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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당신에게 많은 돈이 있다면 이런 곳에서 사는 건 어떨까?

 오하우 섬 일주는 호놀룰루에서부터 시작해 반시계방향으로 섬을 도는 투어다. 가이드는 15인승 밴의 가속 페달을 밟으며 처음이니까 흥미로운 곳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하와이 카이. 섬 남동쪽에 위치한 부촌으로 하와이의 비버리 힐즈라고 불리는 곳이다. 이곳이 그에게 흥미로운 곳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밝혀지기 전, 호놀룰루 시내를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깔끔하게 닦인 도로로 접어들었다. 금과 옥과 대리석으로 장식한 휘황찬란한 궁궐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저택이라 불러줘야 예의겠다 싶을 정도로 커다란 단독 주택들이 이어졌다. 하와이에서도 알아주는 부자들이 모인 하와이 카이 커뮤니티에 참여하려면 못해도 270만 달러 이상의 집을 사야 한다고 한다. 그것도 내륙에 있는 집들이 그렇고 해변에 접한 반대편 거리는 한 채가 최소 300만 달러부터 시작한단다. 가이드는 그러면서 몇몇 눈여겨 둔 집이 있다며 그곳의 상세한 가격을 읊어주기도 했다. 한 남자가 역시 여행 안내원을 하려면 남달라야 한다고, 어떻게 집값까지 꿰뚫고 있느냐고 감탄을 하자 가이드는 웃음을 터트렸다. 한 때는 주업이었지만 경기 불황 때문에 부업으로 전락한 본래 직업이 부동산 중개업이었다면서. 하와이에서 사는 동안 그에게 이곳은 황금 어장이자 이상향이었던 셈이다.


 여유가 좀 있어 보이는 중년 부부가 하와이 부동산 시세에 대해 질의 시간을 가지는 동안 나는 양옆으로 느리게 흘러가는 - 가이드는 일부러 차를 천천히 몰았다 - 저택들을 감상했다. 대문이 세 개나 되는 집, 담장을 허물고 그보다 더 침입하기 어려운 두터운 화단으로 집을 두른 집, 르네상스 시대의 조각상과 흡사하긴 한데 마치 동네 미술학원에서 가져온 듯한 작품들로 정원을 꾸민 집. 심지어 주차장 입구에 커다란 키티 그림을 그려 놓은 집도 있었는데 어린 딸의 취향을 존중하는 부모의 세심한(?) 배려가 느껴졌다. 그때, 누군가 그랬다. 몇 년 후엔 입구에 명품 브랜드 로고가 그려질지도 모르겠다고.
 솔직히 (아무래도 그들을 향한 시기심 때문인 것 같긴 하지만) 가진 돈에 버금가는 인상적인 취향을 보여주는 주인은 없었다. 그나마 바닷가에 있는 주택들이 집터와 면해 있는 해변을 사유지로 쓸 수 있다는 사실 덕분에 자연 발생적인 매력을 가질 뿐이었다.

 그다음으로 보여준 곳은 게이트 하우스였다. 산 중턱에 집들이 모여있는데 그 모습이 한반도의 지도와 비슷하다 해서 '한국 지도 마을'로 알려진 관광지도 게이트 하우스의 일종이다. 여기를 게이트 하우스라 부르는 이유는 단순하면서도 놀랍다. 그 모든 집이 단 하나의 입구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마치 고층 아파트 단지에 들어가기 위해 경비와 CCTV의 엄중한 시선이 집중되는 커다란 대문을 지나야 하는 것처럼, 언덕에 버섯처럼 자라난 그 많은 집이 외부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는 입구 한 곳의 보호를 받고 있는 것이다. 체계만 보아도 딱 부촌이라는 인상이 드는데 외부인으로 여길 들어가려면 신분증을 제출하고 전화번호를 남긴 후 집주인의 확인까지 받아야 한단다. 나갈 때도 신고를 해야 하며 이를 무시할 할 땐 바로 지금 어디 있느냐는 전화를 받게 된다고 한다. 택배 기사나 여기에 친구를 둔 사람으로선 적잖이 번거롭고 짜증스러운 일이겠지만 이런 체계 속에 사는 사람은 즐겁기만 할 것 같았다. 범죄에 대한 걱정 없이 특별한 대접을 받는 듯한 만족감을 느끼고, 동시에 이웃과도 강렬한 연대감을 공유할 테니 말이다. 마치 원시 시대의 촌락으로 돌아간 기분이 들지 않을까 하는 점에서 나에겐 하와이 카이보단 게이트 하우스가 더 이상적인 주거지였다.


 만약 하와이에서 살 계획이 있다면, 그리고 통장 잔액을 세는 게 몹시 어려운 사람이라면, 그렇다, 이런 세상에 사는 것도 좋을 것이다. 관광객이 가이드에게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있다. “하와이 살기 좋아요?” 그러면 가이드는 입술을 떼다 말고, 자신의 이십 년 분량의 페이지를 순식간에 뒤적이다가, 어떻게 다 표현할 수 없다는 미묘한 표정과 말투로 대답했다. “좋은데, 심심해요.” 순전히 외부인의 시각에 맞춰 준 답변이기 때문에 질문자는 그럴 것 같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한다. 어디서 살든 어떻게 삶을 좋고 싫음, 재미와 지루함으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저 그가 다른 이야기를 하며 흘린 한 마디, 하와이 카이든 게이트 하우스든 언젠가 이곳에 자신의 집을 마련해서 편히 살고 싶다는 그 한 마디에 더 많은 개인의 역사가 묻어있을 것 같았다. 15인승 밴은 이제 섬의 동쪽을 향해 올라가는 중이었다. 이 차에 타고 있는 모든 사람이 등 뒤로 멀어지는흥미로운 곳에 살 능력이 없겠지만 최소한 낙원의 일부에 터전을 잡고 싶다는 꿈은 마음껏 꿀 수 있었다.



Canon A-1 + 24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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