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깟바 섬 남동쪽에 있는 항구는 예상했던 것보다 규모가 컸다. 선착장엔 별 게 없어보였지만 언덕을 넘자 무수한 숙박업소와 식당, 바와 구멍가게들이 나타났다. 배에 탔던 다른 일행 대부분은 방갈로에서 묵는 듯했다. 우리가 묵는 호텔은 우리도 모르는 새에 깟바 섬에서 제일 좋은 곳으로 예약되어 있었다. 가격은 방갈로가 더 비싸지만, 나름 호텔은 호텔이다. 그것도 전망이 아주 좋은 곳으로.
깟바 섬까지만 여행사 프로그램을 이용하고 그 이후로는 개별적으로 이동하는 타냐가 먼저 내렸고, 다음에 나와 D가 내렸다. 나머지 젊은 친구들은 계속 배를 타고 방갈로가 있는 해변을 향해 떠나갔다. 사진 상으로는 그냥 그래보였던 호텔이 약간 빛 바랜 흰색 몸체를 보무도당당하게 드러내며 우뚝 서 있었다. 규모 면에서는 "좋아 보인다."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심지어 저녁도 포함되어 있다는 소리에 우리는 쾌재를 불렀다. 이즈음 현금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객실로 올라가자 세련됐다기보단 가장 기본에 충실한 인테리어를 만날 수 있었다. 샤워기에서 물도 잘 나왔고, 작은 금고에 냉장고, 헤어 드라이어와 전기포트도 있었다. G7 커피믹스도 두 봉지나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좋았던 건 전경이었다. 비스듬한 각도이긴 했지만, 발코니에선 바다가 한눈에 보였다. 수많은 배가 정박해 있는 풍경은 하롱베이와는 또다른 느낌의 절경이었다. 한풀 기가 죽은 햇살이 수면을 간지르고, 범선의 위엄을 흉내낸 배들은 긴 그림자를 늘어트렸다. 나침반을 보니 바다가 펼쳐진 방향이 서쪽이었다. 저물녘에 끝내주는 풍경이 나올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저녁 식사는 오후 일곱 시부터이니 오후 다섯 시 반 정도에 산책을 나가 시내 이곳저곳을 찍고 돌아오자는 계획도 세웠다. D 역시 개인적으로 이 호텔에서 본 바다풍경이 베트남 일정 전체 중 가장 인상 깊었다고 평할 정도였다.
그러나 커피를 마시고 샤워를 하고 담배를 한 대 피운 후 노트를 좀 정리하자 급격히 피곤해졌다. 눈이 절로 감겼다. 돌을 묶어놓은 것처럼 머리가 무거웠다. 여행 중반 이후부터 잠이 많이 줄었는데, 이날 처음으로 낮잠을 잤다. 그것도 꽤 깊게 잠든 모양이었다. 어제도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오늘도 격한 활동을 한 게 없는데 그동안 피로가 누적된 걸까. 아니면 오랜시간 배를 탄다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인걸까. 잠꼬대도 했다는 D의 말을 들으며 눈을 떴을 때 밖은 캄캄했다. 이미 저녁을 먹을 시간이었다. 노을 지는 해안 풍경을 찍으려던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아쉽긴 했는데 그 감정조차 나지막히 들리는 노랫소리처럼 희미했다. 그냥 마음을 스쳐갈 뿐이었다. 피로가 쌓이고 여행이 막바지에 다가갈수록 무덤덤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호텔에서 제공한 저녁 식사 역시 배에서 제공하던 식단과 다를 게 없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오징어 튀김이 굉장히 맛있었다는 것 정도? 쌀밥, 몇 종류의 튀김, 볶은 야채, 과일 접시는 이제 지겹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집에 돌아가도 튀김은 먹지 않아도 되겠다.
