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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루앙 프라방에서의 일정을 쓰기에 앞서 난감한 마음뿐이다. 우리가 루앙 프라방에서 머문 시간은 4박 5일로 방콕만큼이나 길었지만, 한 일이 거의 없을 정도다. 조식이 포함이라 매일 아침을 먹고, 조금 뒹굴다가 마실을 나가고, 저녁이 되기 전에 들어와 쉬다가 다시 저녁을 먹으러 나간다. 그리고 밤 10시도 되지 않아 들어오길 반복했던 것이다.
루앙 프라방 둘째 날인 오늘의 특별 행사라면 D의 스쿠터와 나의 자전거라고 할 수 있겠다. 어제 좀 다녀봤더니 도저히 걸어 다녀선 체력이 안 될 상황이라 리셉션에 말해 스쿠터를 한 대 빌렸다. 난 한 번도 스쿠터를 타 본 적이 없고, D는 중학생 시절에 이미 배워뒀다고 한다. 위험하지는 않을까 좀 망설여지긴 했지만, 이 도시의 주요 교통수단은 스쿠터다. 애들도 스쿠터를 타고 다닌다. 한 손으로 양산을 들고 가는 여자도 보았고, 세 명이 낑겨 타서 털털거리며 가는 모습도 모았다. 차를 포함해 모든 모터 달린 것들은 시내에서 아주 느린 속도로 달리기 때문에 괜찮을 것도 같았다. 나도 스쿠터를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 말이다.
낑낑대며 시동을 걸고, 헬멧을 쓴 D가 엑셀을 잡아당겼다. 와우, 갑자기 라오인이 나타난 기분이었다. 그도 오랜만이라 잠깐의 연습 시간이 필요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동네 한 바퀴 정도는 무리 없이 돌고 올 정도가 됐다. 다음엔 나였고, 여기에 뭐 길게 쓸 것도 없이 십 분 만에 관두고 말았다. 공터가 있으면 연습을 좀 해보겠는데, 호텔 앞 도로엔 생각보다 많은 스쿠터와 자전거가 오갔다. 게다가 브레이크 잡는 훈련이 전혀 되어있지 않아 당황한 순간도 있었다. 급히 멈추고 핸들을 꺾다가 손목을 삐끗한 후, 나는 스쿠터에서 내려 그냥 자전거를 타고 다니겠노라 선언했다.
기름이 바닥이라 D의 뒤에 타고 숙소 가까이에 있던 주유소에 갔다. 삼만 낍 치(약 만 원) 기름을 넣자 탱크에 가득 찼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내가 잠깐 쉬는 동안 D는 스쿠터를 타고 시내를 한 바퀴 돌기로 했다. 그가 돌아오고 나서는 내가 자전거를 타고 길을 나섰다. 페달을 많이 밟지도 않았는데 땀이 줄줄 날 만큼 더운 날씨였다. 그래도 가속도가 붙었을 땐 시원했다. 어제는 어려웠던 길이 낮이 되니까 훤히 보였다. 우리가 어떤 길에서 헤맸는지 파악이 되자 머릿속에 지도가 그려졌다. 자전거를 타기로 한 건 잘한 일이었다. (높은 건물이 거의 없고 흙먼지도 많아서 그런지 오히려 방콕보다 더 더운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자전거를 타고 메콩 강 주변을 돌고, 왕궁 박물관도 지나가 보고(들어가진 않았다.), 야시장이 서는 자리와 바가 많은 자리도 되짚었다. 아, 그게 다였다. 그냥 이 도시 안에서 할 만한 일은 그게 전부였던 것이다.
다행히 K-Mart 사장님에게 이런저런 정보를 얻을 수는 있었다. 원래 베트남에서 십년 정도 여행사를 하셨던 분이라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베트남, 그것도 하노이에 관해 빠삭하게 알고 계셨던 것이다. 앞으로의 일정을 어떻게 가면 좋겠다고 굵직굵직하게 짜주시고, 앞으로 라오스 여행에 있어 조심해야 할 점들을 일러주셨다. 꽝시 폭포에 가도 다이빙은 하지 말 것. 방비엥에선 매일 파티가 열린다는 것. 스쿠터는 정말 정말 조심해야 한다는 것 등등. 하노이에서 많이 멀지 않은 곳에 사파 산이란 곳이 있다는 것도 그분을 통해 처음으로 알았다. 예상보다 하노이 일정이 길어질 수도 있는데, 그렇다면 하롱베이뿐만 아니라 꼭 가봐야 할 곳이 또 생기는 것이었다. 베트남에서 라오스로 넘어오신 후, 몇 년 동안 여러 사업을 하시다가 두 달 전에 이 식당 겸 마트를 열게 된 과정도 들었다. 타지에서 이렇게 사업을 하는 한인들을 보면 신기한 마음뿐이다. 여행 초반에 방콕에서 일 년 정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렇다고 사업을 하겠다는 포부는 없었다. 그냥 오로지 글만 쓰며 살고 싶다는 바람만 있었다. 아직 라오스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어쨌든 낯선 땅을 개척하는 모습에선 배울 점이 많았다. 우리는 아저씨의 사업이 번창하길 바라며 자리를 떴다.

현지 식당에 가서 볶음밥을 저녁으로 먹고, 나이트 마켓에 갔다. 거기서 D가 기념품을 사는 동안 배에서 본 여행자들, 다른 곳에서 온 한국 사람들을 참 많이 마주쳤다. 배를 같이 탔던 친구들과는 볼 때마다 인사를 나눴다. 누구는 찢어져 다니고, 누구는 함께 다녔다. 며칠 전 글에서 사랑이 자라는 것 같았다고 썼던 칠레 여성과 브라질 남성도 이제는 따로 다니고 있었다. 역시 길 위에선 모든 것이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다.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 그렇게 반복되는 건가 보다.
하는 일이 없으니까 배도 고프지 않고, 태국이나 라오스에서 만드는 조악한 위스키만 종류별로 다 마셔 본다. 자전거를 타니까 운동은 많이 되는 거 같다. 야시장에선 뭘 사야 할지 감이 전혀 오지 않고, 그 길도 몇 번 왔다 갔다 하니까 질린다. 그 사이 D는 흥정의 대가가 되어가고 있었다. 난 루앙 프라방에 와서 뭔갈 사겠다는 생각도 못 했다. 기념품을 고르는 것도 귀찮고, 가방을 채우는 것도 버겁다. 그 어떤 부담을 느끼고 싶지도 않다. 한가하고 여유롭긴 한데, 좀이 쑤시기도 한다. 여행기를 써도 그렇게 오래 쓰지는 못한다. 와이파이는 더럽게 느려서 글이 잘 올라가지도 않는다. 그저 자전거를 타는 것만 좋았을 뿐, 모든 게 안개 속에 갇혀있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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