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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적인 파리나 외로운 베네치아처럼 어떤 장소에 어울리는 꼭지를 제 나름대로 붙여 보는 건 여행자의 즐거움이다. 그런데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선 그 권리를 행사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자고 했을 때, 딱히 어울리는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너무 큰 감동을 받는 바람에 말문이 막히는 경우와는 달랐다.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중간 어디쯤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상태에 가까웠다. 발음조차 애매한 분위기를 띠는 '모호하다'란 형용사나, 어쩐지 책임을 저버리는 느낌이 드는 '알 수 없는'이란 수식어가 어울리는 상태 말이다. 물론 빈을 수식하기에 좋다고 널리 알려진 단어들은 많다. 일반적으로 '음악'이 애용되고 있으며, '문화'나 '예술'처럼 범주가 더 큰 낱말을 끌어다 쓰는 경우도 있다. 사람에 따라서는 '초콜릿', '커피', '쇼핑'을 꼽기도 한다. 하지만 빈에서 머문 며칠 동안 그 모든 말들을 조금씩 나누어 담을 또 다른 표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아가 똑 부러지게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이 빈을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이 아닐까 미루어 보게 되었다.

  오전 8시 30분, 야간열차는 빈의 서역(Westbahnhof)에 도착했다. 무려 11시간 반 동안 길고 긴 레일 위를 달려 이탈리아의 끝자락에서 오스트리아의 끝자락으로 옮겨 온 것이다. 사람들이 모두 내리기를 기다렸다가 늦게 하차한 우리는 텅 빈 플랫폼에서 아침 공기를 마셨다. 베네치아나 파리보다 훨씬 차가운 공기였다. 어느 날 문득 바람에 실린 겨울 향기를 맡고 절기가 바뀌었음을 깨달을 때처럼, 몇 시간 만에 늦가을에서 겨울 한복판으로 계절을 뛰어넘은 기분이었다.

빈의 아침

  체크인까진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지만 일단 짐이라도 맡겨두기 위해 호텔에 들르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역을 나서려고 하자 빈의 대중교통체계에 대하여 제대로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여행을 준비하는 동안 그것을 '링'과 '트램'이란 두 단어로 지나치게 단순화한 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베네치아까진 방문해야 할 곳의 동선도 미리 짜뒀고 교통편과 입장료도 꼼꼼히 체크해 두었다. 하지만 빈부턴 아니었다. 여행의 반은 계획 하에, 나머지 반은 즉흥 하에 둔 셈이다. 도착하자마자 뭘 타야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부딪히자 앞으로의 여행이 실패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걱정마저 들었다. 그렇지만 이럴 때일수록 차분하게 생각해 보자. 여행에 실패라는 게 있을까? 준비를 좀 덜하고 커다란 기차역에서 우왕좌왕 한다고 해서 그것이 정말 나쁘기만 한 걸까? 서역에서 호텔이 있는 Matzleinsdorf 역까지 한 번에 가는 트램이 있느냐 없느냐를 아는 과정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출구를 고르고, 트램 정류장을 찾고, 몇 개의 노선을 훑는데 걸리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아낄 수 있다고 해서 여행이 더 윤택해지거나 보람되게 느껴지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이런류의 불안과 긴장감은 피곤한 몸에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곤 한다. 무엇보다 빈의 대중교통은 미리 공부를 했다고 훤히 꿸 수 있을만한 체계도 아니었을 뿐더러, 직접 가서 정류장에 붙은 노선도를 확인하는 게 가장 빠르고 정확한 길이었다. 아직 오지 않는 순간에 대한 걱정은, 막상 그 순간이 되었을 때 가장 먼저 잊는 감정 중 하나였다.

