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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산 로드의 느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밀림 속의 거리, 밀림에 온 도시인들의 축제, 그리고 선명, 선명, 또 선명한 원색의 향연. 그 이상의 표현은 나에게 오랫동안 숙제가 될 것 같고, 그래도 실마리가 풀리지 않으면 다시 오면 그만일 것이다.
우리가 걷는 곳은 정확히 말하자면 카오산 로드의 옆길, 그보다 훨씬 모든 것이 밀집한 거리였다. 수십 년 넘게 자란 듯한 나무가 가지로 건물을 쓰다듬고, 덩굴은 건물에 달라 붙어 공생하며, 음악은 스피커로 스며들고 사람들은 고향에선 노출하기 힘든 부위까지 드러내며 열기를 흡수한다. 펍이나 카페 의자에 앉아 길을 바라보며 앉은 사람들은 지나가는 다른 여행자를 구경하거나 책을 읽거나 멍한 시선으로 사색(또는 무념)에 잠겨있다. 비가 그치고 요란한 등장음과 함께 거리에 꽂히는 노란 햇살이 색을 더 뚜렷하게 만든다. 너무 많은 피사체 때문에 나는 오히려 카메라를 들지 못했다. 무엇을 찍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단 한 장만 찍어도 그 사진이 전체의 대표가 됐다. 그저 운에 맡겨야 할 일이었다. 몇 십 장을 모아도 전체를 완성할 순 없을 테니 말이다. 이럴 땐 감각이, 마음이 촬영을 대신하지만, 이 장면을 온전히 그려낼 수 있는 물감이 내겐 없었다...
우리는 좋다는 말만 반복하며 걷다가 이내 그 마저도 그만두었다. 길을 돌아와 몰리 바란 곳에 앉아 맥주를 마셨다. 그리고 좁은 골목을, 길 위의 사람들을 구경했다. 측면에서 서로 교차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았는데, 보폭도 다르고 목적도 다른 그들은 언제고 다시, 끊임없이 다른 얼굴을 한 채 여기서 마주칠 것만 같았다.
해가 저물고 조명은 밝아진다. 음악 소리는 대화를 나눌 수 없을 만큼 커졌다. 나와 D는 원래 계획대로 미국에 갔다면 어땠을까를 논하다가 오히려 이곳에 오길 잘했다고 결론 내렸다. 이 여유롭고 충만하고 후텁지근하다 식기를 반복하는 기분을 온전히 간직하려면 더 많은 술을 마시거나 더 많은 길을 걷거나 더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할 것 같았다.
나는 글을 쓰고 D는 세상 구경을 하는 말없는 시간이 상상했던 그대로 자연스러웠다. D는 자신이 사진도 안 찍고 글도 안 쓰고 돈 관리도 안 해 미안하다고 하지만, 그는 나에게 시간을 선사해 줬다. 그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누군가와 여행을 떠나본 사람이라면 잘 알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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