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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간의 기록.
28일 동안 기차와 배에서 잔 날을 포함해 모두 열다섯 군데의 숙소에서 묵었다. 가장 많이 숙소를 옮긴 곳은 라오스의 방비엥이었다.
우리는 끝없이 이동했다. 택시, 툭툭이, 송태우, 시내버스, 미니밴, VIP 버스, 열차, 자전거, 오토바이, 슬로우 보트, 스피드 보트, 크루즈, 카약, 비행기 등을 탔으며, 무엇보다 두 다리가 최고의 이동수단이었다.
현금으로 가져 간 1,280달러는 한 푼도 남지 않았다. ATM기는 두 번 이용했는데 한 번은 재미삼아 해봤고 한 번은 당장 쓸 돈이 없어서 해봤다. 현지에서 카드로 계산한 비용 중 가장 비쌌던 건 2박 3일 하롱베이 크루즈 투어였다. 그리고 단시간에 최고 비용을 쓴 건은 비엔티안에서 하노이로 가는 베트남 항공이었다. 우리는 한 시간만에 400km가 넘는 거리를 뛰어넘었다.
음식이 제일 잘 맞았던 나라는 의외로 태국이었다. 그리고 세 나라를 통틀어 가장 많이 먹은 음식은 볶음밥이었다. 무엇이 가장 맛있었느냐고 묻는다면 여행 초반 방콕 레지던스에서 직접 끓였던 너구리라고 답하겠다. 나는 라면을 잘 끓인다. 한식은 의외로 많이 먹었다. 봉지라면 두 봉지, 컵라면 세 컵. 한국인이 운영하는 한식당에는 네 번 들렀다. 치앙마이에서 한 번, 루앙프라방에서 두 번, 하노이에서 한 번. 방비엥에서 먹은 삼겹살 샤브샤브는 우리나라 음식으로 치기엔 조금 부족한 것 같으니 제외하자. 세계적인 프랜차이즈 방문횟수도 그냥 넘어갈 순 없을 것이다. 맥도널드 두 번, 롯데리아와 KFC에 각각 한 번씩 들렀다. 스타벅스에도 두 번 갔었다. 반대로 제일 맞지 않았던 음식이 뭐냐고 묻는다면 하노이에 도착한 첫날, 거리에서 먹은 쌀국수였다고 대답하겠다. 누린내가 나는 국물도 국물이었지만, 고수가 너무 많이 들어가 있었다. 고수가 싫다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아저씨는 태연하게 내게 맥주를 권했고.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담배를 얼마나 피웠는지, 몇 잔의 커피를 마셨는지는 도저히 셀 도리가 없다. 어쨌든 무지막지하게 마시고 피워댔다. 아니,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술은 많이 줄었는데 담배는 그렇지 않았다. 반성할 필요가 있겠다.
현지에서 산 옷도 몇 벌 된다. 방콕에서 티셔츠 세 벌을 샀고, 여행 끝날 때까지 잘 입고 다녔다. 이제 곧 여름이니까 앞으로 한국에서도 잘 입고 다닐 것 같다. 역시 방콕에서 산 가방도 이루 말할 수 없이 유용했다. 스타일을 히피나 에스닉 쪽으로 바꿀까도 고민했을 정도다. 방비엥에선 수영복을 샀지만 비엔티안에 도착한 후 찢어져 버렸다. 그리고는 거의 산 게 없다. 선물로 주기 위해 팔찌 같이 생긴 발찌도 아닌 장신구 세 개를 사기는 했다. 나를 위해선 베트남식 커피 추출 기구와 원두 커피를 샀다. 집에 와서도 편하게 잘 내려마시고 있다.
생필품은 치약 두 개, 면봉 한 봉지, 모기향 한 상자, 샴푸 한 통, 비누 한 개에 세제 한 봉지, 섬유 유연제 여섯 봉지를 샀다. 오일 페이퍼는 100장 정도 썼고, 다 새것으로 가져간 화장품과 폼 클렌징은 반 조금 넘게 남아 집으로 돌아왔다. 약도 꽤 먹었다. D가 사다 준 홍삼 엑기스 정을 포함해 감기약 네 알, 알레르기 치료제 아홉 알, 소화제 한 봉지를 먹었다. 출발할 때의 내 가방 무게는 7.8kg이었고, 집에 올 때의 내 가방 무게는 8.6kg이었다. 웃긴 건 부피는 줄었다는 사실이다. 짐 싸는 기술이 늘었나 보다.
워낙 많은 사람을 만나 그 수를 다 셀 수는 없다. 무의미한 몇 마디 말을 주고 받은 이들도 한둘이 아니니까. 출신 대륙으로 치면 유럽이 제일 많았다. 독일, 프랑스, 영국, 스위스, 헝가리,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등등. 의외로 이탈리아 사람은 만나보지 못했다. 그 외에 캐나다, 미국, 브라질과 칠레에서 온 사람이 기억에 남는다. 아시아 출신으로는 홍콩, 태국(라오스에서), 일본과 중국, 싱가폴, 말레이시아에서 온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한국 사람들도 있었고 말이다! 페이스북 친구는 다섯 명을 만들었다. 내 평소 이용습관을 봤을 때 꽤 많은 숫자다. 외국인 중 한국어를 아는 사람을 셋 만났고, 여행에서 가장 절실한 언어는 영어임을 깨달았다. 그 다음으로 자주 들은 언어는 프랑스어였다. 나는 그들의 우아한 발음에 몇 번이고 황홀해지곤 했다. 다음엔 더 많은 이들을 만나고 싶다.
짧게라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곳은 방콕이었다. 한 일 년 정도 살면서 글을 쓰면 어떨까 하는 바람을 갖기도 했다. 더워서 죽을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이번 여행에서 방문했던 모든 도시 중 가장 살기에 편하다는 점만은 확실했다. 일 년을 살아도 끝없이 자극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부질없는 기대도 그런 생각에 한몫했다. D는 절대 싫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혹시 여기에 살면 종종 놀러오라고 했다.
디지털카메라로 총 1,661장의 사진을 찍었다.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은 300장이 조금 넘는다. 둘 다 동영상을 포함한 숫자고, 전부 2천 장이 조금 안 되는 셈이다. 그중에서 괜찮다 싶은 컷은 100장 정도 되는 것 같다. 정말 마음에 드는 사진은 열 장 정도 된다. 그것도 거의 초중반에 몰려있어 안타깝다.
마지막 날을 제외하고 27일 동안 쓴 여행 노트는 모두 164,027자다. A4로 100장 정도 되는 분량이다. 물론 이를 여행기라고 하긴 어렵지만, 모르겠다, 제대로 된 여행기를 쓸지 쓰지 않을지를 말이다. 어쨌든 어딜 다녀와서 뭘 쓰겠다고 할 때마다 더럽게 오래 걸리는 내 속도를 봤을 때, 현지에서 블루투스 키보드로 바로바로 쓰겠다고 결심한 건 잘한 짓이었다. 안 그랬음 절대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여행 노트를 기반으로 여행기를 썼을 때 분량이 3배 정도 불어났다. 16만 자라면 거의 50만 자인데 무슨 두 권 짜리 장편 소설도 아니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나도 이 여행기가 재미없다는 걸 안다.
여행의 마지막에 28일 간의 기록이라는 바로 이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한 건 여행 넷째 날이었다. 보다 많은 걸 기억할 줄 알았는데 그러지 못해 아쉬운 마음 뿐이다. 이걸 쓸 날이 오고 말았다는 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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