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

  휴일 낮의 센트럴과 월요일 저녁의 센트럴은 확연히 달랐다. 지금껏 별로 본 적 없는 정장 차림의 남녀가 빌딩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문득 홍콩을 묘사하는 많은 표현 중 '세상에서 가장 바쁜 도시'가 떠올랐다. 금융업이 발달한 도시는 왜 삶의 속도까지 빨라져야 하는 걸까? 오직 숫자로만 존재하는 실체 없는 이상을 잡기 위해 쉼 없이 뜀박질을 해야 하기 때문일까? 이 도시가 그나마 진취적으로 발을 구르는 곳이라고 한다면, 그저 뒤처지지 않기 위해 각박하게 사는 한국은 얼마나 처참한 곳인 걸까?

 

  아니다, 분위기를 바꾸자. 오늘은 밤을 새워 기념해도 부족할 여행의 마지막 날이니까.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한다. 홍콩 남자의 헤어 스타일을 두고 흉을 본 적이 있지만, 그들은 실로 정장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어울렸다. 신장이 크진 않아도 짧게 친 머리와 대체로 작은 얼굴, 마른 몸매 덕분이었다. 아시아에선 당신네가 최고입니다, 이렇게 말해 주고 싶을 정도로 탁월한 신체 구조를 가진 이가 많았다.



  꾸역꾸역 언덕을 올라 빅토리아 피크 트램 정류장에 도착했다. 기다리는 사람은 한가득인데 트램 노선이 하나뿐이라 대기 시간이 만만치 않았다. 기다리는 동안 구경하라는 듯 플랫폼으로 이어진 통로엔 트램이 처음 만들어졌을 당시의 의복, 차체 덩어리와 부품 등이 진열되어 있었다. 이 진열품 때문에 이곳을 피크 트램 박물관이라 부르기도 한다는데 솔직히 박물관이란 명칭을 아무 곳에나 갖다 붙인 게 아닌가 싶다.



  삼십 분 정도 지나 겨우 트램 앞자리를 차지했다. 트램은 양옆으로 주택가가 자리 잡은 가파른 철로를 오르기 시작했다. 사십오 도가 넘는 경사를 꾸역꾸역, 천천히. 거리는 어두웠다. 불과 삼백 미터 아래처럼 조명으로 도배하지 않은 진짜 사람 사는 동네였다. 그렇게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아 시야가 탁 트이며 홍콩섬이 한눈에 보이는 절경이 나타났다. 하지만 하필 반대편 자리에 앉은 우리는 창가에 몰린 승객의 어깨 너머로 감상할 수밖에 없었다. 홍콩섬의 전경은 미래 도시를 구축해 놓은 시뮬레이션 게임의 한 장면 같았다. 이젠 익숙해질 만도 하지만 그래도 감탄이 나온다. 아마 홍콩에 몇 번을 다시 와도 탄성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트램에서 내리자 기념품 가게가 먼저 나타났다. 보통 이런 건 출구에 만들지 않던가? 그럼에도 물건을 구경하는 손님이 꽤 있는 걸 보면 굳이 다시 돌아올 정도로 괜찮은 물건이 많거나 홍콩에서 워낙 매대에 익숙해진 나머지 습관적으로 걸음을 멈추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막상 피크 타워에 오르자 만사가 귀찮아진다. 안개가 껴서 야경이 매력적이지 않았고, 심포니 오브 라이츠를 굳이 다시 보고 싶지도 않았다. 밀랍 인형을 전시해 놓은 마담 투소 박물관 같은 곳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우린 그저 배가 고팠을 뿐이다. D와 나는 만사 제쳐놓고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첫날 맥도널드에서의 대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버거킹을 선택했다.

