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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를 떠나는 날 아침. 공항에 갈 때까진 시간이 남았기 때문에 아침 산책을 나섰다. 아침 산책. 듣기만 해도 여유가 넘치고 평화로우며 그날 하루 전체를 의미 있어 보이게 만드는 마법의 단어다. 무엇이든 주기적으로 반복되면 마법이란 수식어를 붙이기 어렵다. 매일의 출근을 마법이라고 하는 사람은 없듯이. 아침 산책이라는 걸 몇 번 해본 적도 없고, 그마저도 여행이나 가야 겨우 하곤 했던 나로서는 이 생소한 행위 자체가 여행의 대미를 장식하는 인장이오, 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가면 이 섬처럼 여유로운 사람이 되자. 하루라도 지속되면 다행인 그 수많은 다짐들.
거리는 벌써 관광객이 점령하고 있었다. 아침을 먹거나 커피를 마시기 위해 이곳저곳 들락날락하는 사람들 때문에 기대했던 산책의 묘미는 대번에 쭈글쭈글해지고 말았다. 대신 여전히 진행 중인 정상회담 탓에 거리의 경비가 삼엄해지는 걸 보고, 강대국의 수장들이 검은 차를 타고 미끄러지는 걸 구경했다. 그저 관광지라고 생각했던 하와이에도 출근 시간엔 절망적인 시가 흐르는지, 굳은 표정으로 사무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이들도 보았다. 너무 일찍 나가거나 너무 늦게 나와 항상 놓쳤던 장면이 지금 내 주위를 흐르고 있었다.
바다는 아직 휴점 중이었다. 지금은 도시의 시간이다. 바다엔 이제 막 설치되기 시작한 비치 체어, 사람이 다니지 않는 백사장, 정상들이 머무는 호텔이 그들만을 위한 사적인 해변을 만들려고 쳐놓은 검은 장막이 거의 관심을 받지 못한 채 방치돼 있었다. 이제 막 개장 준비를 하는 가게처럼 바다도 부산을 떨었다. 아마 내가 이곳을 떠날 때쯤이면 하와이에 온 첫날 해변에서 보았던 춤과 음악, 바삭거리는 일광욕과 지평선을 향한 멍한 응시가 이곳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 모습을 다시 보지 못해 아쉬웠지만, 이렇게 여백으로 채워진 바다를 한 번쯤은 봐둘 필요가 있기에 그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아침이라 해도 햇살은 정오의 그것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간단한 아침 식사 거리를 사서 호텔로 돌아올 땐 땀이 조금 솟기도 했다. 여유, 평화, 하루의 시작? 얼른 샤워를 하고 싶은 마음이 앞섰을 때 아침 산책은 내게 마법을 부리는 단어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해가 떠 있을 땐 왠지 모르게 무기력해지는 난 밤 산책이 더 어울리는 사람이다. 그러나 밤은 이미 저만치 뒤로 물러가 버렸고, 기회는 지나갔다. 내가 이 섬에서 걸었던 늦은 오후, 저녁, 밤의 리듬은 이미 연주를 멈추고 잠들어 있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짐 정리를 했다. 텁텁한 아침 식사를 하며 발코니에서 내가 걸었던 길을 내려보았다. 결국 마법은 일어나지 않았다.
canon A-1 + 24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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