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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항 사진을 올리고 싶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공항 사진 올리고 싶었다. 여행을 다녀와서 이렇게 사진 정리하기 귀찮았던 적이 또 있나 싶다. 어느 정도 보정을 해줘야 조금이라도 성에 찬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 이런 점에서 필름 카메라는 참 편했다. 스캔 받은 파일을 크기만 줄여서 올리면 됐으니까. 올릴 사진을 고르는 데 애를 좀 먹긴 했지만, 대부분 어떤 글을 써야 하나 그 고민만 했으면 됐으니까.

  마지막 홍콩 여행기의 첫 편에 유난히 공항 사진이 많았는데, 그걸 올리며 매우 신이 났었던 기억이 난다. 다른 이유 없이 공항 사진을 만지는 기분이 좋아서 그랬다. 한없이 창백한 구조물에 불과한데 어떤 장면이든 그 안으로 들어가고 싶게 만드는 마력이 공항 사진엔 있다. 알랭 드 보통의 『공항에서 일주일을』에 실린 사진들을 인상 깊게 본 탓도 있을 것이다. 리처드 베이커처럼 찍고 싶다는 바람! 담백하고 시사적이면서 동시에 낭만적인 사진을 내 손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나름 여행의 기록인 이 글에서 이번 마닐라 여행이 특별했던 이유를 적지 않을 순 없겠다. 지금껏 홍콩 여행기의 주인공이었던 D와 Y는 물론, 일상 글에서 종종 언급됐던 K, 그리고 현재 마닐라에 사는 B까지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만난 좋은 친구들이 여기에 총출동한다. 한국 출발 네 명. 현지 만남 한 명. 모두 다섯 명이다. 다섯 명의 여행이다. 안타깝지만, 마닐라까지 가서 가평 MT 간 것처럼 술만 마셨다. 이럴 거면 그냥 부산을 갈걸? 우리끼리 그런 소리 많이 했다.

  혹시 내 여행기를 쭉 읽어오신 분이라면 마치 내가 아는 사람처럼 반가울 D와 함께 나는 먼저 마닐라로 떠났다. Y와 K는 다음 날 오전 비행기로 올 예정이었다. 오후 반차를 쓰고 공항으로 달려가는 기분이 참 좋았다. 그래서 도착하자마자 공항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거의 다 흔들려서 올릴 수가 없다.





  우리는 제스트 항공, 이젠 에어 아시아가 된 그 비행기를 타고 갔다. 약간 긴 사연을 줄여서 말하자면, 미리 웹 체크인을 안 하는 바람에 출발장에 앉아 한 시간 넘게 카운터가 열리길 기다렸다. 무려 다섯 시간 전에 갔는데 보안 검색대도 통과 못 하고 말이다!

  아이폰 배터리도 거의 사망 직전이었다. 그래서 여기에서 충전을 시켰는데 속도가 엄청나게 느렸다. 안 되는 것보단 낫지만 말이다.





  어쨌든 체크인만 하자 그다음부터는 일사천리였다. 거의 2박 3일에 가까운 일정이라 부치는 짐도 없어서 더 홀가분했다. 앞으로도 기내용 캐리어나 배낭을 애용해야겠다. 도착해서도 무기력하게 짐 나오길 기다리지 않고 바로 세관을 빠져나갈 수 있어서 시간 절약이 많이 되더라.

  어중간한 저녁 시간대엔 아시아 쪽으로 날아가는 비행기가 많았다. 특히 무려 다섯 개 항공사에서 코드 쉐어를 하는 싱가포르행 비행기가 눈에 띈다. 이보다 더 늦은 시각이 되면 남태평양이나 중동, 유럽행 비행기가 날아오르겠지.





  D가 여권을 보고 영국 사람이라고 일러준 이 친구는, 뭐가 급한지 일단 담배부터 꺼내 물고 있었다. 나도 금연 중이긴 하지만, 저 기분 안다. 그리고 인천 공항은 나름 흡연실이 잘 갖춰져 있어서 좋은 공항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터미널에 흡연 구역 없는 공항을 만나면 짜증이 극에 달하곤 했다. 이젠 흡연실에 연연하는 일 없기를.





  탑승동으로 가는 모노레일을 타러 내려가는 길. 아, 이 순간도 좋다. 고국에서 멀어져 내가 가야 할 곳으로 한 걸음 더 가까워지는 기분이다. 국적기를 이용할 여력은 안 되므로 거의 탑승동에서 비행기를 타는데 모노레일을 타고 터널을 통과해야 진짜 게이트 앞에 놓이는 것 같다. 오히려 여객 터미널은 순수한 쇼핑센터 같다는 느낌이다. 거기에도 커다란 비행기가 코를 박고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세 번째 홍콩 여행기에서도 여기에 앉아 사진을 찍어 올렸다. 변하지 않았더라. 거의 일년 전 여행을 추억하며 빠른 시일 내에 한 번 더 여기에 앉기를 바란다.





  그건 그렇고 D가 아주 비싼 담배를 사서 호기심이 올랐다. 원래 보헴 시가 마스터가 비싸긴 한데, 거기에 케이스가 나무로 만들어져 단순 계산으로는 일반 담배의 네 배 가격이다. 케이스가 다르다고 맛이 다르진 않지만, 꽤 고급스러웠다. 나무도, 코르크도, 자석으로 여닫히는 빗장의 느낌도.





  식당에서 엄청난 양의 밥과 함께 맥주까지 마신 나와 D는 벌써 피곤해진 상태였다. 창문 밖으로는 해가 퍼렇게 떨어지고 있었다. 탑승동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승무원들은 여전히 아직 비행기에 타지 않은 승객을 부르고 다녔다. 매장 직원들은 퇴근 준비에 한창이었다. 사진을 찍기에 참 좋은 상황이었는데 셔터를 그렇게 많이 누르지는 않았다. 출발 시각이 촉박한 것도 아닌데 왜 나는 망설이는 걸까. 문자를 보내야 해서? 끌고 다니는 카트가 불편해서? 아니면 찍어도 인상적이지 않으리라는 걸 이미 알고 있어서?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항상 나중에 후회할 뿐이다.





  기장인지 승무원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폼 클렌징이나 스킨이 떨어진 모양이다. 저 완벽해 보이는 인물들도 지상에서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점에선 우리와 다르지 않다.





  심지어 에이프런과 활주로조차 한가한 평일 저녁의 공항. 이상하게 찍고 또 찍어도 공항은 낯설다. 머물지 못하고 자꾸 떠나야 하는 곳이라 그런가 보다. 마닐라로 가기 전, 정말 손에 꼽을 만큼 공항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지만, 뭔가 부족하고 또 아쉽다. 왜 작가와 사진가가 일주일씩이나 이곳에 머물렀는지 알겠다. 그러지 않으면 필연적으로 결핍을 느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장소의 목적이 그냥 스쳐 지나가는 데 있으니. 공항이 삶의 터전이 될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았으며, 나는 그들이 퍽 부럽다.




Canon EOS-M + 22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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