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닐라 스카이의 짧은 유럽 여행기 (7) - 베네치아, 하나] 보기 여행을 돌이키다보면 작은 순간도 크게 느껴지곤 한다. 특히 좋은 기억은 남고 나쁜 기억은 잊히는 경우가 많다. 여행 중 느꼈던 피로와 실망, 날씨를 향한 불만들은 제자리를 지키기가 쉽지 않지만, 사소한 감탄이나 미묘한 감동은 뻥튀기 기계에 넣은 곡물처럼 부풀려지는 것이다. 이런 과정은 너무나 매혹적이라서 지금도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항공기 좌석표 결제 버튼 앞에서 서성이게 만든다. 똑같은 공식을 적용하여 베네치아에서의 둘째 날을 열자면, 그날의 나는 베네치아에서 눈을 떴지만 전날의 베네치아에 있지 않았다. 파리의 호텔에선 제공받지 못했던 스크램블 에그와 베이컨의 등장은 하루의 시작을 경쾌하게 열어줬다. 밀가루 위주의 탄수화물 식단에 단..
[바닐라 스카이의 짧은 유럽 여행기 (6) - 파리, 넷] 보기 기체는 작았다. 아담한 기내 분위기와 종종 작은 동체가 요동칠 때 느낄 수 있는 스릴은 마음에 들었으나 이런저런 불편한 점도 많았다. 우리는 맨 뒷자리(35E, 35F)였는데 하나 뿐인 화장실을 가기 위해 몰려 든 사람들이 28번 좌석까지 줄을 서고 있었다. 만약 이륙 전에 화장실을 다녀오지 않았다면 저 앞까지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야 하는, 새삼스러운 곤경에 처했을 것이다. 콜라를 먹으려면 1유로인가 2유로를 더 내야하는 룰이야 사소한 불편에 속했다. 무엇보다 나빴던 건 기내식이었다. 비행기가 제 고도에 오르자마자 배가 고파진 나는, 기대도 안한 푸드 카트가 등장했을 때 내심 감사해 했었다. 게다가 뚜껑을 열자 나타난 짙은 녹색의 음식은 이..
러스킨(존 러스킨, 영국의 미술 평론가·사상가)은 아름다움과 그 소유에 대한 관심을 통해 다섯 가지 중심적 결론에 이르렀다. 첫째, 아름다움은 심리적인 동시에 시각적으로 정신에 영향을 주는 수많은 복잡한 요인들의 결과물이다. 둘째, 사람에게는 아름다움에 반응하고 그것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 타고난 경향이 있다. 셋째, 이런 소유에 대한 욕망에는 저급한 표현들이 많다[앞서 보았듯이, 기념품이나 양탄자를 산다거나, 자기 이름을 기둥에 새긴다거나, 사진을 찍는 등의 행위를 포함하여]. 넷째, 아름다움을 제대로 소유하는 방법은 하나뿐이며, 그것은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스스로 아름다움의 원인이 되는 요인들[심리적이고 시각적인]을 의식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의식적인 이해를 추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자신이..
낭만적 운명론을 받아들이게 되면, 사랑에 대한 요구가 선행하고 그 다음에 어떤 특정한 사람에 대한 사랑이 나타난다는 주장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 된다. 그러나 실제로 짝의 선택은 우리가 우연히 만나게 된 사람의 테두리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다른 테두리, 다른 비행기, 다른 역사적 시기나 사건이 주어진다면, 내가 사랑하게 된 사람은 클로이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실제로 사랑하게 된 사람이 클로이였기 때문에 그런 생각은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내 실수는 사랑을 하게 될 운명을 어떤 주어진 사람을 사랑할 운명과 혼동한 것이다. 그것은 사랑이 필연이 아니라 클로이가 필연이라고 생각하는 오류였다. 나는 그녀 말이 거짓말임을 알았다. 그녀는 낭만적인 것을 비웃는 데에, 감상적인 것을 배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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