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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공항에서 홍콩의 첵랍콕 공항까지 가는 네 시간 좀 안 되는 시간은 장거리 비행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겐 그럭저럭 견딜 만한 고통을 줄 것이다. 나로서는 이 네 시간이 좀 어중간하다. 영화를 한 편 보면 딱 좋겠지만, 저가 노선엔 공용 스크린도 없다. 모바일 기기로 영화를 보는 데 익숙하지 않기도 하고, 도착하는 순간 들여다도 안 볼 영상물을 넣어 오는 게 귀찮기도 하다. 책을 읽자니 온갖 기대와 흥분 때문에 집중이 안 된다. 책 역시 도착하면 표지 쓰다듬는 일조차 없을 게 뻔하고 말이다. 여행 노트를 써 볼까? 이제 막 시작한 여행인데 쓸 말이 있을 턱 없다. 결국 모든 걸 포기하고 잠을 청해 본다. 그러나 기내가 환해서 오래 잠들 수가 없다. 거참 애매하고 또 애매한 시간이다.







  그렇다고 빈자리를 세고 앉아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날 기내는 거의 비어있었다. 다들 7월에 홍콩에 가는 건 그리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여기는 모양이다.







  나와 D는 기내 면세점에서 미니어처 알코올을 주문했다. 50ml 병 당 5달러면 나쁘지 않다. 나는 럼을, D는 위스키를 샀다. 얼음도 함께 제공되니까 기내에서 무료로 주는 음료수에 섞어서 마셨다. 하늘 위에서의 축배! 이 정도 양으로도 충분히 알딸딸해 진다. 술을 마시면서 뭔가를 지껄이고 끼룩 선잠에 들기도 하자 시간이 빨리 갔다.







  그리고 마침내 첵랍콕 공항에 도착했다. 이번에도 작은 위성 터미널에 도착해 셔틀 버스를 타고 도착장으로 이동해야 했다. 여행의 시작점이라는 알싸한 순간에 젖어들면서 한편으론 구름 한 점 없이 푸른 하늘이 얼마나 더운 날씨를 예고하는 건가 두렵기도 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면서 다음 비행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본다. 나는 도착했고, 그들은 떠난다. 괜히 의기양양해 진다. 어차피 삼일천하, 며칠 지나면 나도 저 자리에 앉아 있을 걸 알면서도.







  다른 공항과 똑같이 안내등에 파란색과 붉은색을 써도 터미널이 어두워 그 색이 더 짙어 보인다. 이유도 없이 중화권이라면 이런 색감이어야지, 하고 만족한다. 고압적인 한자와 둥글둥글한 영어의 글꼴 대비도 눈여겨 본다. 환승을 알리는 픽토그램은 언제나 명작이라며 칭송한다. 공항엔 이렇게 볼거리가 많다.







  공항에 입점한 퍼시픽 커피 컴패니엔 누구보다 편해 보이는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거의 비어버린 커피잔이 그가 얼마나 오랫동안 여기에 있었는지 가늠하게 한다.







  중국, 싱가포르, 필리핀으로 가고 싶으세요?

  홍콩 첵랍콕 공항도 거대한 허브 터미널이다. 공항의 규모나 운항하는 노선의 다양함도 중요하겠지만, 근접한 도시가 얼마나 매력적인지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일 것이다. 아시아의 도시에서 하루 스탑오버를 해야 한다면, 홍콩만큼 적절한 도시가 또 어디있겠는가. 어딜 가도 쇼핑이 가능하고, 볼거리도 한군데 몰려 있어 - 보통 스타의 거리나 침사추이에서 시간을 보낼 것이다. - 기나긴 여행을 환기하기에 딱 좋다.







  저번 여행 때도 이런 옷을 입은 학생들을 본 것 같은데? 똑같은 셔터 스피드라도 아이가 그리는 잔상은 어른보다 더 격렬하다.







  이런 장면도 찍었던 기억이 난다. 거의 습관적인 셔터인 건가. 우리는 짐을 찾고, 세관을 가볍게 통과했다.







  이번 여행과 앞선 여행들의 가장 큰 차이점은 호텔 위치다. 지금까지 주룽반도에 있는 몽콕에 한 번, 야우마테이에 한 번 묵었다. 어차피 몽콕과 야우마테이는 걸어서 십여 분 거리라 거의 같은 지역이라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엔 주룽반도를 떠나 홍콩섬 완차이에 있는 코스모 호텔을 잡았다. 그런데 이 로비 사진은 코스모 바로 옆에 있는 자매 호텔(직원이 그렇게 표현했다.) 코스모폴리탄이었다. 공항에서 코스모폴리탄이란 이름을 보고 우리가 예약한 호텔이겠거니 해서 무료 셔틀 버스를 타고 왔는데, 엄밀히 말하면 다른 브랜드였다. 코스모폴리탄이 좀 더 고급스러운 곳이었다. 하긴, 이름부터 풀네임이니까.