  무사히 골라 탄 빈의 트램은 지상과 지하를 넘나들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바로크 풍의 건물들은 다른 두 도시에선 느낄 수 없었던 중후한 면을 지니고 있었다. 거리 이곳저곳에 쌓여 있는 눈 더미도 그런 인상을 형성하는 데 한 몫 했다. 파리에서도 타보긴 했지만 빈의 노면 전차에 몸을 싣고 있으니 내가 유럽 어딘가에 와있다는 강한 현실감이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바깥 풍경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버스를 좋아한다. 지하철은 책을 읽어도 멀미가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좋아한다. 그러니 버스와 지하철의 장점을 섞어놓은 이 녀석을 타기 위해 내가 이곳에 온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을 느끼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언젠가 트램에 앉아 오랫동안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트램인가 지하철인가.

 
  호텔은 역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우리는 2시 이후에 체크인을 할 수 있다는 안내를 받고 일단 로비에 짐을 맡겼다. 가이드북을 펼치자 가볼만한 곳이 상당히 많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빈은 슈테판 대성당이 있는 1구를 낀 '링(Ringstraße)'과 도시 중간을 가르는 '구르텔(Gurtel)', 두 개의 순환도로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링 안쪽에 주요 명소가 몰려 있기 때문에 우리는 링 안쪽과 바깥쪽을 이틀에 나눠서 돌아보라는 조언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보통은 첫날 링 안쪽을 돌고 다음 날 링 바깥쪽을 도는 모양이었지만 그날은 화요일이었다. 링 안쪽의 명소 중 많은 곳들이 휴무인 날이었다. 파리에서의 아픈 기억이 떠오르며, 같은 실수를 반복해선 안 되겠다 싶었다. 그래, 오늘은 링 바깥쪽이다. 우리는 쇤부른 궁전을 선택했다. 마치 누군가의 자서전 첫 장, 첫 문단, 첫 줄 같은 느낌으로 가이드북에 소개된 곳이었다.

쇤부른 궁전으로 갑니다.


  부른 궁전에 가기 위해 지하철을 두 번이나 갈아탔다. U4 Schönbrunn 역에 내리자 회청색 하늘 아래 황량하게 펼쳐진 시가지가 보였다. 거리의 눈은 간밤부터 계속 내리다 잠시 그친 것처럼 견고한 띠를 이루고 있었다. 언제든지 저들의 증원군이 하늘에서 내려올 수 있다고 시위하는 것 같았다. 떼를 이룬 새들도 정찰을 하듯 건물과 가로수 위를 날아다녔다.

처음엔 황량하단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처음엔 딱히 궁전이라 부를 만한 곳이 보이지 않아 한참을 헤맸다. 그러다가 지금 우리 바로 옆에 길게 늘어서 있는 노란 건물이 바로 쇤부른이라는 걸 깨달았다. 멋쩍게 웃으며 다시 빙 둘러 돌아가니 놓쳤던 입구를 찾을 수 있었다. 길게 이어진 길을 따라 궁전을 향해 걸었다. 겨울의 옷깃은 여지없이 이곳에도 닿아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쇤부른 궁전과 정원 앞에 섰을 때, 이곳이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 궁전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165만 평방미터의 아름다운 프랑스식 정원은 어림잡아 3만3천 세제곱미터의 눈으로 덮여 있었기 때문이다. 눈의 부피를 셈하는 방식만큼이나 믿고 싶지 않은 사실이지만, 싱그러운 녹음이 있어야 할 자리엔 설원이 있었다. 물론 불평을 할 수는 없었다. 1월 중순 출발이라는 노골적인 겨울 여행을 선택한 장본인은 바로 우리니까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제철에 이곳을 찾아 붉은 꽃이 피어있는 황태자의 정원과 파란 하늘을 찍어간다. 우린 그 새파란 사진 풀(pool)에 눈 덮인 언덕과 회색 하늘이 담긴 쇤부른의 이미지를 추가하게 된 셈이다.

쇤부른 궁전과 정원

  정원을 가로질러 언덕 위로 올라갔다. 동네 뒷산을 산책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끝, 언덕의 등성이엔 딴 세상에서 온 것처럼 아름다운 건축물이 서 있었다. 글로리에테(Gloriette), 12세기 프랑스어로 '작은 영광'이란 이름을 가진 이 기념물은 키가 큰 기둥과 아치로 이뤄진 회랑이 돋보이는데, 그 길이가 길지 않아 더 완벽해 보였다. 간결하고 날렵하면서, 동시에 화려했다. 이렇게 매력적인 석조가 어디에나 있을 법한 산책로 끝에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였다. 평범한 일상과 생소한 풍경 사이의 경계는 단 몇 발자국 만에 쉽게 허물어 졌다. 우리가 글로리에테 앞에서 쇤부른의 궁전과 정원을 더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그런 붕괴 속에서 저도 모르게 영감을 받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글로리에테.

