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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고 가는 시간이 무지막지하게 기니까 여행의 절반에 다다른 이 시점에서 뭔가를 돌아봐야 할 것 같다. 글을 쓰고 싶은 기분은 아무리 신비 절정의 외국에 있다고 하더라도 자주 찾아오는 건 아니니까.
내가 굳이 일주일을 넘는, 그러니까 최소 한 달 이상의 여행을 떠나려 했던 건 그 긴 시간 동안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내가 어떻게 그 환경을 받아들일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꽁한 마음이 풀릴까? 자연스럽게 아무하고나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향수라는 걸 느낄까? 글은 잘 써질까? 동행자와 싸우진 않을까? 뭔가 더 배우는 게 있을까? 꽤 무난하다고 생각했던 성격이 드디어 무너지고 본성을 드러낼 수 있을까?
마지막 질문에서 멈춰 보자. 평소 난 정말 무난한 성격이다. 사회생활을 예로 들자면, 위로는 그럭저럭 잘 따르고 아래엔 꽤 배려심이 있으며 동료에겐 조금이나마 믿음을 주는 편이다. (아니시라면 어쩔 수 없습니다만.) 굳이 사건을 만들지 않고, 책임감도 있다. 그럭저럭 살아가기에 이보다 좋은 성격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젠장, 나는 그런 성격이 몹시 싫었다. 아니, 싫다. 부러 괴팍해지려는 건 우스꽝스러운 어릿광대짓에 불과하지만, 진심으로 괴팍해지고 싶었다. 사회에서 이탈하고 싶다는 바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래, 돈은 벌어야 하고, 사람도 사귀어야 하고, 친구도 만나고, 언젠가 가정도 꾸리고 그래야 하니까.
물론 이건 나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누구나 조금씩 일탈에의 충동을 안고 살며, 그걸 잘 제어하는 게 사회 구성원으로서 인정받는 길이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양보할 수 없는 건, 결국 그 모든 것이 내가 이루고자 하는 바를 더디게 한다는 빌어먹을 의심 때문이다. 모든 걸 버리고 어디를 비추고 있는지 잘 알고 있는 빛을 향해 질주하고 싶었다. 막 첫 권을 다 읽은 '길 위에서'의 딘과 샐처럼 미치광이나 바보천치, 사기꾼이 되어 살다가 서로 믿음을 잃고 배반당하고 그래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조용히 지내다 또 미친 짓을 하고 싶어 안달을 내고 싶었다. 최소한 저자인 잭 케루악은 그런 삶을 통해 이런 걸작을 써내지 않았나. 내가 작가가 되지 못할거라는 생각이 든 건 내가 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회사 생활을 하면서 글을 썼던 작가도 많지만, 그런 이들의 책을 읽어보면 단박에 알 수 있는 사실이 있다. 그들은 돈 때문에도, 명예 때문에도, 허울 좋은 경험 때문에도 일을 한 게 아니었다. 꼭 써야만 하는 작품이 있었기 때문에 일을 했던 것이다. 나는 왜 그러지 못하나! 무엇이 두려운가! 분명 글은 단순히 재능의 문제는 아니다. 치열함의 문제일 뿐이다. 한 달은 객관적으로 봐도 긴 시간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 시간이나마 떠나고 싶었던 건 치열함을 발견하고 싶어서, 나를 속박하는 게 없는 타지에서라면 글에 더 몰두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신경 쓰고 조율하고 배려하고 그래야만 하니까 타자를 이해하려는 성격이 긴 여정 동안 부서지리라 희망을 걸었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중간에 이른 지금 나는 별로 변하지 않았다. 그래, 집에서보다 글은 더 많이 썼다. 여기에 올리지 않은 글까지 합하면 꽤 많은 분량이 쌓였다. 그런데 그건 다 휴짓조각에 불과하다. 누구나 다 아는 여정을 복기하고, 누구나 다 본 풍경을 찍고, 그러다 가끔 무슨 금맥을 발견한 사람처럼 풋내기 같은 감상을 적었을 뿐이다. 어제와 오늘, 예전 직장과 미래의 직장에서 일을 하는 꿈을 꾼 걸 보면, 그것들이, 그 진부함들이 나에게 돌아오라 손짓하고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이놈의 족쇄는 끊길 줄 모르는 것이다!
어쨌든 중간 결산은 이렇다. 버스를 타고 가는 여정이 힘들어서 이런 결론이 나온 건 절대 아니다. 아니, 뭐, 그럴 수도 있겠다. 날카로워지긴 했으니까. 이대로 그냥 집까지 쭉 달려간다면 나도 마침내 파괴될 수 있을 텐데. 하지만 목적지는 불과 20km밖에 남지 않았으니, 버스에서 내리면 또 싱글싱글 머저리로 돌아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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