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닐라 스카이의 짧은 유럽 여행기 (11) - 빈(비엔나) 둘, 벨베데레 궁전] 보기 여전히 비구름이 남아있는 하늘 때문에 황혼은 흐리터분했다. 사람들의 추천대로 우리는 링을 순환하는 1번 트램에 몸을 싣고 있었다. 덜컹거리는 노면전차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실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빈의 시내를 감상할 수 있었다. 해가 저물수록 하늘은 붉어졌고, 거리는 가로등 불빛에 젖어 호박색으로 물들었다. 다양한 빛깔로 깜빡이는 네온사인도 노란 색감에 잘 조화되는 인상이었다. 빈의 건물들은 그런 조명 사이에 우뚝 서서 세련미를 뽐냈지만, 동시에 커다란 모형이나 영화의 세트장 같은 느낌도 풍겼다. 트램에서 본 노부부. 부인의 표정에서 동반자에 대한 한없는 믿음을 느낄 수 있었다. 반 바퀴를 돌고 Schweden pl..
[바닐라 스카이의 짧은 유럽 여행기 (10) - 빈(비엔나), 하나] 보기 빈에서의 첫날, 의외의 일들로 반나절을 보낸 우리는 즉석에서 나머지 반나절을 위한 계획을 세워보았다. 벨베데레 궁전 방문, 호텔에서 휴식, 저녁을 먹고 시끄러운 술집에서 맥주 한 잔. 굵직굵직하게 자른 고깃덩어리처럼 넉넉한 일정표였다. 몇 시부터 몇 시까지 한다는 세목조차 없었다. 어딘가에 적어두거나 외워둘 필요도 없이 간단하고, 본능대로 움직이면 그만이니 실행에 옮기는 것도 쉬웠다. 마음에 쏙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음 행선지인 벨베데레 궁전은 내가 가자고 고집한 곳이었다. 첫째 이유는 물론 클림트의 그림을 보기 위해서였다. 파리에서 좋아하는 화가들의 작품을 놓쳤던 기억이 떠오르며, 이번만큼은 그런 기회를 잃고 싶지 않았다...
[바닐라 스카이의 짧은 유럽 여행기 (9) - 부라노 섬, 그리고 베네치아 셋] 보기 낭만적인 파리나 외로운 베네치아처럼 어떤 장소에 어울리는 꼭지를 제 나름대로 붙여 보는 건 여행자의 즐거움이다. 그런데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선 그 권리를 행사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자고 했을 때, 딱히 어울리는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너무 큰 감동을 받는 바람에 말문이 막히는 경우와는 달랐다.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중간 어디쯤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상태에 가까웠다. 발음조차 애매한 분위기를 띠는 '모호하다'란 형용사나, 어쩐지 책임을 저버리는 느낌이 드는 '알 수 없는'이란 수식어가 어울리는 상태 말이다. 물론 빈을 수식하기에 좋다고 널리 알려진 단어들은 많다. 일반적으로 '음악'이 애용..
[바닐라 스카이의 짧은 유럽 여행기 (8) - 베네치아, 둘 그리고 무라노 섬] 보기 Faro 선착장에서 LN선을 타고 부라노 섬으로 향했다. 부표와 아스라이 보이는 섬 마을의 기척을 느끼며 배 안에서 한숨을 돌렸다. 모터보트의 항해는 30분 남짓 이어졌다. 그 동안 앉아서 쉴 수 있다는 사실, 그래서 몸이 지쳐 감각과 마음을 좀먹는 일을 막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색채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단 한 시간이라도 머물고 싶을 만한 곳, 알고 있는 색 이름이 몇 가지 안 되는 나 같은 사람이라도 똑같이 황홀해 질 수 있는 곳으로 가는 중이니까. 부라노로 가는 길. 몇 년 전, 처음으로 부라노 섬을 찍은 사진을 보고 '세상에 이런 곳이 다 있구나'며 감탄을 한 적이 있다. 그곳의 풍경은 너무나 매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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