식사 후 나와 D는 환전도 하고 산책도 할 겸 밖으로 나와 시내의 주 도로를 따라 걸었다. 이곳의 명물(?)은 바다 위에 식당인 모양이었다. 심지어 어떤 식당은 육지하고 연결돼 있지도 않았다. 어떻게 연락을 해야하는진 모르겠으나(전화번호가 크게 적혀있는 걸 보니 역시 전화를 해야하는 걸까) 선착장에서 작은 배로 손님을 실어 나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멀리서도 식당이 무척 한가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한 곳은 큰 소리로 힙합을 틀어 놓고 있었지만, 그저 거리 전체의 들뜬 배경음 밖에 되지 못했다. 오히려 사람이 많은 곳은 도로 안쪽에 몰려있었다.
하노이에 비하면 턱없이 적지만, 그래도 이 섬을 방문한 여행자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었다. 환전을 해주는 금은방을 찾으러 주 도로 끝까지 갔다가 돌아왔는데, 그중 사람이 젤 많은 식당이 눈에 띄었다. 배에서 만난 날라리 같은 가이드가 추천해준, 섬에서 제일 저렴하고 핫한 술집인 로즈 바도 기웃겨려 봤지만 시간이 일러서 그런지 사람이 별로 없었다. 우리는 전등에 달려드는 날벌레처럼 사람이 제일 많은 곳으로 이끌려 들어갔다.
밤 열 시 이전까지 칵테일을 한 잔 사면 한 잔을 더 주는 행사가 있었다. 사실 거의 대부분의 술집이 그런 해피 아워를 운영하고 있었다. 우리가 앉은 식당 겸 바에는 모히또가 두 종류나 있었는데, 우리는 둘 다 맛 보기로 했다.
그리고 바로 거기서 스위스인 타냐를 다시 만났다. 그녀는 불어판 론리플래닛 '베트남' 편을 펼치고 거기에 몰두해 있었다. 우리가 말을 걸자 반갑게 인사하며 합석을 했다. 간단하게 앞으로 어떤 일정이 남았는지 이야기한 후 개인적인 이야기도 나눴다. 스물여덟 살인 그녀는, 놀랍게도, 직원 여섯 명을 밑에 둔 사장님이었다. 플라워리스트이자 홈 데코도 하는 그녀는 로잔과 베른 사이에 있는 작은 도시인 뷜르 출신이라고 했다. 뷜르는 스위스에서도 프랑스어를 주로 쓰는 지역이었고, 이미 쓴 적 있듯 그녀는 독일어에도 능했다.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에서 샵을 운영한다는 이야기에 우리는 그녀가 부러워졌다. 특히 언젠가 자기 사업을 하고 싶어하는 D로서는 그 말이 굉장히 인상적인 모양이었다.
원래 플라워리스트 출신이라는 말에 나는 M의 이야기도 했다. 여자친구 역시 플라워리스트였다고 말이다. 또, D는 자신이 카라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도 했다. 역시 본인의 관심사가 나와서 그런지 타냐는 정력적으로 자신이 만들었던 꽃이나 자신이 좋아하는 꽃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녀는 흰 꽃을 좋아한다고 했다. 나와 D는 하노이 시민들이 꽃을 좋아한다는 인상을 받았기에 그 말을 전했는데, 전문가답게 그녀는 냉정한 판단을 내렸다. 하노이의 꽃은 너무 컬러풀하고 배색이 조화를 이루지도 못한다는 거였다. (나중에 한국에서 M을 만나 산책을 할 때, 조경 삼아 길가에 심어진 색색의 꽃을 두고 그녀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배색! 그 얼마나 중요한 감각인지!) 역시 그래도 작지 않은 회사의 사장님답게 그녀에겐 은근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이번엔 아까 배에서 만난 이들 중 프랑스 출신이 있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연락처를 교환하는 걸 봤는데 그들과 연락은 닿았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연락을 하지 않았으며 솔직히 그 무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그 무리 짓는 속성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여기서 나와 D가 유독 민감했던 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기도 했다.)
