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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서 "몇 시간 동안 계속될 항해가 몹시 기대됐다."라고는 썼지만, 결론적으로 슬로우 보트 여행은 어마어마한 여정이었다. 일단 너무 더웠다. 차가운 바람과 뜨거운 바람이 번갈아 불어왔고, 때로는 공기가 미동조차 하지 않아 온실로 들어온 비참함을 느끼기도 했다. 의자도 그리 편하진 않았고, 사람들은 무지막지하게 많았다. 게다가 뒤에 앉았더니 모터 소리가 무진장 요란했다. 소리는 시속 100km인데 그에 비해 효율이 너무 적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후미에서 담배는 마음껏 피울 수 있었다는 것 정도일까.
서양인 동양인 할 것 없이(서양인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시간이 갈수록 지쳐 간다는 게 느껴졌다. 의자에 드러눕고, 발을 난간에 올리고, 끊임없이 차가운 맥주를 사 마시고, 아예 후미에 모여 앉아 라오인들과 어울리는 이도 있었다. 그렇다면 메콩 강의 풍광은 어땠느냐. 솔직히 말하자면 기대보다 압도적이라거나 아름답지는 않았다. 강물은 더러웠고, 계곡은 전부 비슷비슷했다. 강가에 자리 잡은 촌락과 거기 사는 라오인들을 멀리서 바라보는 게 즐거움의 전부였다. 하지만 그것도 네다섯 시간이 넘어가자 더위에 질려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부분 한국 사람들은 태국에서 라오스로 넘어갈 때 버스나 비행기로 비엔티안에 도착해 방비엥, 루앙 프라방을 거쳐 북부로 향한다. (또는 남부 도시인 빡세로 넘어간다.) 그러나 슬로우 보트를 타는 건 그렇게 흔하지 않은 모양이다. (그러니 그 많은 탑승객 중에 한국 사람이 한 명도 없지 않았을까.) 첫날은 약 6시간 반. 둘째 날은 약 7시간 반의 항해를 하는데, 메콩 강을 즐기고 싶고 멀미도 하지 않는 여유로운 항해를 꿈 꾼다면 당신에게도 이 여정을 추천하고 싶다. 대신 어느 정도 각오는 해야겠지만. (인도에서 2박 3일 동안 기차를 타는 사람도 있는데, 역시 내가 인내심이 부족한 건 아닐까?)
그나마 후반부에 나를 기쁘게 한 건 친절한 라오인 끽(껙?)과 헤비 드렁커에 헤비 스모커였던 오스트리아 남자 둘, 그리고 만사가 즐거운 프랑스인 남자들과의 회합이었다. 나에게 해바라기 씨 같은 걸 주기도 했던 끽은 배의 후미(간이 주방도 있어서 여기서 밥을 짓기도 했다.)에서 맥주 파티를 열고 있었는데, 나에게 손짓하며 자리에 앉으라 했다. 그러더니 맥주를 엄청나게 부어주는 거다. 오스트리아어와 라오스어, 그리고 프랑스어로 "건배"를 배운 우리는 이 초에 한 번씩 언어를 돌려가며 건배를 했다. 말아 피우는 담배도 권하길래 처음 피워봤다. 뭐, 맛은 좀 별로였지만. 남자들끼리만 잔뜩 모여 담배와 맥주를 서로에게 권하다가 종국엔 신이 나서 서로 사진을 찍고 난리를 쳤다. 그래도 즐거웠다! 이렇게 누군가와 어울리기 위해 우리는 이 긴 여정을 택하지 않았던가. 게다가 해가 지면서 날씨도 시원해졌고, 곧 첫 번째 종착지인 라오스 빡벵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함께 즐기던 사람들과 인사하고 빡벵에 내렸다. 빡벵은 정말 조그만 산악 마을이었다. 사방에서 숯불에 닭고기나 돼지고기를 굽고 있었고, 그 연기가 식욕을 자극했다. 불빛은 대체로 어두웠지만, 주민들은 옹기종기 모여 저녁 식사를 하고 라오 비어를 마시고 있었다. 몹시 한적했다. 게다가 하나같이 다 미모가 뛰어났다. 미리 봐둔 게스트하우스에 방을 잡은 우리는 짐을 풀고 저녁을 먹을 만한 식당을 찾았다. 그런데 마음에 드는 곳이 없어 현지인들이 잔뜩 모여 당구를 치고 밥을 먹고 있는 식당에 들어갔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있던 주인은 우리가 앉고 나서 한참 후에야 메뉴판을 가져다주더니, 결국 지금은 되는 게 하나도 없고 숯불에서 오리를 굽고 있는데 그거 한 접시나 먹겠느냐고 물었다. 우리는 좋다고 했다. 미리 술을 사뒀기 때문에 그것만 여기서 먹겠다고 허락을 받았다. 그리고 잠시 기다리자 자그마한 접시 위에 놓인 오리 고기가 등장했다. 맙소사. 양이 정말 적었다. 심지어 오리의 부리(로 보이는 무언가)도 있었다. 최대한 살을 발라 먹은 우리는 애피타이저 한 접시를 나눠 먹은 기분을 느꼈다. 그래서 이번엔 피자를 먹으러 갔다. 이름도 희한하게 택시 피자였다. (라오스의 체인점인 것 같다. 루앙 프라방에도 있었다.) 피자 한 판과 콜라 두 잔을 시켰다. 주문한 건 베이컨 피자였는데 토핑은 게살에 소시지에 별 게 별 게 다 들어있었다. 토핑이 워낙 많아 배가 부를 지경이었다. 게다가 주인아저씨의 딸 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토핑을 올리고 찜기(!)에 구운 것치고는 굉장히 맛있었다. 사 가지고 온 술병까지 다 비우자 우리는 얼큰하게 취할 수 있었다. 점점 하루에 마시는 술의 양이 줄어든다는 게 느껴졌다. 바람직한 일이다. 소음도 거의 없는 강가의 마을에서 우리는 편안히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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