  전망이 좋은 고지대에선 이상하게 자연도 가깝게 느껴졌다. 글로리에테 앞에 파인 반쯤 얼어붙은 연못도, 썰매를 타도 좋을 정도로 언덕 아래까지 쫙 깔린 눈의 융단도, 사람을 신경 쓰지 않고 제 할 일에 열중한 동물들도 사소해 보이지 않았다. 얼음이 언 못 위에 수십 마리의 새들이 작대기 같은 다리를 뻗고 회합을 하는 중이었다. 부리로 얼음을 쪼아 봤자 먹이가 나오는 것도 아닐 텐데 녀석들은 흡사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묘하도록 익살스러운 장면이었다. 또, 눈 때문에 흔적이 지워진 길을 따라 걷는 것도 흥미로웠다. 주인이 부재중인 둥지를 지나자마자 청설모 한 마리가 우리를 반겼다. 이런 다람쥣과의 동물들은 들쥐보다 훨씬 귀엽고 영리한 인상을 가졌기 때문에 흔히 호기심이 가득해 보인다고 묘사되곤 한다. 하지만 신중하게 주위를 살피는 이 친구의 눈빛엔 어떻게 이 눈밭 속에서 열매의 흔적을 찾을 것인가 하는 현실적인 고민이 어려 있었다. 복슬복슬한 꼬리를 흔들면서 말이다.

눈 덮인 산중.

  눈. 그랬다. 모든 자연은 눈에 영향을 받고 있었고, 위대한 왕가의 정원이 편안하게 느껴진 이유도 바로 눈 때문이었다. 그리스 신전을 연상케 하는 글로리에테에서 시선을 거두면, 좁은 산길은 겨우내 우리네와 다를 바 없는 현실감을 되찾았다. 손으로 눈을 한 줌 쥐자 아삭아삭한 소리가 났다. 빈에 내린 눈은 알갱이가 크고 건조해서 잘 뭉치지 않았다. 힘을 주어 녹여도 손이 잘 젖지 않았다. 딱 싸락눈이었다. 어릴 적, 할머니 댁에 쌓인 눈이 하도 하얗고 맑아 보여 그걸 먹어 본 적이 있다. 요즘엔 엄두도 못 낼 일이지만 물이 맑다는 빈에선 동심을 되찾아도 될 것만 같았다. 나무 밑동에 쌓인 깨끗한 눈을 퍼서 입에 가져갔다. 차갑고 밋밋한 물맛이 났다. 어렸을 때와 비슷한 건지는 몰라도, 참 좋은 순수한 물맛이었다.

처음으로 제가 등장했습니다.

