가 20XX였던 것이다. 다른 곳도 모두 마찬가지. 여기가 이십 층일 리는 없을 테고, 결국 네 자리 숫자 중 첫째 자리가 층수고 나머지 세 자리는 호수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1027A는 일 층에 있는 매장이란 말이었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1027A를 십 층에 있는 곳이라 여겼던 건진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왔음을 솔직히 고백하겠다. 곳곳에 세워진 매장 안내도만 봤어도 오해를 씻고 쉽게 찾을 수 있었을 텐데.

  마침내 안경점을 찾아 들어가자 블로그에서 사진으로 본 적 있는 남자 점원이 친절하게 인사를 건네왔다. 그는 대번에 우리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으며, 일회용 렌즈를 사러왔다고 하자 한국인을 위해 따로 마련된 가격표를 보여주었다. 정말 한국 사람이 많이 오는 곳이라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일회용 렌즈라는 게 도수만 알면 사는 데 이삼 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종류와 도수, 몇 팩을 살 건지를 알려주고 카드를 건네자 순식간에 할 일이 끝나버렸다. 고생 끝(?)에 찾아왔는데 이대로 나가는 게 아쉬웠는지 D가 점원에게 혹시 안경테를 좀 조여줄 수 있느냐고 부탁했다. 옆머리를 멋지게 민 점원은 흔쾌히 D의 안경을 받아 몇 번 만져보더니 이미 꽉 조여져 있어서 손 볼 데가 없다고 했다. 원래 좀 헐렁하단다. 홍콩 사람들의 친절함은 항상 감탄스럽지만, 지금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라곤 안경점을 나오는 것밖에 없었다. (렌즈는 정말 저렴했다. 한국보다 사십 퍼센트 넘게 싼 가격이라 왠지 여행 경비를 뽑은 기분이었다.)


 


  뭘 사고 나니까 배고픈 게 좀 잠잠해졌다. 우리는 미라마를 나와 오늘 밤에 가기로 했던 너츠포드 테라스에 미리 가보기로 했다. 작년에도 놀아보긴 했지만, 알고 찾아간 게 아니라 우연히 찾은 곳이라 가는 길이 가물가물했기 때문이다. 한국 식당이 많이 몰린 침사추이 동쪽, 큰 사우나가 있는 언덕을 올랐던 기억을 되짚었다.

  홍콩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너츠포드 테라스는 꽤 유명한 곳이지만, 첫 번째 여행 때만 해도 우리는 이곳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어쩌다 발견했을 뿐이며 거리 이름도 나중에 여행을 다녀와서 알게 됐다. 우리가 얼마나 사전조사 없이 여행을 떠났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이렇게 다시 찾아온 걸 보면 여행지에 대해 많이 안다고 여행이 꼭 성공적인 건 아니며 그 반대의 명제도 성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바로 우리가 그랬으니까 말이다. 우연의 강물에 기꺼이 뛰어들어 잠길 때까지 떠내려가는 것, 그게 우리가 이 도시에서 즐긴 여행의 방식이었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너츠포드 테라스는 한창디너 모드였다. 잘 차려입고 여유가 있으며, 서너 명씩 짝을 지어 웃음과 대화를 끊임없이 주고받는 사람들이 잔뜩 모여있었다. 이곳은 언덕만 내려가면 나타나는 침사추이 골목과는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걷는 것보단 앉아있는 게 더 어울리는 곳. 식기가 달그락거리는 소리, 술잔 부딪히는 소리가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반죽이 된 기분 좋은 백색 소음을 만끽할 수 있는 곳. 마침내 긴장을 풀고 이 도시를 공유하고 있는 다른 동행자들에게 관심을 둘 수 있는 곳. 나와 D는 가볍게 한 바퀴를 돌며 오늘 밤에 우리가 차지할 작은 자리는 어디가 될지 맞춰보았다. 좀 더 밤이 깊으면 이곳은 보다 들뜬 열기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미라마 쇼핑센터와 너츠포드 테라스가 바로 이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길을 삥 돌아왔다니 우습지 않을 수 없었다. , 눈 감고도 찾아갈 수 있는 홍콩의 명소가 또 한 군데 생긴 셈이니 그걸로 족하다.




 

  너츠포드 테라스에서 내려와 침사추이의 남동쪽으로 걸었다. 너츠포드에서 먹을 수도 있었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다른 식당을 찾고 있었다. 사실 식단을 결정하는 것부터 어려운 일이었다. 아무래도 일식을 먹는 게 제일 안전할 것 같았고, 신중히 고른 끝에 괜찮아 보이는 곳을 찍었다. 찰리 브라운 카페 건너편 길에 있는 일식집이었는데 분위기부터 가격까지 모두 마음에 들었다.

  다른 손님들은 다 홀 쪽에 앉히는데 우린 일부러 창가로 빼준 점원의 배려(또는 차별?)에 힘입어 메뉴판을 펼쳤다. 초밥도 먹고 싶었고 돈부리도 먹고 싶었지만, 가장 강렬한 매력을 발산한 건 장어 덮밥이었다.

  “너도 장어 덮밥?”

  “, 나도 장어 완전 좋아해.”

  주문하는 방식도 어찌나 단순한지. 어제도 느낀 바지만, 남자 열 명이 여행을 가서 열 명이 모두 똑같은 메뉴를 시킨다 해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우린 장어 덮밥 두 그릇에 맥주 두 병을 시켰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 조리하는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는 공개된 주방, 그리고 아무리 봐도 일부러 구석에 몬 것 같은 동떨어진 자리. 우린 넓고 깔끔하며 고급스러운 분위기에 취했다. 한국에서 파는 장어 덮밥이나 일본 맥주보단 저렴한 편이기도 했다. 느끼하지도, 달지도 않은 양념과 함께 잘 구워져 나온 장어는 한 입 한 입마다 우리의 힘이 되었다.

  “역시 일식은 배신하지 않아.”

  D가 시원하게 맥주를 마시며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은, 우리 둘의 슬로건이 된다. “일식은 배신하지 않는다.”

  우린 마침내 홍콩에서 밥을 먹으며 만족할 수 있는 법을 배웠다. 이 미식가의 천국은, 직접 일본에 가서 먹지 않는 한 다른 곳에선 견줄 수 없는, 최고의 일식이 가득한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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