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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로 아침을 때우고 물로 연명하다가 점심시간이 지났다. 오전 내내 땡볕 속을 걸어 다녔더니 힘이 없다. 뭘 먹고 싶은지도 모르겠고 뭘 먹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스팸 무스비조차 땡기지 않는다. 그냥 아무거나 대충 밀어 넣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게 집에서 혼자 휴일을 보낼 때와 똑같다. 음식을 먹는다기보단 최소한의 열량을 공급한다는 느낌에 가까운 바로 그 순간 말이다.

  알라 모아나의 푸드코트에 들어섰지만 메뉴 고르기가 어렵다. 일단 종류가 너무 많다. 한식, 양식, 중식, 일식에 태국식까지. 미국의,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세계 음식의 바이블을 보는 기분이었다.

  전체를 세 바퀴를 돌고 나서야 마음이 선다. 오늘의 정답은 하치바 상 - 일본식 그릴요리 전문점 - 이 요리해 주는 치킨 데리야키 플레이트다. 조리하는 시간 동안 함께 시킨 작은 크기의 콜라를 먼저 뽑아주는데 주문이 잘못 들어간 줄 알았다. 한국이라면 제일 큰 걸 시켜야 나올 법한 놈을 준 것이다. 빨대를 꽂으며 궁금해진다, 그럼 라지 사이즈는 얼마나 크다는 거냐? 답은 구석에서 노닥거리는 덩치 큰 흑인 형님들이 알고 있었다. 그들은 극장에서 파는 둥그런 팝콘 통 같은 것에 빨대를 꽂고 음료를 쭉쭉 빨고 있었다. 나라면 반나절은 물고 있어야 할 양이었다. 적잖게 놀란 마음을 안고 나도 자리에 앉아 콜라를 쭉쭉 빨았다.

  점원이 내 대기 번호를 - 화면에 띄우는 게 아니라 - 소리 높여 불렀다. 보라색 도시락 뚜껑을 열자 음료수 크기에 놀라고 있을 때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고기를 올리는 덮밥에, 난 여태껏 밥보다 고기가 많은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오죽했으면 닭고기에 덮여 흰 쌀밥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노릇노릇 구워진 고기를 밀쳐내며 수저를 뜬다. 단돈 몇 달러에 고기를 추가할 수도 있다는데 그렇게 하면 도대체 이 도시락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닭 한 마리가 통째로 올라오기라도 하는 걸까?

  이게 바로 미국의, 아니 하와이의 기상이구나 싶다. 고기 대신 밥을 아껴먹어야 하고 결국 고기가 물려 한 주먹이나 남겨야 하는 푸짐한 인심(?). 감탄을 금치 못하며 남은 콜라를 쭉쭉 빨았다. 억지로 시작했다가 배불리 끝난 오늘의 식사를 두고 링거로 고기를 공급받았다고 비유하면 참으로 적절하겠다. 게다가 맛까지 좋았으니, 결론은 하나다. 체중을 늘리고 싶지 않은 이상 절대 하와이에서 살면 안 되겠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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