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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름 즈음에 바를 나와 우리는 카오산 로드 주변을 걸어 다녔다. 우리에게도 목적은 있었다. 해가 떠 있을 때는, 그러니까 최대한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것을 보며 꼭 먹어야 할 것을 먹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던 것이다. 맥주를 마셔서 그리 배가 고프진 않았지만, 천천히 저녁거리를 생각할 때였다. 좁은 골목길 사이로 온갖 식당과 펍과 카페와 숙소가 즐비했고, 왜 사람들이 카오산 로드에서 몇 주, 몇 달씩 체류하는지 알 것 같았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곳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거리 전체가 보물 창고나 다름없었다. 골목 골목은 여러 구획으로 나뉜 창고의 저마다 다른 열쇠였다. D의 능력을 다른 글에서는 여러 번 밝혔긴 했으나 여기서 다시 한 번 언급하자면, 그는 현재 위치에서 우리에게 꼭 맞는 장소를 찾는 데 귀신 같은 촉을 가지고 있다. 들어가 보지 않아도 그곳의 음식 맛이 어떤 수준인지 알며 얼핏 입구만 보고서도 우리가 흥분해 마지않을 곳을 찾아내는 보이지 않는 안테나가 그의 등 뒤에서 길게 뻗어 있는 게 분명하다. 그런데 그런 D조차도 유흥의 신, 이를테면 바쿠스가 준 재능을 이곳에선 발휘할 수 없었다. 도대체가 우리 마음에 들지 않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의 모험심을 자극하지 않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무엇을 선택함에 있어 자유롭길 바라지만, 아주 많은 선택지 앞에선 혼란에 빠지기 일쑤다. 가이드 북이 아무리 그 선택의 폭을 근시처럼 좁혀준다고 해도 우리는 그들을 믿음과 동시에 불신해야 마땅하다.
우린 결국 아무 곳에도 들어가지 못한 채 차오프라야 강을 보러 갔다가 공원에서 에어로빅을 하고 있는 시민들을 만나고 다시 카오산 로드로 돌아왔다. 홍콩 거리보다 좀 더 얌전한 버전의 네온사인이 밤을 밝히는 거리에서 여행자들은 맥주를 마시고, 벌레 튀김을 먹고,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오늘 하루 중 가장 많은 한국인을 스쳐 지나가기도 했다. D가 팟타이가 맛있다는 집을 추천했으나 그곳을 찾을 순 없었다. 대신 우리는 맥도널드를 먹었다. 빅맥의 맛은 역시 변함이 없다. 스타벅스가 그러했듯 맥도널드도 한 번의 체험으로 끝. 꼭 먹어야 할 것을 먹으려 했는데 그게 결국 햄버거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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