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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앙 프라방에서 삼 일째를 맞이하자, D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시내를 한 바퀴 쭉 돌면서 가다 서기를 반복하자, 마침내 이곳에 길이 드는 것 같다. 어제가 스쿠터의 날이었다면, 오늘은 스쿠터를 빼앗기는 날이었다. 오늘 오후 7시에 반납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어제 오후 7시까지였고, 아침 열한 시쯤 직원이 스쿠터를 찾으러 온 것이다. 아침부터 스쿠터를 타고 시내를 크게 한 바퀴 돌고 오겠다던 D의 꿈은 무너졌다. 기름을 단 한 칸도 쓰지 않았는데, 이게 무슨 일이라니. D가 직원에게 기름이 꽉 채워놨다고 말하자 그 직원은 내일 이 스쿠터를 빌리는 사람이 럭키라며 농담을 했다. 그래, 좋겠다, 그 누군가는.
그래서 오늘은 D도 자전거를 타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스쿠터를 타다가 많이들 다친다는 어제 한인 마트 아저씨의 이야기를 떠올리니 안 다치고 반납한 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자전거도 차도로 달려야 하는 건 마찬가지지만, 속도도 그리 빠르지 않고 대부분 잘 피해서 추월해 간다. 루앙 프라방에서는 꼭 한 번은 자전거를 타야 한다. 그 사이 이곳이 마음에 든 우리는 호텔에 이야기하여 일 박을 더 연장했다. 그렇게 하여 이 도시에서 4박 5일 머물게 됐고, 내일은 꽝시 폭포에 가는 차편을 예약했다. 사실 오늘에서야 차를 타고 잠깐이라도 나들이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나에게 찾아온 것이다. 그전까지는, 뭐랄까, 다 귀찮았다고나 할까.
자전거를 타고 낮에는 싹 비워진 나이트 마켓 쪽에 도착해 음료수를 마셨다. 그렇게 열을 식힌 다음 왕궁을 지나쳐 시엥통 사원이 있는 강변까지 일직선으로 쭉 달렸다. 콧물이 계속 나오는 감기 초기 증세를 보이고 있었지만,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 기분이 한결 나아지곤 했다. 만처럼 툭 튀어나온 곳에서 메콩 강을 바라본 후, 다시 남칸 강변을 따라 페달을 밟았다.
그러다가 우리는 중간쯤에 있는 어느 작은 가게 앞에 멈춰 섰다. 노란 옷을 입은 라오스 여자아이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다. 라오스어로 "사와디!"라고 인사하자 해맑게 웃으며 응답해 준다. 아이는 강변에 있는 누군가에게 뭔가를 막 외치다가, 제복을 입은 아저씨에게 달려가 안기기도 했다. 그러더니 흙장난을 하며 또 한참을 혼자 노는 것이다. 그 사이 D는 전통 무늬가 새겨진 가방에 푹 빠져 있었다. 원래 5만 낍을 부르던 걸 4만 낍까지 깎더니, 다 마음에 든다며 무려 다섯 장의 가방을 놓고 흥정을 하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꽉 차있던 D의 가방을 잘 아는 나였기에 다 넣을 수 있겠느냐고 묻자, 갖고 온 옷을 버리면 된다고 한다. 맞다, 들고 와서 전부 버리고 다시 돌아가는 것. 그것이 D의 콘셉트였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이 콘셉트였을까? 계속 나는 그 질문을 반복하고 있었다. 모르겠다. 나에게 그런 건 없는 모양이었다.
어쨌든 꽤 괜찮은 가격에 가방을 무려 다섯 장이나 산 D. 우리는 또 자전거를 타고 달려 어느 구멍가게 앞에 멈췄다. 이번엔 거기서 맥주를 마셨다. 교복을 입은 초등학생들이 삼삼오오 몰려들어 준비물을 사서 떠났다. 신기하다. D의 말로는 준비물이 '수세미'인 모양이란다. 수세미로 뭘 하는 걸까. 설거지하는 법을 배우나.
거기서 (이름은 모르는) 일본 남자를 처음으로 만났다. 더위에 짓눌린 것처럼 보이는 그는, 가이드 북에서 나온 유명한 커피숍을 찾고 있다고 했다. 내가 몇 마디 일본어로 응대하자 그는 기뻐 보였다. 그러면서 이 도시에서 한국 사람은 많이 보이지만, 일본 사람은 별로 볼 수 없다며 아쉬워했다. 근데 많으면 뭐하나. 서로 인사도 거의 하지 않는데. 어쨌든 일본인 여행자들 특유의 긴 수염을 자랑하며, 남자는 또 보자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그리고 그 말이 씨가 되었는지 우리는 그를 세 번이나 다시 마주친다. 그때마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했다. 마지막으로 봤을 땐 다른 일본인 여행자를 만나 함께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가 친구를 찾아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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