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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원 풍경과 그리 다르지 않은 길을 세 시간쯤 달려서 드디어 치앙콩에 도착했다. 치앙콩은 아주 작은 마을로, 다음 날 태국 국경을 넘어 라오스로 들어가는 여행자들이 주로 머문다. 밴은 우리를 치앙콩 주거리에서도 꽤 떨어진 게스트하우스에 내려줬다. 방 키를 배정하고, 내일 일곱 시 반에 아침 식사를 한 후 국경을 넘어 훼이싸이로 이동한다고 알려주었다. 운전자는 인내를 갖고 모든 이의 짐을 내려준 후, 담배를 한 대와 맥주 한 병을 집어삼키곤 다시 치앙마이로 돌아갔다.
게스트하우스는 빌라 두 동이 붙은 구조였으며 아주 낡은 시설을 자랑했다. 키를 배정해 주거나 물과 맥주를 파는 아저씨는 굉장히 느린 속도로 일 처리를 했는데 약간 몸이 불편한 모양이었다. 무뚝뚝하긴 했지만, 이상하게 정이 가는 인상이었다.
방을 배정받고, 엄청난 수의 모기에 놀라고(그래서 바로 모기향을 피웠다), 오랜만에 바가지로 물을 퍼부어 물을 내리는 변기를 보았다. 확실히 북부로 올라오면서 어릴 적 생각이 많이 났다. 그리고 우리는 마실을 나갈 채비를 했다.
그런데 막 게스트하우스를 벗어나려는 순간 식당 앞 테이블에서 맥주를 마시던 백인 장년 남자가 우리를 불렀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얼른 여기로 와서 앉으라고 한다. 이미 얼굴이 붉어졌을 정도로 거나하게 취한 벨기에 출신 아저씨였다.
대충 다니엘 어쩌구 하는 이름의 그는(이름을 물어봤는데 자긴 벨기에에서 왔다는 말을 반복했다.) 눈은 풀려있지만, 굉장히 친근한 남자였다. 게다가 여기 게스트하우스에서 매니저로 일하는 태국 남자와 친구였는데, 게스트하우스 주변에서 바를 운영한다고 했다.
"그거 멋진데요? 태국에서 얼마나 사셨어요?"
"5년. 태국 여자랑 결혼해서 살고 있어. 그녀는 마사지사야. 난 태국이 너무 좋아."
"자식은요?"
"나한텐 없고, 내 마누라한테 아들 두 명이 있지. 열아홉 살, 열네 살." 남자는 그들을 무척 아낀다고 했다.
"유럽 놈들은 말야. 여기 와서 여자랑 놀아나다가 애가 생기면 나 몰라라 도망가곤 해. 완전 불한당들이야. 망할 놈들이지." 아저씨는 책임감 없는 남자들에 대한 욕을 십분 정도 늘어놓았는데, 어떤 말은 알아들을 수 있었고, 어떤 말은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때, 태국인 매니저 완(왕?)씨가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 우리에게 말했다.
"정말 좋은 분이에요. 지금은 취해서 저러니까 이해하세요. 한번은 돈 없는 여행자들이 온 적이 있는데, 숙박비를 다 내주고 술도 사 줬죠.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우리는 그런 것 같다며 그의 말에 수긍했다.
그렇게 말하는 완씨 역시 정말 좋은 분이었다. 여행자를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남자. 여기서 가족들과 함께 일하고 있었는데, 태국 미인인 아내는 요리를 잘했다. 그리고 두 딸은 초등학생에서 중학생 정도 돼 보였는데 붙임성은 없지만, 귀엽고 예쁜 아이들이었다. 게다가 부모님의 심부름에도 잘 따르는 착한 심성을 갖고 있었다.
게스트하우스 곳곳에는 이곳을 지나쳐갔던 여행자들의 사진이 붙어있었다. 개중에는 한국인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사진만으로도 반가웠다. 완씨가 사람들이 떠날 때마다 매번 사진을 찍는다는 데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러면서 그의 삶이 무척 부러워졌다. 방콕에서 아주 적은 돈을 받으며 바텐더 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이제 국경 마을의 어엿한 게스트하우스 매니저가 되어 있었다. 그도 우리가 마음에 들었는지 호텔에서 일할 때 알게 된 한국인에게 전화까지 걸어서 우리에게 바꿔주었다. 현재 치앙마이에서 가이드를 하고 있는 분이라 했다.
이번 여행을 시작한 이후 가장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마치 현지인의 집에 초대받아 저녁 식사를 하는 기분이었다. 벨기에 아저씨는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가 커다란 하얀 개를 뒤에 앉히고(!) 돌아왔다. 다만 우리와 함께 밴을 타고 온 다른 여행자들은 아저씨와 잘 못 어울리는 것 같았다. 너무 취해서 그럴까. 사람 앞에서 취하는 게 실례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우리 같은 한국인이야 회식 자리에서 술에 취한 상급자를 많이 대해봐서 익숙하지만, 분명 서양인의 기준에선 이해하기 힘들 것 같긴 했다.
벨기에 아저씨와 완씨만 만난 건 아니었다. 네덜란드에서 온 두 여자는 아주 대조적인 성격이었는데, 배우 제니퍼 로렌스를 닮은 여성은 까칠하고 직설적이었고, 그녀의 친구는 아주 조용하고 착한 성격이었다. 칠레에서 온 여자와 브라질에서 온 남자와도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같은 남미에서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두 사람은 그날 밤늦게까지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더니, 이후로 루앙 프라방으로 향하는 긴 여정 내내 함께 다녔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루앙 프라방에서도 아마 함께 다니고 있을 것이다.) 사랑이 싹트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마치 우리 한국인이 고향 사람이나 일본인, 중국인을 만난 기분이 아닐까? 일행 중 누구도 두 사람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았다.
벨기에 아저씨가 만취한 상태에서 자기에겐 자식 같다는 크고 얌전한 흰 개를 스쿠터에 태우고 집으로 돌아갔다. 완씨는 한국 노래를 틀어줬고, 이번엔 함께 밴을 타고 온 태국 여인 똠과 그의 프랑스 애인인 브아송이 우리 자리에 합석했다. 브아송은 파리 출신으로 우체국에서 일했다. 동남아시아로 자주 휴가를 오고, 굉장히 유쾌하며, 약을 한 사람처럼 반쯤 정신이 나가 보일 때도 있었지만, 누구에게나 친절하다는 사실은 분명한 남자였다. 내가 파리를 정말 사랑한다고 하자, 그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얼마 알고 있지도 않은 프랑스어를 던지다가 그의 긴 여행 이야기를 듣다가 했다. 맥주는 끊임없이 제공됐고, 완씨는 우리가 낼 돈은 하나도 없다며 편하게 있으라 했다. 직접 구운 생선 바비큐도 내어줬다. 서로 이해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지도 모른 채 오랜 이야기를 나눴다. 모기는 물러갔고, 밤은 깊어갔다. 아주 멀리서 남미 커플이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작고 어두운 마을은 방콕이나 치앙마이의 시끄러운 밤과는 전혀 다른 충만함을 공기 중에 품고 있었다. 나는 이 밤에 푹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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