  한국 매장과 다른 메뉴는 없었지만 패티를 세 장까지 더 넣을 수 있는 옵션은 흥미로웠다. 그러나 그걸 실제로 적용하는 사람은 서양에서 온 건장한 친구들뿐이었다. 우린 패티를 추가해 혈관을 틀어막는 대신 콜라를 맥주로 바꿔 마셨다. 한국에서도 곧잘 버거킹에서 점심을 해결했었는데 이렇게 홍콩에 와서 맥주를 곁들이자 느낌이 또 달랐다. 햄버거야 한국과 별반 다를 게 없는 - 고기는 좀 더 맛있었다. - 맛이었지만 이국의 전망 좋은 산 정상에서라면 점수를 후하게 줄 수 있었다. 아니, 맥도널드에서 쇼군 버거에 데였던 걸 떠올려 보면 고향과 변함없는 맛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감사할 지경이었다.

 

  심포니 오브 라이츠가 끝나면 이번엔 하산하려는 인파에 치일 것 같아 그 전에 내려오기로 했다. 우린 정말 빅토리아 피크에 밥을 먹으러 올라왔던 셈이다. 처음엔 트램을 타려고 했지만 기념사진을 찍으러 밖으로 나왔다가 피크 갤러리아 지하에서 센트럴 행 미니버스를 발견했다. 차비가 적게 든다고 좋아하긴 했는데 이게 스릴 만점이라는 것까진 미처 알지 못했다.

  수백 번 넘게 정상을 오르내리며 쌓은 노하우로, 기사 아저씨는 마치 브레이크가 없는 것처럼 급커브와 급경사를 질주했다. 길도 어둡고 마주 오는 차는 끝없이 이어지는데 속도를 줄이려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덕분에 난간을 들이받고 산 아래로 떨어지는 상상이 가미되어 피크 트램보다 훨씬 격한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저승이 보이는 인적 드문 산길을 내려와 센트럴의 화려한 도심 속으로 진입했다. 어제 스탠리에서 올라올 때도 마주했던 감정, 마치 꿈에서 깨어나 갑작스레 현실로 내던져진 듯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조그만 버스에서 내리는데 눈이 핑글핑글 돈다. 그러고 보면 이제 슬슬 꿈에서 깨어날 시간이었다.


 

 

::

  센트럴에서 몽콕으로 올라오는 지하철에 앉아 여행의 끝과 피로감을 실감했다. 머리가 멍하고 눈만 감으면 당장 잠들어 버릴 수 있는 그런 상태였다. 홍콩인들도 집으로 가는 발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그들은 주말 비슷한 시간대에 만났던 사람들보다 말수가 적었다. 대체로 휴대전화 액정에 시선을 고정하고 입은 굳게 다문 모습이었다. 서울에서도 고단한 월요일 저녁에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라 같은 도시인으로서 피로를 나눠 짊어진 기분이었다.


 

  이젠 몽콕의 밤거리도 눈에 익을 대로 익었다. 이 거리를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어지러운 생동감은 불과 이틀 만에 평범해졌다. 정이 든다는 건 대상을 막론하고 부지불식간에 이뤄지는 모양이다. 몽콕의 거리는 별천지 같은 도심과 참호 같은 호텔방 사이에서 묵묵히 (종종 취두부 냄새를 풍기며) 우리의 귀가를 환영해 주곤 했었다. 하루의 시작에 걸었던 기대와 하루의 끝에 품었던 여운은 모두 여기서 완성됐다. 사실 한 일이라고는 걸어 다닌 것밖에 없는데 집으로 돌아가면 이곳이 무척 그리워지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호텔에 도착해서도 D와 나는 그런 이야기를 했다. 오늘은 이대로 쉬고 싶지만 그래도 우리가 머물던 동네를 한 바퀴 둘러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우리에겐 일시적으로 힘을 내게 해주는 드라이 진과 뜨거운 샤워가 있지 않으냐고. 친절에 보답하듯, 우리는 몽콕에 시간을 투자하기로 했다. 마지막 밤다운 자세로 신 나게 헤매주겠다고 말이다.