  언덕에서 내려와 동물원의 입구만 구경하고 출구로 걸음을 옮겼다. 차가운 게 떨어지나 싶더니, 옅은 눈발이 우리를 배웅해 주었다. 비와 안개에 이어 이번엔 눈인가. 옷 위에 얼음처럼 눈이 쌓였다. 축축해지지 않아 좋았다. 며칠 사이에 날씨 정도는 개의치 않게 됐다는 사실에 놀라며, 만약 우리의 여행이 훨씬 더 길었다면 그 끝에 우린 얼마나 굵직굵직한 사람이 되었을까를 상상했다. 정원에 흰 장막이 드리워졌다. 쇤부른은 조용히 여름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에서 나오니 점심시간이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이제부턴 좀더 확실하게 끼니를 챙겨먹기로 했다. 파리에서 삼일 동안 쓴 식비가 베네치아에서의 이틀 식비보다 적었다는 사실도 우리를 고무시켰다. 우리는 별 고민 없이 빈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재래시장이라는 나쉬마크트(Naschmarkt)에 가기로 했다. 현지인들에게 '도시의 위'라 불릴 정도로 그들의 식탁과 밀접한 관계를 맺은 곳이었다. 그러니 우리의 작은 위쯤이야 충분히 채울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하게 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나쉬마크트까지는 멀지 않았다. 쇤부른 궁전에서 지하철(U4)로 고작 다섯 정거장이었다. 지하철 역 출구 앞엔 여기가 나쉬마크트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서 있었다. 그 뒤로 과일과 야채, 곡물과 고기, 빵과 치즈가 쏟아지는 시장 길이 펼쳐졌다. 예상보다 훨씬 정돈이 잘 된데다 깔끔하기까지 해서 처음엔 좀 심심한 면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네 재래시장도 하나 둘 사라지고 있는 이 마당에 유럽의 대도시에서 고향의 저잣거리 같은 왁자지껄함을 바라는 건 지나친 욕심이었다. 게다가 걸으면 걸을수록 상가에 활기가 넘친다는 게 느껴졌다. 먹을 것 천지를 눈앞에 두고 스스로 잔뜩 흥이 난 탓도 있겠지만 말이다.

나쉬마크트로 들어가자.

  시장은 정말 다양한 식료품들로 가득했다. 한국 상점이 가장 먼저 우리의 눈길을 끌었고, 커다란 햄이나 소시지가 주렁주렁 매달린 정육점 앞에선 직접 조리를 해 먹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게다가 레스토랑의 종류도 어찌나 많던지 웬만한 세계 요리는 다 맛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안내 사이트도 나쉬마크트엔 인도부터 옛 유고슬라비아, 그리스, 터키, 일본과 중국에 이르기까지 없는 요리가 없다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카페도 두세 군데가 넘었다. 먹고 싶으면 먹고 가고, 요리하고 싶으면 재료를 사 가고, 커피나 맥주를 한 잔 하고 싶으면 통유리로 된 카페 안에서 노닥거릴 수 있는 곳. 실로 먹는 것과 관련된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것도 저렴한 가격으로!

예전부터 꼭 찍어 보고 싶었던 색색의 말린 과일들, 양념들.

  알록달록한 과일과 조미료에 한참 시선을 빼앗기다가 사과나 망고칩을 살까 머뭇거리기도 했다. 말린 과일을 썩 좋아하지 않는 평소의 취향이 흔들리고 있었다. 과일칩을 한 줌 쥐어 봉지에 넣기를 기다리는 주인아저씨의 인자한 눈빛도 나의 망설임에 단단히 한 몫 했다. 결국 마지막에 가선 나의 본래 취향이 승리를 거두었지만, 모든 시장이 그렇듯 나쉬마크트에도 뭔가를 사야할 것만 같은 흥미롭고 자극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마음에 드시는 거라도?

  말린 과일 대신 우리가 먹기로 한 건 고기였다. 어떻게 조리를 한 것이라도 좋으니 고기를 먹고 싶었다. 빈에선 고기를 먹어야 마땅한 것처럼 느껴졌다. 돈가스의 원조라는 슈니첼 때문일까? 아니면 모양은 달라도 결국 밀을 엎치고 덮쳐서 만든 것에 불과한 음식들을 더 이상 먹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우리는 내부가 훤히 보이는 카페 겸 식당을 하나 골라 들어갔다. 점심시간답게 창가와 안쪽, ㅁ자 형의 바까지 빈자리가 거의 없었다. 가까스로(?) 입구 바로 앞에 있는 바 자리를 하나 차지할 수 있었다. 통유리를 통해 오후 한시의 햇살이 스며드는 자리였다. 적당히 파묻힐 수 있으면서 동시에 적당히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의 소음도 마음에 들었다.


맥주를 드시겠어요?

