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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2번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오하우 섬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다는 마카푸우 포인트가 나온다. 오하우의 모든 곳을 가보진 못했으니 그 말이 사실인진 모르겠지만, 확 트인 전망을 보면 굳이 반대할 이유를 찾을 필요는 없겠다 싶다. 오하우 섬에 대해 알고 있는 바가 나와 대동소이할 다른 사람들도 마카푸우 포인트에 거는 기대가 컸다. 최소한 렌즈를 꽉 채울 멋진 풍경 하나 정도는 건질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비가 왔다. 해변에서 멀어질수록 연청색에서 남청색으로 바뀌는 바다는 먹구름이 끼기 전 딱 몇 분 동안만 제 빛깔을 보여주었다. 그 명암과 채도와 색조는 사람의 힘으론 재현할 수 없는 영역에 있었는데, 구름이 해를 가리면 조용히 사라질 정도로 겸손하기까지 했다.

  우리는 갑자기 쏟아지는 비에 우왕좌왕했다. 그 사이에 풍경의 최대치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유독 비를 맞는 걸 싫어하는 나는 자신과 타협하기로 한다. 하와이에서 비가 오는 건 숙명이야. 인상적인 광경이지만 카메라를 적시면서까지 무리해서 찍을 필요는 없어. 마땅히 비를 피할 곳이 없음에도 걸음을 돌려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누구나 소나기를 달가워하지 않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한 무리의 아이들은 생일 아침처럼 신 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비를 맞는 상황 자체를 즐기는 녀석들의 천진난만함엔 주위 어른들의 뾰로통한 태도까지 반전시키는 매력이 있었다. 혹여 자식이 다칠까봐 마지못해 뒤를 따라다니던 부모들이 시나브로 젖어드는 옷에 개의치 않게 되고, 인상을 찌푸리던 신혼부부도 에라 모르겠다 여기 또 언제 오겠어 하는 심정으로 비를 맞으며 서로를 찍기 시작했다. 어느덧 비 때문에 유난을 떠는 사람은 나뿐이라는 걸 알게 됐다.

  한 아이의 아버지가 혼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다. 아이폰을 건네 드리고 엉거주춤한 자세를 취했다. 사진첩 속의 난 쑥스러워하면서도 어쩐지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이었다. 혼자 하는 여행의 어려움은 기분이나 감정을 전환하는 데 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다시 차에 올라 얼마 달리지 않았는데 구름이 걷히고 여름의 태양이 돌아왔다. 섬 일주의 오전 마지막 일정은 중국인 모자섬이었다. 배를 타고 섬까지 접근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우린 그냥 멀리서 바라보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중국인 모자섬의 원래 이름은 모콜리이 섬이다. 중국인을 특정했다기보단 농장에서 일하던 동양인이 쓰던 모자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해서 별명이 그렇게 붙었다고 한다. 단지 미국인 또는 하와이 원주민들에겐 동양을 대표하는 나라가 중국이었을 뿐이란 이야기다.

  사실 섬보단 섬을 보기 위해 들른 쿠알로아 공원이 더 인상적이었다. 축구공이라도 차야 할 것 같은 녹지가 바다와 면해 있는 곳으로, 하와이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밝고 선명한 녹색이 여기에 있었다. 산 중턱의 들판에 선 느낌. 비가 그치고 더 맑아진 하늘 파랑과 햇살 아래 싱싱한 잔디 연두가 이루는 원색의 대비. 일부러 줄지어 심어 놓은 게 분명한 야자수들이 수평선에 그리는 익살스러운 패턴. 그늘이 거의 없어 땡볕을 피할 길이 없었지만, 얼굴이 발갛게 익을 때까지 산책해도 좋다 할 만큼 마음에 드는 공원이었다.

  잔디가 바다 가까이에서 자랄 수 있다는 것은 조차가 적고 파도가 잔잔하단 이야기다. 여기엔 육지와 바다의 화해가 있다. 볼거리라고는 초콜릿을 얹은 과자처럼 생긴 섬 하나뿐인데 지루할 틈이 없었다. 자연은 강렬함과 편안함을 한 장소에 공존하게 하는 솜씨 좋은 연출가이자 설계사였다. 



 

  오하우 섬의 남동부 일주는 이렇게 어느 하나 개성이 겹치지 않는 장소를 잠깐씩 돌아보는 걸로 끝났다. 솔직히 오하우에서 보낸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가끔 사진을 꺼내보는 걸로 기억에 잔류시키기 위한 최소한의 세 지불할 수 있는 평범한 경험에 가깝달까.

  그래도 돌이켜 보면 할로나 블로홀의 드센 바람, 샌디 비치의 적막한 해변, 마카푸우 포인트의 청록색 해안과 쿠알로아 공원의 새파란 잔디가 생생하다. 그들은 각각의 장소를 하나의 의미로 압축하는 일종의 단어이자 상징이었다. 가끔 여행을 한 마디로 표현하고 싶을 때 쓰기 좋은, 그래서 내가 어떤 곳을 다녀왔는지 잊지 않게 해주는 확실한 지표였다.



canon A-1 + 24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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