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차툭착 시장이 주말에만 열리다기에 첫 행선지로 잡았다. 고가 철도로 달려 방콕을 순식간에 미래 도시로 탈바꿈시키곤 하는 BTS를 타고 마지막 역까지 가자 어마어마한 인파를 만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하나씩 옷이나 가방이든 비닐 봉지를 들고 있고, 거진 치진 표정이었다. 많이 덥진 않았지만, 햇살과 그 햇살을 반사하는 얼굴 때문에 나도 익어가는 기분이었다. 골치가 아플 정도로 많은 물감을 짜놓은 것 같은 녹음과 남대문 시장이나 홍콩의 스탠리 마켓을 연상케 하는 재래 시장의 부조화가 기가 막혔다. 인도를 따라 노상 식당이 진을 쳤길래 아무 자리에나 앉아 점심을 먹었다. 고수가 들어간 것만 빼면 갈릭 포크 라이스는 아주 먹을 만했다. 고수를 갈아넣지는 않은 덕분에 심혈을 기울여 한 잎 한 잎 씩 걸러낸 다음 만족스럽게 식사를 했다. 음식이 안 맞을까 걱정을 했었는데 고수만 없다면 큰 문제없이 순항할 것 같다.
혼잡한 시장통에서 D는 태국 전통 바지를 샀고, 나는 한국에서도 찾기 힘든 예쁜 디자인의 티셔츠 두 장을 샀다. 우리나라 돈으로 치면 장 당 5천 원. 사실 이곳 물가를 생각하면 그리 저렴한 가격은 아니지만 - 시장 안에서 제일 비싼 티셔츠일지도 몰랐다. - 아주 마음에 들어 흥정도 하지 않고 비닐 봉지에 챙겨왔다. 동전을 넣고 다닐 에스닉한 지갑도 10밧에 구입. 그리고 싸게 옷을 사는 데 재미가 들린 나는 이후로도 계속 좌판에서 티셔츠를 유심히 보고 다니는 버릇이 생겼다.
왕궁으로 가기 위해 주차한 택시와 흥정을 했더니 무려 500밧을 달란다. 아무리 멀다고 강조해도 공항에서 도심으로 들어오는 것과 똑같다니!? 툭툭이 역시 400밧을 부르길래 D와 함께 시장을 빠져나와 길을 건너 미터 택시를 잡았다. 결과적으로 미터 요금은 처음 불렀던 값의 1/3에 지나지 않았다. 반드시 미터기를 켜는 택시를 타야겠다고 다짐할 수밖에 없었다.
왕궁으로 가는 길에 날이 흐려지더니 엄청난 폭우가 내렸다. 도착은 했는데 카메라가 걱정돼 내릴 수가 없어서 그냥 택시 아저씨에게 부탁하여 왕궁과 에메랄드 사원 주변을 한 바퀴 돌며 차창 관광을 했다. 무서울 정도로 내리는 비. 와이퍼를 작동하지 않고 물방울 가득한 유리창 너머로 도로를 바라보며 운전하는 아저씨. 조금 겁이 났던 건 차치하고서라도 계속 행선지를 바꿔도 친절하게 안내해 주는 그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결국 우리는 카오산 로드로 직행하기로 했다.
카오산 로드에 내려 처마 밑에서 잠시 기다리자 이내 해가 뜨며 비가 그쳤다. 덩치 큰 서양인들 무리가 어슬렁거리는 통에 압도당하긴 했지만, 비 갠 후의 햇살에 반해 지체없이 걸었다. 세상 모든 배낭 여행자의 고향이 목전이었다.

'여행 > 2015 태국,라오스,베트남'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갈 곳이 없어서  (0) 2015.04.01
:: 카오산 로드에서  (10) 2015.03.31
:: 방콕 스쿰빗의 정오  (0) 2015.03.30
:: 배웅 고마워  (2) 2015.03.29
:: 공항으로 가는 길  (0) 2015.03.28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