  그런데 메뉴를 펼치자 난감한 일이 벌어졌다. 메뉴판에 독일어만 쓰여 있었던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휴대폰에 독어 사전이라도 넣어가지고 오는 건데!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단어의 생김새로 뜻을 유추하는 정교한(?) 작업을 수행한 결과, 메뉴에 슈니첼 같은 요리 자체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고등학교 때 잠깐 배운 독일어 실력인 만큼 그런 결론을 신뢰하긴 어려웠다. 그러나 찬찬히 뜯어볼수록 스프, 샌드위치, 샐러드처럼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음식만 시킬 수 있다는 게 기정사실로 보였다. 카페 겸 '간이' 식당이었던 것이다. 샌드위치는 절대 싫다는 오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가운데, 갑자기 당당하게 고개를 쳐든 코브라(생맥주 기계에서 맥주를 따르는 꼭지)에 시선이 꽂혔다. 육류를 못 먹는다면 맥주는 어떨까? 빈은 커피나 슈니첼, 초콜릿만큼 맥주도 맛있다고 소문이 난 곳 아니었던가!
  결국 빈속에 낮술을 하기로 하고 생맥주를 주문했다. 맥주잔은 햇빛을 받아 짙은 오렌지색으로 빛났고, 쪼르르 올라오는 거품은 생명력이 넘쳐 보였다. 보기만 해도 차갑고 톡톡 튀는 탄산의 질감이 느껴지는 듯 했다. 그러니 한 모금 마셨을 때의 맛이야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지 모른다. 목마름과 함께 허기도 가실 만큼 정말 훌륭한 맥주였다.

photo by Rym


  맥주를 홀짝이며 카페 안을 감상했다. 일과가 진행 중인 평일 오후답지 않게 사람들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식사나 음료를 즐기며 대화에 빠져있었다. 혼자 온 이들은 신문이나 잡지를 들고 햇살을 쐬고 있었다. 종업원들도 저녁 피크타임에 어울릴 법한 털털하고 친근한 태도로 손님들을 대했다. 카페 안의 모두는 여행자인 우리보다 훨씬 자유로웠다. 우리는 몸만 자적할 뿐, 마음은 어디로 가거나 무엇을 봐야 한다는 강박에 구속된 상태였다. 반면 여기에 있는 이들은 야박한 점심시간을 어떻게 쪼개 쓸까 고민하는 대신, 그것을 그냥 편안하게 흘려보내는 쪽을 택한 사람들이었다. 배워야 할 점이라기보다는 전염되고 싶은 점이었다. 살짝 취기가 올랐다. 야간열차를 타고 오며 굳어졌던 몸이 풀리고 마음도 쉬 물렁물렁해 졌다. 여행자란 신분에 감사한 이유 한 가지는, 우리의 마음이 주변의 좋은 것들에 쉽게 물들 수 있는 얇은 천처럼 변한다는 사실이다. 어차피 이제부턴 미리 정해둔 계획도 없었다. 어딜 가서 무엇을 보고 왔다고 말하기 보단 어느 도시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고 왔다 말하고 싶어졌다. 우리에겐 기꺼이 그럴 수 있다는 의향과, 그리 적지 않은 시간이 남아 있었다.

왜 우리는 각자 할 일에 열중했을 뿐인 사람들 사이에서 묘한 동질감과 외로움을 동시에 느끼는 것일까.

  맥주를 마시고 나와 점심으로 선택한 메뉴는 케밥이었다. 정말 사람 얼굴만 한 크기의 엄청난 놈이었다. 술기운 때문에 약간 멍한 기분으로 그 큰 걸, 고춧가루도 팍팍 뿌려서 우걱우걱 씹어 먹었다. 애초에 원하던 게 아니었더라도 케밥은 정말 맛이 좋았다. 어디서 무얼 하고 무얼 보고 무얼 먹든, 낯선 땅에서 하는 모든 일은 우리의 가슴속에 나름의 흔적을 남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PS.
이런저런 일로 오후편은 좀 늦어질 것 같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D



핑크색 캡션 사진은 fujifilm F50fd으로
푸른색 캡션 사진은 Canon A-1 + superia 200으로 촬영했습니다.
F50fd 사진은 필름과 느낌을 맞추기 위해 크롭 및 보정을 했습니다.
초록색 캡션은 제가 찍지 않은 기타 사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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