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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루앙 프라방 주변에서 뭐 하나는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오늘은 꽝시 폭포에 간다. 약속 시각이 되자 사람을 가득 태운 밴이 숙소 앞에 멈췄다. 일본인 네 사람, 한국인 두 사람, 홍콩 출신 한 사람, 그리고 미국인이 세 사람 정도 있었다. 어떤 공간 안에 아시아인이 더 많은 경우는 처음인 것 같았다. 게다가 나와 D까지 하면 한국인이 네 사람이다. 한국 친구들은 이십 대 중반 정도로 우리처럼 남자 둘이서 여행을 왔다고 한다. 일본 여성 네 명은 봉사 활동 겸 라오스에 왔고(자세히 듣지는 못했다.), 학생인 홍콩 여성은 방학 중에 베트남과 라오스를 여행한다고 했다. 동양인이 가득하자 어쩐지 힘이 나는(?) 기분이었다.
루앙 프라방을 벗어나 꽝시 폭포에 가까워지면서 나는 비로소 라오스에서 기대했던 풍경을 만날 수 있었다. 때 묻지 않은 자연, 더욱 소박한 라오인의 삶, 그리고 무엇보다 맑은 공기. 몸이 안 좋다는 핑계로 꽝시 폭포를 미뤘던 게 후회가 됐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 번 더 올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의외로 우리 같은 사람이 많은지, 꽝시 폭포로 들어가는 입구 앞에는 루앙 프라방 야시장 같은 곳에서 자주 보던 사람들이 그대로 몰려 있었다. 그들도 도시 안에서 돌고 돌다 지겨워 이곳으로 온 모양이었다.
한 사람당 입장료는 2만 낍이었고, 국립공원 같은 입구를 지나치자 가장 먼저 우릴 반겨준 건 곰이었다. 검은색 곰들. 그 친구들은 공개된 나무 우리 안에서 아주 천천히 물장구를 치거나 뭔가를 씹고 있었다. 대체로 행동이 굼뜬 걸 보니 어지간히 더운 모양이었다. 귀엽다고 하기도 뭣하고 무섭다고 하기도 뭣했다. 그리고 걔네 팔자나 내 팔자나 별로 다를 게 없어 보인다는 생각도 했다.
조금 더 산길을 오르자 본격적으로 시내와 맑은 웅덩이가 나오기 시작했다. 꽝시 폭포 아래에서 수영을 할 수 있는 곳은 총 세 군데였다. (누군가 이곳은 꽝시 '폭포'가 아니라 꽝시 '수영장'이라고 농담을 했는데, 아주 적절한 표현이었다.) 준비성이 철저한 여자들은 비키니를 입고 차고 맑은 물 안에서 수영하고 있었다. 따로 샤워 시설은 없었지만 워낙 물이 깨끗해서 그런지 대체로 물장구를 치다가 다이빙을 하다가 밖으로 나와 천천히 몸을 말리고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고는 했다. 밑에서 세 번째 풀(?)에 사람이 가장 많았는데 위로는 거대한 수목의 이파리가 흔들리고, 아래로는 에메랄드빛 물이 반짝이며, 햇살이 바람을 따라 수면을 간지르는 낙원 같은 풍경이었다. 거기에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수영복을 챙겨온 사람들이 몸을 담그고 있었다. 너무 부대끼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망설일 필요도 없었다. 난 들어가지 않았지만 말이다.
수영을 할 수 있는 장소를 지나 좀 더 올라가자 드디어 꽝시 폭포를 만날 수 있었다. 압도적인 높이에 입이 떡 벌어진다거나 물이 말 그대로 '폭포수'처럼 쏟아진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자연스러운 맛은 있었다. 뭐랄까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딱 기대했던 풍경이었달까. 하지만 나는 공기가 맑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좋았다. 그래서 먼저 올라간 D를 따라 폭포 위 정상까지 오르기로 했다...
해볼 만은 했지만, 사실 그리 좋은 결정은 아니었다. 정상까지 오르는 길은 정말 무지막지하게 높고 가팔랐다. 슬리퍼를 신은 탓에 더 힘들었다. 오죽했으면 심장이 너무 빨리 뛰고 숨이 차서 중간에 두 번이나 쉬어야 했다. 게다가 가방과 카메라는 어찌나 무거운지. 어떤 중년 여성은 도저히 올라가지 못하겠던지 먼저 가던 딸을 불러 도로 밑으로 내려갔다. 망할, 나는 이걸 계속 올라가야 하는 건가 말아야 하는 건가 고민을 하면서도 계속 발을 내디뎠다. 팔 할쯤 되는 지점이 제일 힘들었던 것 같다. 이 정도면 오늘 밤 근육통에 시달려도 이상할 게 전혀 없을 판이었다. (다행히 근육통은 오지 않았다. 나도 아직 쓸 만한가 보다.) 그렇게 힘들게 정상에 올랐을 때, 까마득한 계곡 아래 풍경이 펼쳐졌다면 좋았으련만 워낙 나무가 많아 밑이 잘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아래로 흐르는 물만은 아주 시원해서 발만 담그고 있어도 열이 식는 느낌이었다. 굳이 정상에 오르겠다고 애를 쓴 다른 사람들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아이까지 업고 올라온 한 아빠를 보고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부성애는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정상에서 기운을 차린 우리는 다시 밑으로 내려왔다. 내려오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다시 땀이 솟아올랐다. D는 더위를 떨치겠다며 물 안으로 들어가 수영을 하더니 이내 다이빙을 준비했다. 물가에서 약 일 미터 정도 높은 바위에서 다들 점프를 하고 있었다. 물이 꽤 깊어 보였고 바위도 많아서 위험했지만, 다들 뛰는 모습을 보며 D도 용기를 얻었다. 그리고 세 번이나 뛰었다! 매번 다른 포즈를 시도했고, 나는 그 모습을 동영상으로 담았다. 비록 난 뛰진 않았지만 우리에게 좋은 추억이 될 것 같았다.

이후의 저녁 일정을 길게 되풀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쉬다가 K-Mart로 저녁을 먹으러 갔고, 야시장 쪽 마트에서 술과 담배를 산 후, 먹거리 시장에서 군만두도 사왔다. 그러고 들어오니까 여덟 시 반이었다. 내심 아쉬웠지만, 속도 좋지 않았고 술도 잘 들어가지 않았다. 게다가 내일은 일찍 이곳을 떠나야 하니까. 대신 열한 시 반까지 밀린 글을 썼다. 역시 지금, 내가 살아있는 느낌이 든다. 이걸 잊으면 안 된다. 고되고 지루하고 대부분 형편없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변기 같은 일이지만, 그래도 이것이 나의 길임을 잊으면 안 된다. 늦은 밤, 뇌우가 찾아왔다. 하지만 힘껏 정신을 쏟고 나니 자정 전에 잠들 수 있었다. 내일은 몸 상태가 훨씬 더 나아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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