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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우리는 루앙 프라방에 도착했다. 오히려 예상보다 빨라 7시간 반 정도 걸린 모양이었다. 갑자기 배가 멈추더니 뒤에 앉아있던 아저씨가 이곳이 루앙 프라방이라고 알려주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드디어 라오스 여행의 시작이 아닌가. 부푼 가슴을 안고 선착장에서 가파른 계단을 올랐다.
그런데 처음부터 우리를 맞이한 건 도심으로 들어가기 위해 송태우 티켓을 사는 작은 석재 건물이었다. 일인 당 2만 낍에 티켓을 사야 하며, 도저히 걸어갈 수는 없는 거리였다. 원래 선착장이 중심지에서 가깝다고 알고 있었던 우리는 당황스러웠고, 다른 이들도 모두 그렇게 보였지만, 달리 도리가 없었다. 라오스 돈도 부족해 일부는 달러로 계산했다. 턱없이 낮은 환율을 적용 받았다. 안 그래도 화폐 단위가 우리나라보다 큰 곳이라 돈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몹시 기분이 안 좋아졌다. 그래서일까. 송태우를 타고 가면서 본 루앙 프라방의 첫인상은 불안하게 흔들렸다. 녹음이 우거지긴커녕 도로엔 카레 가루 같은 누런 흙덩이뿐이었고, 먼지도 엄청나게 날렸다. 유독 한국차가 많이 보여서 반갑기는 했지만, 오히려 방콕보다 공기가 좋지 않아 눈이 아팠다. 건기라 그런지 도시 전체가 바싹 말라있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송태우 기사는 우리가 묵을 곳의 위치를 알고 있었다. 아고다로 공을 들여 찾아 예약해뒀던 곳이라 시설도 좋고 직원들도 모두 친절했다. 웰컴 드링크도 한 잔씩 주는데 이번 여행을 시작한 이후로 처음이었다. 게다가 지친 여행을 달래줄 망고와 용과까지. 우리는 숙소 하나는 참 잘 잡았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짐을 풀고 샤워를 한 다음 밥을 먹으러 나가는 길이 문제였다. 이미 사위가 어둑어둑해진 상태에서 야시장으로 가려던 길을 잘못 들어 엉뚱한 곳으로 가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우연히, 정말 우연히 'K-Mart'를 발견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한국 분이 운영하는 한식당 겸 한국 마트였다. 들어가자마자 카운터에 앉아있던 주인아저씨와 한국말로 인사를 나눴다. 치앙마이를 떠난 이후로 오늘에야 처음, 루앙 프라방에서 한국인들을 본다. 게다가 한식을 아주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었다. 우리는 수중에 남아있던 모든 라오스 머니를 탈탈 털어 비빔밥을 시켜 먹었다. 그 밥에 힘이 솟았다. 오후 여섯 시가 넘은 바람에 환전소가 거진 문을 닫았을 거란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래도 야시장 쪽에는 몇 군데 연 곳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조언에 희망을 걸고 우리는 다시 길을 떠났다. 아저씨에게 다시 오겠다고 약속을 하고. (실제로 다음 날 다시 갔다.)
어쨌든 이 도시에서만큼은 모든 게 뒤죽박죽이었다. 우리는 당차게 출발했으나 그곳은 또 야시장이 아니었다. 대신 바가 많은 곳을 지나쳤을 뿐이다. 이렇게 방향감각이 떨어진 적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 환전소도 문을 연 곳이 하나도 없어서 결국 여행사에서 돈을 조금 바꿔 주길래 100달러만 바꿨다. 돈이 하나도 없어 맥주 한 잔도 못 할 뻔했는데 라오스 화폐가 생기자 자신감도 붙었다. 하지만 여전히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우리는 숙소가 있는 곳을 한참이나 뺑 둘러 유원지가 있는 곳까지 걸어갔다. 갑자기 커다란 음악 소리가 들려오길래 뭔가 했더니 쌩뚱맞은 공터에 관람차가 두 대나 보이고, 범퍼카나 회전목마도 설치돼 있었다. 그리고 길에서 공터까지 이어진 좁은 길에 좌판이 쭉 늘어서 있는 것이다. 무려 DJ가 음악을 틀고 있었는데, 그인지 그녀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는 목소리는 나이트클럽 DJ처럼 끊임없이 추임새를 넣었다. 외국인도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가이드 북에서도 이런 곳의 존재를 본 적은 없다. 4월 중순에 있는 라오스의 설날을 맞아 임시로 설치된 곳인 모양이었다. 어쩐지 옛날 한국의 이동식 서커스단이 떠올랐다. 여기서 우리는 맛있어 보이는 메추리알을 한 봉지 사고 다시 길을 걸었다. 송태우라도 타고 싶은데 지나가는 차가 한 대도 없었다. 그래도 걸었다. 너무 힘들어서 아까 사둔 쌩쏨을 걸어다니면서 마셨다. 그러다가 마침내 진짜 나이트 마켓을 발견했고, 그 주변에 송태우가 여러 대 정차해 있길래 곧장 올랐다. 두 사람에 5만 낍. 회계라서 그 돈이 무진장 아까웠으나 우린 너무 오래 걸었다. 막상 타고 보니 야시장에서 우리 숙소까지는 그리 멀지도 않았다. 단지 방향만 잘못 틀었을 뿐. 유심히 야시장으로 가는 길을 봐두었고, 이후론 다시는 길을 잃지 않았다. 사실 길을 잃을 정도로 복잡한 곳도 아니었고.
진이 빠져 방으로 들어온 우리는 또 샤워를 하고 루앙 프라방에서의 첫 밤을 기념했다. 거의 저녁에 떨어져서 그런지 사실 아직 이곳이 어떤 느낌인지 분간은 되지 않았다. 그냥 무지막지하게 피곤할 뿐이었다. 앞으로도 쭉 그렇게 되지만, 우리는 (방콕에서라면 바로 그 시간에 나갔을 수도 있는) 자정 즈음에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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