 

::

  홍콩에서 가장 붐비는 곳이 나단 로드를 낀 몽콕이라 했던가. 월요일 밤에다 거의 열한 시에 가까운 시각임에도 거리는 이른 저녁처럼 활발하게 움직였다. 평균 연령도 족히 십오 년은 낮아진 것처럼 보였다. 일단 어딜 들어가기보단 소란스런 분위기에 푹 빠지고 싶어 무작정 걸어 다녔다.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다니는 - 주로 남자 한 명과 여자 여럿이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여초 현상일까? - 젊은이들과 그들이 들락날락 거리는 각양각색의 식당이 몽콕의 인상, 그 화려한 캔버스에 밑그림을 그렸다.

  한참 이곳저곳 쑤시고 다니면서 한국과 다른 점도 보이기 시작했다. 술집이 별로 없다는 것과 취객은 아예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월요일이지만 내일에 대한 걱정이 없는 청춘 몇은 있을 법도 한데 거리의 그 누구도 휘청거리지 않았다. 하긴 사흘 동안 홍콩에서 술을 마시면서 우리처럼 과음(?)하는 주객을 본 적도 없는 것 같다. 홍콩 사람들은 술을 싫어하는 걸까? 아니면 다들 절제를 잘하는 걸까? 이런 의문이 들자 식당에 앉아 있는 젊은이들이 다시 보였다. 문 닫은 쇼핑센터에서 나온 그들은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동료끼리 모여 저녁을 먹고 있는 것이다. 관광객에겐 며칠 간 향락을 누리다 떠날 도시일지 모르겠지만, 생활인으로 사는 그들에겐 고된 대가를 치러야 버텨낼 수 있는 험난한 터전이리라.


 

  이 모든 건 결국 나름의 방식으로 우리에게 장애가 됐다. 술을 한잔하고 싶은데 괜찮은 술집을 찾기도 어려웠거니와 막상 들어가도 열두 시 반, 길어봤자 한 시까지밖에 영업을 안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다급해졌다. 시간이 흘러가고, 불 꺼진 간판은 점점 늘어났다. 그 많던 사람이 하나 둘 사라졌다. 하루가 물러가고 있었다. 낭패였다.

  여기서 내가 낸 의견은 차라리 택시를 타고 란콰이퐁이나 침사추이로 가자는 거였다. 그쪽 동네는 워낙 여행자가 많이 모이니까 더 늦게까지 여는 곳이 있으리란 계산이었다. 그런데 D가 반대했다. 내일은 돌아가야 하는 날인데다가 한국 도착 시각이 늦는 만큼 모레의 출근을 걱정했던 것이다. 사흘 중 처음으로 두 사람의 의견이 달랐다. 돌이켜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차이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게 너무 아쉬웠다. 결국 D의 의견대로 몽콕에 남기로 한 것이다.


photo by D


  한 시까지 몽콕에서 장소를 물색하다가 결국 포기했다. 그래서 잠자코 방으로 들어가 잠이나 잤을까? 아니다. 우리를 받아줄 곳이 딱 한군데 있었다. 우연히 새벽 세 시까지 영업한다는 확인을 이미 받아둔 곳. 그곳은 몽콕의 중심지 그 어디와도 가깝지 않았지만, 대신 우리 호텔과는 아주 밀접했다. 바로 맞은 편에 있었기 때문이다.

 

 

::

  첫날 호텔 주변을 묘사하면서 잠깐 언급했던 이자카야가 있다. 호텔에서 사십오 초 거리. 철물점밖에 없는 동네에서 이상하리만치 분위기가 좋고 늦게까지 열며 손님도 더러 있던 곳. 하루에 몇 번씩 그 앞을 지날 때마다 나중에 저 이자카야에 가보자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런데 정말로 그럴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마치 타지에서 세상 풍파에 시달리다가 마침내 나를 받아줄 곳은 고향밖에 없다는 걸 깨달은 사람처럼.

