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셋째 날엔 몇 시에 일어났는지도 잘 모르겠다. 세 번의 아침 중 제일 늦게 일어난 것만은 분명하다. 간밤에 침사추이를 싸돌아다닌 여파가 밀려오는지 어디 한 군데 안 쑤시는 곳이 없었다. 창문을 열자 어제보단 덜 뜨거운 공기가 얼굴에 닿는다. 흐린 날씨였다. 비가 올까? 한국의 여름이라면 우산을 준비했겠지만 피곤했던 우리는 방수 코팅된 천 뭉치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방을 정리하고(워낙 좁아서 정리랄 것도 없었지만) 우리의 몰골도 정리를 좀 했다. 홍콩에 와서 찍은 필름을 세어보니 고작 세 통이었다. 하루에 한 개 반. 여행을 가면 가져간 필름이 부족하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마구 찍는 편인데 홍콩에선 셔터를 누른 횟수가 턱없이 적었다. 아무래도 너무 더워 금방 지치고 아침 일찍 나다닌 적이 없어..
:: 기름 냄새가 진동하는 스타 페리에서 내리자 스타의 거리가 코앞이었다. 스탠리 여행을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 재야에서 도시(?)로 나온 느낌이 들어 얼떨떨했다. 물리적으론 가까울지 몰라도 정서적으론 아주 먼 곳을 다녀왔기 때문이리라. 심포니 오브 라이츠까지 시간이 꽤 많이 남아서 저녁을 먼저 먹기로 했다. 어제 늦게 왔을 때와는 대조적으로 스타의 거리엔 사람이 정말 많았다. 일곱 시도 되지 않았는데 이 정도의 인원이 모여있다니 공연에 대한 기대감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홍콩에 놀러 온 여행자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고 싶다면 저녁 여덟 시에 스타의 거리로 가보자. 아마 절반은 빅토리아 피크의 정상에 올라가 있을 테고, 나머지 절반은 이곳에 모여있을 것이다. 먹을 걸 찾기 위해 돌아다니다가 빅..
안나 카프리의 정상을 오르내리기 위해 일인 곤돌라를 탄다.탈탈거리는 진동. 혼자 맞는 조용한 바람. 가끔 발밑이 서늘해지는 스릴.하지만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고민이 시작된다.그냥 웃어야 할지 무시해야 할지 손이라도 흔들어야 할지.그 때, 그가 먼저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그리고 나는 카메라를 들어 화답을 했다.우리는 서로의 미소를 볼 수 있었다. @Capri Island, Italy canon A-1 + 50mmsuperia 200
:: 홍콩, 런던, 밴쿠버, 두바이. 이런 주요 도시엔 오픈 탑 투어를 책임지는 빅 버스가 포진해 있다. 빅 버스에 탄다는 건 "저 관광객이에요."라 쓰인 커다란 전광판을 들고 다니는 거나 마찬가지지만, 오히려 그게 초심자의 즐거움이 될 수도 있다. 여력만 된다면 누가 빨간색 이 층 버스에 올라 도시를 누빌 기회를 마다하겠는가. 언젠가 런던에서 잔뜩 신이 난 표정으로 빅 버스에 타고 있던 승객들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은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생판 모르는 보행자에게 손을 흔들고 사진을 찍고 환호하길 주저하지 않았다. 모형 자동차 같은 버스 안에선 모두가 행복해 보였다. 그런데 여기 홍콩에서 기회가 찾아왔다. D가 빅 버스 티켓 두 장을 얻어 왔던 것이다. 홍콩의 빅 버스엔 총 세 개 노선이 있는데 그 중 ..
:: 여기가 어딜까? 여행의 둘째 날 아침엔 곧잘 그런 의문과 함께 눈을 뜨곤 한다. 깨어나기 직전까진 분명 내 방 침대 위에서 이 괴상망측한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눈을 떴을 때 보이는 풍경은 낯설기만 하다. 그래, 난 지금 홍콩이지. 이 좁아터진 방은 우리가 술을 마시다 쓰러진 호텔방이고. 에어컨을 그대로 켜놓고 잤구나, 목이 칼칼하고 몸이 으슬으슬하군. 그런데, 난 언제부터 자고 있었던 거지? 의식을 찾으며 하나씩 상황을 이해해 가는 과정은 수여 개의 전등을 차례대로 켜는 느낌과 비슷하다. 상황이 좀 정리가 되자 머리가 무겁고 입안에 술 냄새가 가득하다는 것도 알게 된다. 창문은 커튼으로 가려져 있지만, 얇은 천조각은 자비 없는 햇살을 막기에 역부족이다. 저건 아침 햇살이 아니다 싶어 시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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