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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가 지고 밤이 되자 호텔은 새로운 질서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지막 밤이라는 생각에 잠이 오지 않는다. 방을 나섰을 때 복도 저편에서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는 둔탁한 마찰음이 들려왔다. 복도는 잠잠했다. 해변이나 중심가에서 몇 블록 떨어진 곳이라 호텔 주변도 조용하긴 마찬가지였다. 저 멀리 불이 꺼지지 않는 거리에서 들려오는 웅얼거림 같은 소음이 오히려 적막감을 더했다. 나는 마지막을 기념하기 위해 그걸 눈으로 보고 기억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육 층에 멈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나와 낯선 이가 서로가 있던 공간을 교환했다. 밤의 호텔에 친근한 미소와 낭랑한 인사는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는 눈인사만 주고받는다. 소리를 내지 않아 서로의 밤을 방해하지 않는다. 엘리베이터가 둔탁한 마찰음과 함께 그를 태우고 머리 위로 사라지자 나는 격리된 것처럼 조용해진 공기를 느꼈다. 호텔의 육 층엔 야외 수영장과 사방을 둘러볼 수 있는 발코니, 작은 매점 하나와 세탁실이 있다. 수가 많진 않지만 분명 끊임없이 볼일 있는 사람들이 찾을 만한 층이다. 그러나 각자 다른 매질로 이루어진 공간에 사는 사람처럼 그들은 포개어지지 않는다. 밤의 호텔에선 우울한 상념, 대상이 불분명한 그리움, 그 어느 때보다 음량이 커진 제 마음의 소리가 모든 객실을 방문한다. 그래서 우린 그것들을 가운인 양 걸치고 타자의 복도를 헤맨다. 참가자를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파티장에 모여 밤을 보낸다. 집이 아닌 곳. 낯선 벽에 둘러싸인 곳. 비좁은 욕실에 휴양지의 공기가 배어 있는 곳에서만 열리는 특별한 회합이다.

  여전히 폐쇄된 채로 남아있는 야외 수영장을 따라 밤바람을 맞았다. 호텔 내부가 다 드러난 창문 안으로 누군가 머물다 떠난 빈자리가 보였다. 문이 열려있는 세탁기. 아직 수화기에 온기가 남아있는 공중전화. 막 계산을 마치고 돌아서는 어떤 남자의 짧은 뒷모습. , 단절된 공간에 만족한다고 생각했던 이들은 사실 서로를 궁금해하고 있었다. 그들은 인사하지도, 부딪히지도, 시선조차 교환하지도 않을 사이였지만, 상대의 존재엔 끊임없이 민감한 이들이었다. 나는 방금 세탁물을 가져갔을 누군가를 상상했다. 그의 이름도 나이도 외모도 모르지만, 그가 밤의 호텔 어딘가에 있다는 건 안다. 나와 똑같은 가운을 걸치고 눈에 띄지 않게 내 옆을 스쳐 지나갔을 수도 있다. 우리는 만날 수 없는 꼬리물기를 하며 이 밤을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건너편 건물의 노출식 복도엔 굳게 닫힌 문이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그 앞에서도 방금 집안으로 들어갔을 누군가의 그림자가 보이는 것 같았다. 해가 지고 밤이 되자 새로운 질서로 움직이기 시작한 건 호텔만이 아니었다. 하와이의 마지막 밤. 도심의 흥분이나 열기와는 거리가 먼 어둡고 외딴 빌딩숲에선 익명의 수백 명이 참가하여 더 외로운 파티가 성대하게 열리는 중이었다.






canon A-1 + 24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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