사업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자연스레 근무 시간에 대해서도 논하게 됐다. 그녀는 이 년만에 이렇게 긴 휴가를 나올 수 있었을 정도로 바빴다고 했다. (보통 유럽인들이 한 달 가까이 휴가를 간다는 걸 생각해 보라.) 주에 42에서 45시간을 일한다고 하는데 직종의 특성상 주말에도 일을 할 때가 있단다. 계산을 해보니 야근까지 계산하면 나는 평균 50시간 언저리고, 여행을 떠나오기 직전의 D는 거의 60시간에 육박했다. 그 이야기를 해주자 자기는 나은 편이었다며 타냐는 웃었다. 한국의 근무 시간이 얼마나 긴지에 관해 떠들어대는 건 이토록 즐거운 일이다. 뭐랄까, 자학의 기쁨이랄까. 나는 사업을 할 생각이 전혀, 추호도 없으나 D는 적게 벌어도 자기 일이라면 주에 45시간이든 65시간이든 상관 없을 것 같다고 했다. 나도 그 시간 동안 글을 쓸 수 있다면 기꺼이 나를 바칠 용의가 있지만 말이다.
스위스의 작은 도시에서 온 젊은 여사장님과의 대화는 그렇게 흥미진진했다. 맥주를 많이 마신 건지 튀김을 많이 먹은 건지 배는 뽈록 튀어나왔지만 얼굴은 동안이었던 그녀가 야무지게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직원도 둘이나 부린다는 이야기에 놀랐고, 꼼꼼하게 일정을 짜면서도 할 수 있는 액티비티엔 다 도전하는 활력을 보여주는 넓은 스펙트럼에도 감탄했다(하긴 그러니까 오너가 되는 건가). 불어와 독어에는 유창하지만, 영어는 이번 여행을 통해 십삼 년만에 처음 쓴다고 하면서도 우리와 대화가 잘 이어지는 점도 신기했다. (스위스인들은 전부 천재인 게 아닐까?) 성별이 무엇이고 나이가 무엇이고 주제가 무엇이든, 역시 사람과의 만남엔 이런 조곤조곤한 대화가 가장 큰 즐거움인 것 같다. 서로라는 개인을, 서로가 속한 문화를, 그리고 서로가 꿈 꾸는 어떤 이상을 알아간다는 건 언제 어디서든 환영할 일임을 나는 알았다.
다들 체력이 바닥이 났는지 열 시가 조금 넘자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마침 옆 테이블에 프랑스인들이 있어서 타냐가 그들에게 우리의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다음 날 하노이로 돌아가는 배에서 잠깐 스치게 되는 아주 잘생긴 프랑스 남자가 담배를 피우며 흔쾌히 응했다(정작 카메라를 든 건 그의 여자친구였지만). 그 사진을 찍으며 한 가지 더 흥미로운 기억을 떠올렸다. 타냐가 워낙 불어를 잘 해서 중간에 그녀를 프랑스 인으로 착각할 때가 있었다. 예컨대 저쪽에 있는 사람도 프랑스에 온 것 같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한 것이다. 그럴 때면 그녀는 "그래도 스위스인은 아니야."라고 대답하고는 했다. 맞는 말이다. 뭐랄까 인접 국가의 확연한 개성에 비하면 조금 밋밋한 그들인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일곱 달 동안이나 아시아를 여행을 한다던 슬로우보트에서 만난 청년을 비롯해 단 두 명의 스위스인이 그 나라의 인상을 바꾸어 놓았다. 어떤 국가에 호의를 품고 호기심을 가진다는 건 정말 사소한 접점에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닌가 싶다. 나와 D를 만난 외국인들이 부디 우리를 통해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을 품었기를. 내가 애국심이 뛰어나서는 절대 아니다. 그저 이건, 그러니까, 여행 중 우리는 하나의 개인이자 곧 어떤 문화나 국적의 표본 집단이 되기 쉽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소감일 뿐이다. 또한 앞으로 같은 반도 출신의 여행자들이 훨씬 수월한 여행을 할 수 있도록 초석을 닦는 길일 수도 있을 것이고 말이다. 나는 소속감을 느끼는 데도 까다로운 잣대를 들이대는 인간이지만, 여행 중엔 그 아집이 이리도 쉽게 꺾일 수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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