  사실 이곳에 오는 사태를 끝까지 막아보려 했던 쪽은 나였다. 여행이 끝나가는 아쉬움을 시끌벅적하게 달래야 미련이 없을 것 같았서 였다. 그런데 호텔 앞 이자카야는 그러기엔 너무 조용한 곳이었다. 찝찝하고 밋밋하고 허무한 것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주저하게 했다. 그러나 어쩌랴. 난 거의 자포자기 상태였고, 주인아저씨에게 새벽까지 영업한다는 대답을 들은 D는 그나마 다행이라는 표정이었다.

 

  , 지금껏 이 글을 통해 홍콩에 대한 찬사를 무던히도 보냈더랬다. 그리고 마지막 역시 그냥 넘어갈 순 없다. 홍콩에 딸린 많은 부산물은 대체로 우리를 후회하게 하지 않았다. 그게 여행안내서에 올라가 있기는커녕 동네 사람만 겨우 알 만큼 외진 술집이라도 말이다.

  손님은 한 명도 없었다. 주인아저씨는 파리보다야 우리가 반가운 것 같았고, 사케를 시켰을 땐 아주 환영하는 분위기를 연출하셨다. 그러면서 안주를 추천해 주는데 소의 혀, 간 같은 부위를 자신 있게 권하신다. 물론 정중히 사양했지만.

  대신 참치회 몇 점과 장어구이 일 인분, 닭꼬치 한 개를 시켰다. 닭꼬치는 별로였으나(그놈의 육지동물!) 참치와 장어는 정말 맛있었다. 사케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가 (싸길래) 대충 집어든 술도 좋았는데 나중에야 그게 한국에서도 있기 있는쿠보타 센쥬란 걸 알게 됐다. 그것도 한국의 이자카야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이었다.


photo by D


  우리는 끝없이 대화하며 술잔을 비우고 안주를 먹어치웠다. 테이블이 열 개 정도 들어가는 크기의 매장엔 나와 D, 그리고 새벽에 손님을 맞아 신 난 사장님과 주방장 한 명이 전부였다. 우리는 창가에 앉아있었고, 두 사람은 주방 앞에서 직접 조리한 안주로 밤참을 먹었다. 아마 그들은 거나하게 취해 큰 소리로 떠드는 우리가 적잖이 시끄러웠을 것이다.

  사람도, 분위기도, 술도, 안주도, 대화도 지극히 만족스러워 시끌벅적하게 놀지 못한 아쉬움은 금방 잊혔다. 게다가 집도 가까우니 얼마나 취하던 걱정이 없었다. 우리는 호텔과 사십오 초 거리에 있는 이 이자카야를 다음에 꼭 다시 찾기로 했다. 관광객은 전혀 없는, 몽콕 어느 좁은 골목에 있던 느긋한 안식처 같은 곳에 말이다. 그리고 곧 그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되어 실로 다행이다.



:: 

  술이 약이었다. 마지막 밤이라고 아쉬워할 정신이 없었다. D와 나는 호텔방으로 돌아와 헤롱헤롱 거리며 남은 봄베이 사파이어를 거룩하게 비웠다. 늦게 일어나 허겁지겁 공항으로 달려가는 상황은 상상만 해도 끔찍했으나 끝내야 할 일은 끝내야 하니까.

  참 많은 일을 했던 사흘이었지만 그럼에도 실현되지 못한 가능성이 무궁무진함을 안다. 한 번의 여행에서 모든 걸 다 얻을 순 없을 것이다. 의식이 가물가물한 상태에서 이런 생각을 했다. '홍콩의 시간은 현실과 정반대로 도는 게 아닐까.' 대체로 피로하며 좌절의 연속이기 마련인 일상과 달리 여기선 무엇이든 딱딱 들어맞았다. 우연의 여신은 카드를 남발했고, 진동계처럼 오르내리는 마음의 고저 차는 평소보다 월등히 컸다. 그러니, 결론은 하나다. 이 도시엔 다시 오지 않을 이유가 없다.



canon A-1 + 50mm

kodak 100

iPhone 4

Blackberry Bold 9900 by D



댓글
댓글쓰기 폼
공지사항
Total
510,440
Today
1
Yesterday
20
«   2019/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