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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살다 보면 늦잠도 자고 약속도 놓치고 그렇게 하루 계획을 날리는 날도 있는 법이다. 아는 거라곤 쥐뿔도 없는 타지에선 말할 것도 없다. 평소보다 단단한 긴장감이 필요한 상황임에도 아침잠이 많은 나는 나태를 이기지 못하고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곤 한다.

  하와이의 와이켈레 프리미엄 아울렛에 가기로 한 계획은 좋았는데 잠들기 전 혼자 술을 너무 홀짝였는지 마지막 셔틀버스가 호놀룰루에서 출발하는 바로 그 시각에 일어나고 말았다. 프리미엄 아울렛은 호놀룰루 시내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있기 때문에 보통 셔틀버스 아니면 렌터카를 이용한다. 물론 나에겐 둘 중 어느 것도 없었다. 난감했다. 다른 계획을 세워두지도 않았다. 와이키키 해변에서 홀로 일광욕이라도 해야 하는 걸까? 그런데 잠깐. 난 태우는 건 질색이다. 안 그래도 시커먼 사람이니까.

  그래서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여행사든 가이드북이든 블로거들이든 한결같이 셔틀버스나 렌터카를 이용하라고 강조한 탓에 꼭 그래야만 하는 줄 알았지만, 가만 보니 무슨 사막 한복판에 있는 오아시스도 아니고 다른 경로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십여 분 정도 검색하자 불편하지만 대중교통으로 가는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구글 지도의 길 안내 서비스와 하와이 버스 노선표 덕택이었다. 환승 한 번으로 아울렛에 갈 수 있는 노선은 다음과 같았다.

 

  1. 호놀룰루 시내에서 E. 익스프레스 버스를 타고 와이파후 트랜싯 센터로 간다.

  2. 와이파후 트랜싯 센터에서 433번 노선을 타고 루미아이나Lumiaina 정거장에서 내리면 와이켈레 프리미엄 아울렛이다.

 

  그러나 이건 2011년 말 기준이고, 2013년 현재는 노선이 조금 달라진 것 같다.

 

  1. 호놀룰루 시내에서 A. 시티 익스프레스 버스를 타고 와이파후 트랜싯 센터로 간다.

  2. 와이파후 트랜신 센터에서 433번 버스를 타고 루미아이나 정거장에서 내린다.

  (구글에서 검색하면 이 외에도 호놀룰루 시내에서 루미아이나로 가는 다양한 방법을 찾을 수 있다.)

 

  급하게 알아내려니 힘들었을 뿐이지 노선 자체는 단순했다. 목적지가 그다지 낭만적이거나 극적인 곳 아니었지만, 마땅히 할 일도 없었거니와 혼자 버스를 타고 시외로 나가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나는 몇 번이고 노선을 확인한 다음 호텔을 나섰다.



  

  당시는 2011 에이펙 정상회담 기간이었다. 보안을 위해 툭하면 도로 곳곳이 통제되던 시기였다. 정거장에서 와이파후 트랜싯 센터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거의 사십 여분이 흘렀음에도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도 답답해서 주변을 둘러보다가 아뿔싸, 정거장 기둥에 붙은 코팅된 A4 용지를 그제서야 보게 됐다. 안내문은 에이펙 정상회담으로 인해 해당 노선이 호놀룰루 시내로 들어오지 않으니 타고 싶으면 알라 모아나 센터까지 오라는 내용이었다. 이런 건 대문짝만 하게 붙여놔야 하는 거 아냐! 당황한 나는 부랴부랴 알라 모아나 센터까지 간 다음 원래 탔어야 하는 버스를 타고 와이파후 트랜싯 센터를 향해 출발했다. 버스는 잠시 시내를 돌다가 H1 고속도로에 올랐다.

  공항과 펄 시티를 지났다. 한동안 버스가 멈출 일은 없었다. 창문은 덜컹거리며 고함을 질러댔고 인심 좋은 에어컨디셔너는 버스를 아이스박스로 만들어 버렸다. 고속도로 주변으로는 화물 센터와 거대한 트럭, 기중기 따위가 보였다. 호놀룰루 중심가의 환상적인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었다. 산업 도시나 공업 도시의 외곽을 돌아 또 다른 산업 도시나 공업 도시로 이동하는 기분이었다. 불과 몇십 분 전까지 버스를 기다리던 시내가 거대한 유원지처럼 멀어졌다. 아니, 그곳은 실제로 테마 파크나 다름없었다.



  반면 와이파후 트랜싯 센터는 거창한 이름과 달리 수수하기 그지없었다. 터미널이라고 부를 만한 건물도 없었고, 그냥 교차로에 정거장 몇 개가 모여있는 게 전부였다. 하와이를 떠올리며 상상할 수 있는 그 어떤 이미지와도 거리가 먼 지역이었다. 관광객은 물론 나 혼자였고, 심지어 누구도 내가 관광객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할 것 같았다. 찌르는 태양과 버스를 기다리는 지루함이 트랜싯 센터 전체를 일상이라는 단호한 영역에 가둬두고 있었다. 나 역시 머릿속에서 아무런 생각도 발화시키지 못한 채 그 그림의 일부를 담당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온 433번 버스엔 올라타는 사람도 몇 없었다. 그러나 몇 정거장만에 나를 본래 궤도로 돌려보낼 재주는 있었다. 어느새 오하우 섬의 유명 쇼핑센터에 도착한 나는 스페니시 콜로니얼 스타일의 건물들 앞에서 재차 유원지에 온 듯한 착각을 느꼈다. 아침 일찍 다른 이들과 함께 셔틀버스를 타고 도착한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군중에 묻혀갔다. 구경도 하고 싶었고 사진도 찍고 싶었으며 좋은 물건이 있으면 사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덜떨어진 시곗바늘을 현재에 맞추지 못한 난 하릴없이 맥도널드로 들어가 늦은 아침을 때울 수밖에 없었다. 오지 않은 버스를 기다린 시간까지 합해 두 시간이 넘게 걸린 여정이었다. 아주 멀리 돌아온 셈이지만, 쉬이 잊을 수 없는 길이었다는 것도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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