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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정을 통틀어 오늘 제일 일찍 일어났다. 오늘은 치앙마이를 떠나 화이트 템플을 거쳐 태국과 라오스 국경 마을인 치앙콩으로 간다. 여행사에 예약했기 때문에 어떤 이들을 만날까 기대를 했었는데 오전 10시 20분쯤 우릴 데리러 온 밴에는 브라질에서 온 남자와 칠레에서 온 여자, 그리고 태국 여인과 그의 프랑스인 남자친구가 타고 있었다. 오전 10시부터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던 우리는 20분이 지나도 데리러 오는 사람이 없어 사기라도 당했나 전전긍긍(?)하고 있었는데, 역시 조금 늦기만 했을 뿐 별일 없이 출발할 수 있었다. 그리곤 영국에서 온 여성과 독일에서 온 것 같은 커플까지 합승한 후 아름다운 치앙마이를 떠났다.
치앙마이에서 더 북쪽으로 향하는 길은 그 주변이 한국의 시골과 흡사했다. 밭이 보이고, 저 멀리 그리 높지 않은 산이 솟은 한가로우면서 의문 따윈 없는 풍경. 그 모습은 아주 가끔씩만 나의 시선을 빼앗곤 했는데, 그걸로도 충분했다. 나는 점심을 먹기 전까지 부족한 잠을 보충하다가 꿈결에서 창밖을 보고 있다고 믿기도 했다.
정오 즈음에 승합차가 멈췄다. 도대체 어디께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풀 하우스 리조트'라고 쓰인 여유 넘치는 식당겸 숙소가 우리를 반겨줬다. 5~60년대풍의 재즈와 블루스가 흐르고 짐을 들고 방갈로에서 나온 여행자들이 인사를 하며 지나다녔다. 식당 뒤편은 공들여 심은 야자수가 우거져있었는데, 날씨는 더웠지만 시각만은 시원한 해변을 보는 느낌이었다. 아마 앞으로도 여기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였는지는 알아내지 못하겠지만, 그 인상만은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았다.
여기서 태국 국적으로 치앙마이에서 오랫동안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한 경력도 있는 똠과 프랑스인이며 빼빼 마른 브아송(태국 이름은 '윈'이라 했다.)을 제대로 알았다. 굉장히 정력적이고 수다스러운 그녀는 우리가 한국인이라고 밝히자 자신의 한국 이름이 '대장금'이라며 크게 웃었다. 이들과는 같은 여행사를 통해 라오스까지 가느라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함께 하게 되는데, 똠은 정말 오지랖도 넓고 쾌활한 사람이었다. 말이 워낙 많아 아침에는 마주하고 싶지 않기도 했지만.
삼십 여분의 식사 후 다시 북쪽을 향해 출발했다. 책 속의 주인공 샐은 샌프란시스코에서 희한한 모험을 하고 있었다. 나는 샌프란시스코도 꿈꿔 보았다. 몸은 치앙라이를 지나고 있는데 내게는 그 도시의 안개가 그려지는 것이었다.
땡볕 한가운데 세워졌다고밖에 할 수 없는 화이트 템플은 지금껏 봤던 사원과는 이미지가 확연히 달랐다. 온통 흰색으로 칠해져 있었고, 지옥의 형상을 이곳저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문제는 지옥에서 고통스럽게 손을 뻗고 있는 영혼 중에 공포 영화에 나오는 괴물의 모습을 한 것들도 있다는 점이었다. 에일리언이라든가 프레데터라든가... 그걸 보고 있자니 그냥 재미 삼아 만들어 놓은 곳은 아닌가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뭐, 그래도 나름의 의미가 있겠지. 칠레에서 온 여자가 다시 차로 돌아오는 약속 시간에서 십오 분 정도 늦게 돌아왔다. 기사는 제법 화가 난 모양이었지만, 아무 말도 없이 그저 차를 빨리 몰기만 했다. 여자가 미안해하는지 하지않는지는 중요하지 않았고, 그저 얼른 치앙콩에 닿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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