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딜 가든 표지판을 눈여겨 봐. 그 나라 말로 뭔가를 설명하거나 경고하려는 그들은 호기심에 가득 찬 표정을 하고 있어. 아니면 참견하기 좋아하는 친구나 교사의 얼굴을 하고 있거나. 표지판을 보면 다른 나라, 다른 문화로 걸어 들어왔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돼. 드 보통이 말했지, "어떤 자리에 고향이라면 으레 있을 법한 것을 대신해서 자신의 성향에 더 들어맞는 낯선 대상이 있을 때 이국적인 정서를 느낀다"고. 나한텐 그것이 표지판, 푯말, 대충 그려 놓은 낙서 따위인 셈이야. 이등변 삼각형, 길쭉한 마름모, 옆으로 퍼진 직사각형과 완벽한 곡선의 원. 꼴도 색도 제각각인 바탕 위에 다른 언어가 쓰여있는 게 좋아. 아무리 많은 외국인 사이에 있어도 푯말을 한 번 올려다보는 것만큼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아. 믿을지..
초승달 같은 해변에 앞다투어 모인 특급 호텔들이 가장 좋은 경치를 독점한다. 해변으로 나가려면 호텔과 호텔 사이에 난 골목길을 걸어야 했다. 에어컨디셔너의 실외기가 윙윙거리고 반쯤 열린 창문에선 저녁 준비하는 냄새가 풍긴다.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는 주방장과 벨보이들은 로비나 식당보다 이곳에서 더 마음 편해 보였다. 골목 끝은 눈부시게 빛났다. 백사장을 밟는 순간, 빛과 소리의 파도가 등 뒤 골목 안으로 쓸려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석양, 바다, 모래, 몸매를 솔직히 드러낸 단벌 팬츠와 비키니. 지도를 보며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실제로 와이키키 해변에 모여있었다. 강렬한 빛의 이미지는 시간과 생각의 흐름을 걸쭉한 소스처럼 느려지게 만들었다. 그러다 지평선 부근에 드리워진 구름의 그림자가 천천히..
2. 색色을 위한 찬가 아는 단어가 많지 않거나 미묘한 차이를 구분할 능력이 부족하다면, 또는 애초에 관심조차 없다면 표현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는 구름을 흰 것과 회색인 것, 또는 큰 것과 작은 것으로밖에 구분하지 못할 수 있다. 심지어 '있다'와 '없다'로 분간하는 게 최선인 사람마저 있을지 모른다. 183개의 회원국과 6개 지역이 참가하는 세계기상기구(WMO)에서 구름의 종류를 크게 열 가지로 분류한 노력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셈이다. 물론 이 범세계적인 기구에서 글과 그림으로 친절하게 설명해 놓은 구름의 분류를 공부한다 하더라도, 지금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이 어디에 속하는지 맞출 확률은 굉장히 낮다. 어지간히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한 그 놀랍도록 천진난만한 수증기 덩어리들의 ..
1. 기대 휑한 들판과 활주로 같은 도로엔 겨울 색이 완연했다. 추위로 기록을 경신하는데 재미가 붙은 계절은 그나마 열차 안에선 유예를 두고 있었다. 그러다 정거장에 멈춰 한쪽 문이 일제히 열릴 때면 잊지 말라는 듯 가혹한 바람이 실내를 두드렸다. 그 심보엔 문신이 새겨진 근육을 뽐내는 사나이처럼 남세스러운 면이 있었다. 이번 여행지가 여기와는 180도 다른 계절이 지배하는 장소라는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너무 추운 나머지 크리스마스의 독특한 분위기조차 얼어붙지 않았던가. 덕분에 하루밖에 지나지 않은 성탄절은 벌써 희미한 축제일이 되어가고 있었다. 오히려 흰 눈을 덮고 길게 길게 눕는 들을 보고 있자 오늘에서야 경건한 축일을 맞이하는 것 같았다. 사실 나는 여행 자체보단 다른 데 기대를 품고 있었다...
- Total
- Today
- Yesterday
- 베짱이세실의 도서관
- To see more of the world
- 데일리 로지나 ♬ Daily Rosinha
- :: Back to the Mac
- Be a reader to be a leader!
- 좀좀이의 여행
- Jimiq :: Photography : Exhibit…
- 반짝반짝 빛나는 나레스★★
- 일상이 말을 걸다...
- S E A N J K
- Mimeo
- Imaginary part
-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 전자책 이야기
- Sophisticated choice
- 토닥씨의 런던일기
- 언제나 방콕라이프처럼
- PaRfum DéliCat
- The Atelier of Biaan
- JUNGSEUNGMIN
- 꿈꾸는 아이
- hohoho~
- Write Bossanova,
- Connecting my passion and miss…
- Eun,LEE
- 밀란 쿤데라 아카이브
- 순간을 믿어요
- Margareta
- Canon a-1
- 일본
- 이태리
- 홋카이도
- 유럽
- 음악
- 한주의기록
- 라이카
- 22mm
- 주기
- 사운드트랙
- 필름카메라
- 50mm
- 책
- 트래블노트
- 24mm
- 홍콩
- 사진
- 이탈리아
- 미니룩스
- EOS M
- a-1
- 여행
- 하와이
- 파리
- 수필
- Portra 160
- 북해도
- 트레블노트
- 캐논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6 |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