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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도 멀리 나가지 않고 구시가지에서 놀기로 했다. 조 인 옐로우라는 펍이 제법 유명한 모양이었다. 한량처럼 가방도 들지 않고 걸어가 우선 조 인 옐로우(Zoe in yellow) 바로 옆에 있는 48 가라지라는 야외 바에서 버킷으로 쌩쏨 하이볼을 마셨다. 말끔한 옷을 입은 종업원들은 놀라울 정도로 친절했다. 여전히 모기가 극성이었지만, 밤바람은 방콕보다 훨씬 시원해 야외에 앉아있을 만했다. 시원한 초가을 밤으로 훌쩍 뛰어넘은 기분이었다. 카오산 로드처럼 엄청난 사람으로 붐비는 곳은 아니었지만, 분위기는 그에 못지 않았다. 여자들은 술을 마시면서 테이블 위에서 카드 게임을 했고, 조 인 옐로우의 스테이지엔 벌써 많은 사람들이 모여 가볍게 몸을 흔들고 있었다. 열차로 넘어오며 음주를 하루 쉬었더니 버킷 하나에도 기분 좋게 취했다. 이제 우리도 자리를 옮길 시간이었다.
조 인 옐로우의 분위기는 몽키 비치를 많이 닮아있었다. 서서 술을 마시고, 그러다가 춤을 추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고, 함께 사진을 찍고, 아니면 그저 다른 이들이 노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몸에 잔뜩 문신한 남자와 여자, 성전환을 한 여자들, 순박해 보이는 동양인들. 시끄러운 노래가 나오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고 맥주를 마시는 노부부. 내 팔뚝의 두 배는 될 듯한 근육을 가진 남자. 술집 유니폼을 입고 외부에서 술을 사 들고오는 사람들을 막거나 술에 잔뜩 취한 이를 밖으로 끌어내는 직원들. 처음엔 서양인을 비롯한 외국인이 많았다가 나중에 가서는 치앙마이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많아졌다. 시간이 많이 흐르자 대체로 서양인은 서양인끼리, 태국인은 태국인끼리 노는 분위기가 형성됐는데 그럼 이도 저도 아닌 우리는 누구랑 놀아야하는 건지. 한국인은 물론 그나마 우리와 가까운 일본인이나 중국인도 이날은 보이지 않았다. 대체로 밤에는 신시가지 같은 느낌인 님만해민의 클럽에서 논다고 하는데, 다들 거기로 몰린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곳의 흥분이 다른 곳에 비해 부족할 것 같진 않았다. 구시가지에 머물면서 달리 밤에 할 게 없는 이들은 모조리 여기서 놀다 가는 것 같았다. 역시 누가 봐주지 않아도 열심히 춤을 추던 우리에게 태국 남자 대학생 무리가 한국인이냐고 말을 걸었다. 그렇다고 하자 갑자기 신 난 그들은 우리와 어울려 춤을 추고 술을 권하고 난리법석을 떨기 시작했다. 대체로 태국인들은 외국인들에게 별 관심이 없다고 하는데 전부 그런 것만도 아닌 모양이었다. 여행을 가서 내가 어디서 왔는지 궁금해하거나 심지어 알아맞히는 이를 만나면 그렇게 즐거울 수 없다. 내가 그들의 언어를 알 거나 그들이 우리말을 알아도 그렇게 즐거울 수 없다. 아니, 말이 통하지 않아도 좋다. 서로 웃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즐거울 수는 없다. 우리는 새벽 두 시까지 신나게 놀았고, 새벽 두 시가 되자 펍은 언제나 그랬다는 듯 음악과 불을 끄고 영업을 마쳤다. 한국에 비하면 얼마나 건전한 곳인지. 나와 D는 꽤 술에 취해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왔다.
펍 옆에서 팔고 있는 케밥을 (아마도) 종이까지 함께 먹었지만, 그래도 배가 부르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엔 세븐 일레븐에서 먹을 걸 잔뜩 사들였다. 게스트하우스와 펍 중간쯤에는 공원 같은 곳에 삼왕상이 - 아마도 이곳을 지배했던 란나 왕국의 왕들인 것 같은데 - 있었는데 D는 그 앞에 맨발로 무릎을 꿇고 앉아 축복을 기원하기도 했다. 그 힘인지 아직까지 우리 여행에 불미스러운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사진에서도 그렇고 실제로도 그랬고 자지러질 정도로 웃긴 퍼포먼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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