  우리 호텔은 이곳이 아니라 옆에 있는 코스모라고 친절하게 알려줬던 직원. 많은 투숙객들이 우리와 같은 실수를 한다고 한다. 여기서 감동했던 건 포터가 짐을 우리 호텔까지 옮겨줬다는 것이다. 더운 날씨에, 언덕까지 올라야 함에도. 어차피 같은 곳에서 운영하는 호텔이기 때문에 서비스도 교차하는 듯 했지만, 홍콩에서 이런 대접을 받는 호텔에 묵는 건 처음이었다. 나나 D나 몸둘 바를 몰랐다.







  우리 호텔인 코스모 로비엔 이렇게 크고 붉은 문이 있었다. 안쪽은 바여서 쾌재를 불렀으나 여행 끝날 때까지 들어갈 일이 없었다. 우리에겐 (이번에도) 면세점에서 사 온 드라이진 한 병이 있었기 때문이다. 밤에 오갈 때 봐도 사람이 그리 많진 않았다. 여기보다 사람이 많았던 곳은 오히려 호텔 중간층에 있는 공중 정원이었다. 우리도 그곳에서 꽤 많은 시간을 보냈다. 공중 정원 사진은 나중에.

 






  방에 들어가마자 깜짝 놀랐다. 아니, 우리가 이렇게 좋은 방에서 잔다고? 홍콩에서 더 높은 등급의 호텔에 묵어 본 사람이라면 비웃을 일일지도 모르지만, 지금껏 나와 D가 잤던 호텔을 떠올린다면 여긴 정말 호텔이었다. 그런데 가격은 오히려 몽콕에 있던 호텔 트윈실보다 저렴했다. 사실 그렇게 저렴한 이유가 있긴 했는데, 코스모 호텔의 가장 저렴한 객실은 공동묘지 뷰였다. 단지 창문을 열리지 않게 해놓고 코팅지를 붙여놔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었다. 밤에 도깨비불이라도 뜨는 게 아닌가 했더니 D가 매력적인 이야기를 해 준다. 중화권에선 공동묘지가 뒤에 있으면 부자가 된다는 미신이 있다는 거였다. 나흘 밖에 머물지 않지만, 그 미신의 덕을 조금이라도 봤음 좋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가볍게 짐을 푼 우리는 방 구조를 좀 바꿨다. 침대를 서로 떨어트려 공간을 만들고, 거기에 간이 건조대와 캐리어를 놓아 탁자로 삼았다.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의 식탁이자 술상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photo by D


  세팅을 마친 우리는 날씨가 얼마나 뜨거운지도 알아볼 겸 산책을 나섰다. 호텔 주변엔 공동묘지 뿐만 아니라 시크교 사원도 있었다. 게다가 지대가 높아 완차이 부근 높은 건물들을 눈높이 쯤(사실 그런 느낌적인 느낌으로)에서 볼 수 있었다. 하늘에선 무지막지하게 따가운 햇살이 쏟아졌다. 그늘에 서지 않으면 시시각각 익어간다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나 그게 나쁘지 않았다. 여름을 여름답게 보내는 거라는 생각에서, 공동묘지와 이슬람 사원, 정체를 알 수 없는 수상한 병원과 한적한 거리에서 복합적으로 느껴지는 묘한 분위기에 젖어서, 이 뜨거운 순간을 즐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치 남국에 온 것 같은 기분. 산책과 함께 우리의 휴가는 시작됐다.



 

Leica Minilux

portra 160

 

iPhone 5

 

Nikon FM2

(tagged "photo by D")

 

 

댓글
  • 프로필사진 teateacaca 귀신이 나와도 타죽을 것 같은 태양광선이군욬ㅋ 2013.12.25 14:33
  • 프로필사진 프린시아 그랬을 거예요. 아마 밤에도 더워서 쉽게 못 나왔을 겁니다 ㅋㅋ 2013.12.26 10:36 신고
  • 프로필사진 좀좀이 고시원 방 같던 호텔방과 비교해보면 정말 엄청나게 훌륭한 방인데요?ㅋㅋㅋ
    세 번째 홍콩이라...공항 모든 것이 매우 친숙하게 느껴지셨겠어요^^
    2013.12.26 07:46 신고
  • 프로필사진 프린시아 진짜 고시원 같던 방에 비하면 천국이었어요.
    게다가 그 고시원보다 더 쌌다는 함정이!! ㅋㅋ
    세 번째 되니까 위치에 대한 강박관념이 좀 사라져서 요런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ㅋㅋ
    2013.12.26 10:3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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