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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옷에는 문명의 역사가 함축되어 있다.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수치심을 피하기 위해, 신분을 나타내기 위해, 부와 권력을 뽐내기 위해 사람은 옷을 입었다. 의복이 필수품에서 사치품으로 변해가는 과정은 생존의 문제를 걱정하던 인간이 자아실현과 명성, 지위에 대해 고민하게 된 역사의 흐름을 반영한다. 극한 상황에 도전해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죽지 않기 위해 옷을 입는 사람은 없다. 죽음만큼 견디기 어려운 사회적 사망 선고를 피하기 위해 입을 뿐이다.

 

  다양한 디자인으로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선택의 폭이 넓어졌지만, 여전히 옷은 우리를 한정 짓는다. 이것은 얼마나 제 몸에 잘 어울리는 옷을 입었는지, 얼마나 개성 있고 세련된 옷을 입었는지와는 별개의 문제다. 우리에겐 어제와 오늘과 내일의 나를 일관성 있게 유지해야 하는 - 물론 자기계발이란 명목하에 조금씩 더 나아지는 방향으로 - 사회적 의무가 있다. 옷은 표현의 수단임과 동시에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복종의 증거이기도 하다. 속옷만 입고 길거리를 나돌아다니자는 황당한 주문을 하는 건 아니다. 매일 입는 옷이 세상 속으로 뛰어들기 위해 걸치는 방탄복과 다름없는 삶이 정말로 견딜 만 하느냐는 물음이다. 비싸든 저렴하든, 유명 디자이너의 한정판이든 시장표 양산품이든, 우리는 사회가 요구하는 지속 가능한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옷을 입는다.

 

  남미, 인도, 중동, 그도 아니면 태평양의 외딴 섬으로, 그 어디가 됐든 나를 뒤흔들 수 있는 장소로 떠나고 싶다. 거기서 난 사회적 자아를 벗어던지고 그 질긴 껍질과 단단한 껍데기 안에 숨어있던 덜 익은 영혼을 꺼낼 수 있을지 모른다. 착한 척하지 않고 친절한 척하지 않고 귀담아듣는 척하지 않아도 된다. 대신 착하고 친절하고 귀가 열린 사람이 된다. 집에서 나올 때 입은 옷 한 벌로 수십 일을 버틴다 해도 그때의 난 완전히 새로운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아무도 없는 해변을 벌거숭이로 뛰어다니는 것만큼 자유로워질 것이다. 여행이 모든 구속에서 벗어나게 해주리라 믿지는 않는다. 다만 그럴 가능성이 멀리 떠난다는 행위 속에나마 잉태되어 있기를, 그렇게 세상에 단 하나라도 존재하기를 희망한다.



canon A-1 + 24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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