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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비엥에 도착하자 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총 8시간 30분의 곡예비행을 마치고 땅에 착륙한 비행사가 된 기분이었다. 방비엥의 첫인상 역시 루앙 프라방의 그것과 크게 다르진 않았지만, 구역이 그리 넓지 않다는 게 좋았다. 우리는 흥정할 것도 없이 (아저씨에게도 흥정할 마음이 전혀 없기도 했지만) 툭툭이를 타고 미리 예약한 숙소 옆에 내렸다.
구활주로에서 들려오는 현지인들의 축제 소리에 시끄럽긴 했지만, 숙소 상태는 아주 마음에 들었다. 찬물로 샤워하자 기분도 풀렸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음악도 우리를 힘 나게 했다. 저녁을 먹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듣던 대로 방비엥엔 한국인이 정말 많았다. 삼삼오오 몰려다니는 젊은 친구들과 대여섯 명은 되는 것 같은 중년 남녀의 무리를 지나쳤다. 강가 주변에는 K, M, U Mart가 다 있었다. 전부 훑다 보면 A부터 Z 마트까지 다 볼 수 있지 않을까? 강은 내일 보기로 하고 우리는 다시 숙소 주변으로 돌아왔다.
'메뉴 한국어'라고 크게 쓰인, 세상 모든 메뉴는 다 준비된 것 같은 식당을 하나 찾았다. 거기 들어가서 맥주 두 병과 라면 볶음, 그리고 탕수육 비슷한 걸 주문하고 모니터에서 틀어주고 있는 시트콤 프렌즈를 구경했다. 그런데 먼저 기다리고 있던 한국 아저씨 두 분이 오시더니 주문한 지 한 시간이 됐는데 아직도 음식이 나오지 않는다고 투덜거리는 것이다. 그들보다 먼저 온 단체도 아직 식사가 나오지 않은 상태였다. 마냥 기다리고 있었으면 우리도 그 꼴이 날 뻔했다. 우리는 얼른 식사를 취소하고 맥주만 마신 다음 돌아다니다가 피자를 먹으러 갔다. 레게 음악이 흐르던 그 식당의 피자는, 바게트 껍질만 압축해 만든 듯한 딱딱한 도우를 자랑했다. 맛은, 역시, 그냥 그랬다.
그리고 우린 사쿠라 바에 갔다.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바였는데 돌아다니는 사람 중 그곳 이름이 적힌 나시티를 입고 다니는 이가 꽤 많았던 것이다. 그곳에 가까워지자 음악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떼로 몰린 군중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술잔을 하나씩 들고 어깨를 흔들고 엉덩이를 털고 허리를 비틀고 있었다. 바텐더조차 유쾌한 이곳은 우리가 찾던 바로 그런 곳이었다. 앞쪽에는 한국 대학생들이 단체로 보여 춤을 추며 셀카를 찍고 있었다. 뒤쪽에는 긴 테이블을 놔두고 탁구공을 던져 서로의 맥주잔에 집어넣는 놀이를 하는 서양인들과 당구를 치는 혼성팀이 있었다. 술값도 저렴했다. 나와 D는 위스키에 콜라를 탄 칵테일을 한 잔씩 들고 상황을 지켜보았다. 흥겹기도 했고, 음악도 좋았고, 해피 발룬이라고 무려 만 낍(그것도 해피아워 타임이라 그 가격이었다.)짜리 이상야릇한 풍선도 신기했다. 그러나 유심히 지켜 본 결과 뭔가 아쉽긴 했다. 일단 몸살 기운이 있던 D의 몸 상태도 안 좋았고, 가방과 카메라까지 지고 있던 나는 몸이 너무 무거웠다. 게다가 햇빛 알레르기도 신경이 쓰였다. 뭐랄까, 치앙마이의 조 인 옐로우 같은 극한이 아직은 나오지 않기도 한달까. 우리는 일단 내일을 기약하며 방으로 돌아왔다.
다시 한 번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워 이곳은 어떤 인상으로 남을 것인지 몹시 궁금해졌다. 아직까지는 어떤 빛, 어떤 색, 어떤 흐름을 발견하지 못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우리에겐 아직 날이 많다. 여행은 이제 반을 지났을 뿐. 밖에는 우렁찬 소리와 함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부디 내일은 해가 뜨지 않고 시원하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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