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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꿈을 꿨다. 새벽과 아침 녘 꿈에서 서울은 기어코 나를 찾아와 놓아주지 않았다. 이왕 얌전한 꿈을 꿀 바에야 메콩 강을 유영한다거나 루앙 프라방 푸씨 산에 올라 이 조그만 도시의 곳곳을 날아다닌다거나 하는 꿈이면 얼마나 좋았을까. 우습게도 나는 일을 하는 꿈을 꿨다. 꿈속에서 나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6월 초의 긴 연휴 기간, 그러니까 추석 비슷한 명절을 앞두고 있었다. 사무실에 남아 밀린 일을 처리하며 이제 좀 쉬겠구나 한숨 돌리는 찰나, 갑자기 나의 남은 여행은 어디로 갔는지 몹시 궁금해지다가 두려워지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깨닫는다. 아, 나는 지금 여행 중이구나. 이곳은 서울이 아니구나. 눈을 떴을 때, 으레 들리곤 하는 스쿠터 엔진이 부릉 거리는 소리와 하이톤의 새소리가 들려왔다. 기침이 나왔고, 머리가 조금 아팠다. 감기 기운이 가시지 않았지만, 루앙 프라방의 아침을 무사히 맞을 수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찝찝한 기분을 떨칠 순 없었다.
여행이 중반에 다다르고, 워낙 이 도시에서 아무 일 없이 한가하게 지낸 탓인지 조급해지기도 했다. 그러면서 뭔가 놓치고 있다는, 뭔가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을 잊고 말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제는 여행을 오기 직전에 읽었던 오르한 파묵의 '순수 박물관'에서 발췌한 부분을 다시 읽기도 했다. 그 책을 다 읽으며 느꼈던 슬픔과 겸허함을 되살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감정들은 한국에 두고 오기라도 한 것처럼 먼 곳에 웅크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스쳐왔던 도시와 지금 이곳 루앙 프라방의 인상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있음을 나는 안다. 모든 것이 표면적이다. 표피만 긁다가 떨어져 나간다. 그 너머를 볼 수가 없다. 그 너머를 이해할 수가 없다. 그게 당장 내게 시급한 작업임에도 몸은 지치고 마음은 게으르다. 프루스트의 솜씨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파묵의 서정적이고 세밀한 묘사, 아니면 리듬감 있고 괴팍한 케루악의 만화경 같은 묘사라도 따라잡고 싶다. 불가능하다. 새로운 환경이 새로운 힘을 불어넣어 주진 않는다. 하긴 필립 로스는 '영감'이라는 말은 아마추어나 쓰는 말이라고 했지. 그럼에도 다시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이곳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D와 그런 이야기를 했다. 이곳은 우리의 도시가 아닌 것 같다고. 우리를 사로잡는 무엇이 없다고. 나 역시 동감하는 바이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의 마음이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건 아닌지 의심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답은 모르겠다. 내일 이 도시를 떠나는 수밖에는 없다. 잿빛 희망을 안고. 조금 더 작은 곳으로, 조금 더 자연에 가까운 풍경이 있는 곳으로 떠나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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